식물의 대가, 패트릭 블랑의 집

2016. 5. 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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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In Green

패트릭 블랑은 도시 건물의 외벽을 식물로 뒤덮는 프로젝트로 유명한 남자다. 조경업자로 오인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그는 식물학자다. 식물을 애인처럼 곁에 두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도시로 옮겨온 그의 식물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식물원 같은 그의 아파트에서.

식물 커튼이 드리워진 1층 파스칼의 서재. 그는 이곳을 ‘크리스타리움 (Christarium)’이라 부른다. 두 개 층 이상의 층고까지 쌓아올린 책장을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고, 투명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닥은 그 자체가 수족관이다.

집 밖까지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박공지붕이 마치 나무 위에 올려둔 오두막 지붕처럼 보인다. 집 전체에 배수 시설을 완벽히 구비했기 때문에 발코니를 야외 샤워실로도 쓴다.

그의 집은 실내외의 구분이 모호하다. 출입구에 문을 모두 없앴고 창문도 프레임이 없다. 바닥은 모두 물이 닿아도 손상이 적은 소재를 선택했고, 가구도 아웃도어 가구를 사용했다.

초록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초록색 플립플롭을 신은 패트릭 블랑.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아니라 실제로 매일 이런 차림이다.손톱을 기르는 것에 대해 물으니 “왜 기르면 안되나요?” 라고 반문했다.

2층 거실 공간의 피코크 체어와 커피 테이블은 파스칼이 연구를 쉬며 휴식으로 재충전하는 곳.

2층의 작은 화장실에는 이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초록이 아닌 원색의 타일을 사용했다.

파리에 설치될 다음 프로젝트 드로잉.

패트릭과 그의 애인 파스칼, 러블리한 커플.

각종 수초 샘플들이 살고 있는 수족관. 식물 벽에 꼭 필요한 물과 물속에 만들 생태계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연구 중 하나다. 수족관은 세탁기와 오븐 위에 올려두었다.

세계 오지를 다니며 수집해 온 작은 나무 열매와 껍질들.

파리 아프리칸 아트 뮤지엄인 뮤제 뒤 케 브랑리(Musee du Quai Branly)의 정원과 파리 아부키르(Aboukir) 거리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식물 외벽 건물을 본 적 있는지. 인터넷 이미지든 실물이든 본 적 있다 해도 그게 건물의 벽인지 하늘로 뻗은 정원인지 몰랐을 것이다. 삭막한 도시 외벽을 각종 식물의 푸르름으로 덮는, 식물 외벽 프로젝트를 실현한 사람은 식물학자이자 연구가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다.

장 누벨 등 여러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완성작이라 할 건물들을 식물로 뒤덮어 달라고 주문하는 이유는 그가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미지의 자연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도시인들의 와일드한 욕망을 채워준 덕분일 것이다. 프로젝트뿐 아니라 새로운 식물을 조사하고 관찰하기 위해 오지에 장기간 머무르기도 하는 패트릭 블랑을 파리에서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엘르 데코> 코리아가 그에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예상치 않게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제멋대로 어질러진 파리의 아틀리에를 여러 곳 다니면서 웬만한 공간에는 놀라지도 않는 <엘르 데코> 팀조차 기함할 만큼 유니크한, 집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야생 그 자체인 그의 숲. 겉으로는 평범한 입구에 불과하지만 출입문이 열리고 몇 개의 계단과 좁은 복도를 지나면 사방이 모두 식물로 뒤덮인 건물 한가운데 거대한 중정이 나타난다. 처음 듣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 폭포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음향 효과인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총천연색의 열대 지방 새들이 식물 벽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이런 풍경은 동물원에서만 보았던 에디터와 포토그래퍼는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 속에서 기인 같은 모습으로 걸어나온 패트릭 블랑은 (물도 커피도 아닌) “로제 와인 한 잔 하시겠어요?”라고 첫인사를 건넨다. 싱그럽고 푸르른 향기가 코끝을 감싸고 정글에나 어울릴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식물이 자연 커튼 역할을 하는 그의 아파트. 통창으로 이뤄진 지붕 위를 타고 올라가는 식물 벽과 자연광은 완벽한 도심형 힐링의 모습이었다. 집 한켠에 마련된 온실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식물들의 샘플과 수족관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초록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초록색 나뭇잎 패턴 셔츠를 입은 채, 그것도 모자라 슬리퍼까지 초록색으로 신은 남자, 패트릭 블랑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겉에서 봤을 때는 내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어요. 이 안에서는 날씨조차 가늠할 수가 없네요(이 날은 꽤 흐린 날씨였다) 나와 애인인 파스칼 외에도 이 집에는 스무 마리 정도의 열대 지방 새들과 개구리 열 마리 그리고 도마뱀 다섯 마리가 살고 있어요. 또 사무실로 쓰고 있는 1층의 절반은 다양한 물고기들이 사는 거대한 수족관이고요. 건물 외벽을 단순히 식물로 덮는 작업이 내 일이라기보단 삶의 일부죠.

