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여혐 논쟁' 확산..일부 남성 '우리는 잠재적 가해자"

임종명 입력 2016. 5.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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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종명 박영주 기자 = 최근 발생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집회가 열린 지난 21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여진 메모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천개가 넘는 메모지 안에는 추모와 사과의 뜻을 전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메모에서 메모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논쟁도 엿보였다.

한 시민은 A4 사이즈 남짓한 분홍색 용지에 '여자라서 죽은 게 아니고 운이 안 좋아 피해를 입은 겁니다. 그런데 스티커로 남자혐오를 붙여놓고 댓글로 남자들을 싸잡아 욕하는 행동은 여자들의 미개함을 스스로…'라고 적어 길바닥에 붙여놓았다.

그러자 해당 용지 옆에는 위 메시지를 가리키며 '이분은 지금 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여성혐오가 원인이라 지적받는 게 불편하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지금 죽은 여성을 추모하는 건 좋지만 날 불쾌하게 하는 건 싫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라는 비판적 글들이 꼬리를 물었다.

'범인이 정신병자니까 여혐범죄 아니라는 당신이 바로 여혐종자', '칼보다 포스트잇이 무서운 그대들…당신들이 만든 여혐사회에서 범인이 탄생했습니다' 등의 신랄한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인터넷 상에 누군가 올려놓은 댓글을 프린트해온 메모에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술집에 도착. 달큰하게 취해 화장실에 갔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 꾸벅꾸벅 졸며 다 왔다는 말에 정신차리고 내리는 이런 행동들이 남자만 가능한 나라는 살기좋은 문명국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시민은 '여자가 무시해서 살인(X) 남자의 열등감, 패배의식 때문에 살인(O). 여자라서 살인한 게 여혐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여혐이냐'라고 반박했다.

'방금 내 옆 남자대학생 3명이 이런 걸로 싸움을 조장하냐고 한참 궁시렁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없는 평화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온 나라가 범인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려고 안달난 한국의 현실', '잠정적 살해가 일반화돼서 불쾌하신가요. 전 여성으로 일반화돼 살해당할까 두려워요' 등의 내용도 있었다.

여성들의 분노 가득한 메모지 사이에서 남성들의 사과글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21세기 남자'라고 표현한 시민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평소에 겪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니던 골목길, 타던 택시를 그들은 마음놓고 다니고 탈 수 없었다는 것을'이라며 '지금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살인마가 아니다라는 선 긋기가 아니다.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다'라고 글을 남겼다.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저는 밤길을 조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성 혐오 없는 세상을 위해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은 메모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모물결이 자신도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범행을 '여성 혐오'로 단정짓고 성별 간 대결을 조장하는 추모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는 4번이나 치료를 받은 정신분열환자다. 환각이나 망각 상태에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대상을 공격한 것이지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보면 안된다"며 "정신질환자 관리 부실 문제를 남녀 대결의 문제로 보는 등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여성 혐오 범죄는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고 범죄의 대상이라는 의미"라며 "이를 사람들에게 계속 강조해서 인식을 시키면 오히려 반감을 유발해 누군가 실제로 고의를 가지고 진정한 의미의 여성 혐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학과 교수도 "여성 혐오라고 보는 건 소수의 의견이다. 피해망상증이 있는 한 남성의 범죄로 대한민국이 들끓는 것은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여성 피해자가 나올 때마다 여성 혐오냐 아니냐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우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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