식물을 이용한 첫 프로젝트를 기억하나요 무려 5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웃음). 열두 살 때 갖고 있던 작은 어항의 물을 자연 정화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죠. ‘식물 벽 이론’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식물 뿌리가 물속에서 자라게 하는 거예요. 물을 더럽히는 갖가지 요소들이 반대로 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이라는 연구 결과가 실린 과학 잡지가 내 식물 사랑의 시작이었어요. 소년의 방 한편에 식물로 채운 벽 한 면이 이젠 시드니의 135m가 넘는 프로젝트가 된 셈이죠.

식물 벽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뭔가요 공기 정화죠. 그 어떤 방법보다 효과적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오기 전엔 75m2(약 23평)짜리 아파트에 살았어요. 물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새들과 파충류들 모두 함께요. 그때 나와 파스칼은 하루에 담배를 4갑 정도 피웠지만 새들 때문에 단 한 번도 창문을 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집 안 공기가 산속처럼 쾌적했으니 공기 정화 효과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죠?

건물 외벽에 식물을 식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오히려 집 안에 식물 벽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작은 수족관과 식물을 지지해 줄 펠트 패브릭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어요. 특히 식물 중에서 허브를 키우면 잎을 따서 바로 요리에 넣을 수도 있어요. 물론 허브 종류는 매우 빠르게 자라기도 하고요. 그러니 소규모라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내 말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면 좋겠네요. 그런데 거꾸로 내가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한국은 어떤 나라예요?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생긴 이유라도 있나요 지금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진행 중인 것도 있어요. 서울에 머물 때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을 헤매고 다녔어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자 꼭 필요한 일이에요. 또 제주도 한라산에서도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하고 다양한 식물을 많이 발견했어요. 세계 곳곳을 가봤지만 그곳은 정말 독특하고 매우 소중한 곳이에요 한국인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내 마음 한 켠에 늘 기억되는 곳이에요. 말하다 보니 얼른 가고 싶군요.

지금까지 안 가본 나라가 없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에서의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여기 제 책상 위에 있는 식물 보이죠? 저 식물은 이름이 ‘패트릭’이에요. 필리핀에서 이곳저곳을 탐험할 때였어요. 관광 책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도에 폭포라고 표시된 곳이 있길래 호기심에 찾아갔던 적 있어요. 아, 저는 여행할 때 특히 폭포 주변을 유심히 관찰해요. 희귀한 식물들이 많거든요. 필리핀의 그 호수에서 제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식물을 발견했죠. 식물협회에 샘플을 보내 수종을 의뢰했더니 역시나 처음으로 발견된 종이라는 거예요. 그 이후로 저 식물에 공식적으로 제 이름이 붙여졌죠. 저 같은 식물학자에게는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는 일이랍니다.

최근 들어선 식물 벽은 물론이고 실내 정원이나 다육식물 키우기가 트렌드이기도 해요.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맞아요. 좋은 예가 파리의 루 아부키르(Rue Aboukir) 프로젝트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도심에 공원이나 숲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그게 힘들 때 식물 벽은 공원과 맞먹는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내가 본 서울 역시 도심 내 공원이 많이 부족해 보였어요. 자연을 가까이 한다는 건 경험하지 않고서는 얼마나 좋은지, 또 얼마나 필수적인지 알 수 없어요. 막연히 좋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거든요. 제가 파리에 있을 때 집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해요(웃음). 왜 집으로 초대했는지 알겠죠? 최근에 달라진 거라면, 프로젝트 의뢰가 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서 더 많이 온다는 것이에요. 그게 당신의 질문처럼 자연을 가까이 하고픈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죠. 좋은 현상인 만큼 일시적인 트렌드로 지나가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당신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중부 아프리카예요. 다음달에 여행할 예정이에요. 아프리카의 대자연에서 발견할 새로운 야생 식물들과 곤충들…. 벌써부터 잔뜩 흥분해 있어요. 아마 이 여행이 제 다음 프로젝트들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겠죠.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에 <엘르 데코> 코리아를 다시 한 번 초대할게요. 어때요?

photographer Diane Arques

writer 김이지은

editor 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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