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 강남역 변함없지만.."화장실은 같이 가자"

김주현 기자 2016. 5.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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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노래방 살인 후 첫 주말 강남역..한쪽은 추모열기, 다른쪽은 여전히 '불금'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르포]노래방 살인 후 첫 주말 강남역…한쪽은 추모열기, 다른쪽은 여전히 '불금']

2016.05.20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관련 강남역10번출구 및 일대 스케치/사진=이동훈 기자

"끼익- 휴. 닫혀있어서 무서웠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네요"
"공용화장실 아니더라도 문 열려 있는 데는 다 무섭죠. 혼자 지나가는 여자가 걱정되기도 해요"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주변 한 상가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20일 밤.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을 찾은 여성 김모씨(23)와 박모씨(23)가 반쯤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잠시 대화도 잊은 채 긴장을 하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안도하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뒤이어 혼자 화장실에 들어온 20대 여성에게 '왜 혼자다니느냐'는 말부터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걱정까지 했다.

김씨는 "이곳은 남녀화장실이 구분돼 있기는 하지만 문이 열려있는 상태니 공용화장실이나 무서운건 마찬가지"라며 "혼자 지나가는 여자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린 둘이니까 택시타는거 봐줘야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노래방 살인' 장소 강남역…사건에도 번화가는 '불금'=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 앞을 찾는 시민들이 끊이지 않는 반면, 자정을 넘은 시간까지 거리는 북새통을 이뤘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피살된 사건은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만, '불금 강남역' 발길을 끊는데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한 듯 했다.

강남역 10번출구 앞 마련된 추모 공간엔 내내 시민들이 북적였다. 밤 11시가 다된 시간에도 시민 50~60명이 가던길을 멈추고 포스트잇을 쓰거나 추모 글을 읽고,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대학원생 김모씨(24·여)는 "대학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강남역을 온다"며 "나일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다른 사건들 보다 더 두렵고 슬픈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정모씨(30)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라니 도대체 안전지대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여성표적 범죄가 근절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오프라인 모두에서 '여험범죄' 논란이 뜨거운 상황. 시민들 사이에는 '표적이 될까 무섭다'는 의견과 '우연치 않게 강남역, 여성이었던 것'이라는 의견이 갈렸다.

회사원 박모씨(27·여)는 "여자를 기다렸다가 죽였는데 여혐범죄가 아니면 뭐냐"면서 "이번을 계기로 여혐 범죄에 대해 확실한 대책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회사원 이모씨(30)는 "여혐 범죄까지는 아닌 것 같다. 자기보다 만만한 상대를 찾은 것 같은데, 왜소한 남자였으면 똑같이 죽이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2016.05.20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관련 강남역10번출구 및 일대 스케치/사진=이동훈기자

◇화장실 앞에서 친구 기다리는 일행들…업주 "남녀공용 화장실, 고칠 계획 없다"=밤 12시가 넘은 시간. 사건이 발생한 노래방 건물에서 채 300m도 떨어지지 않은 상가 밀집지역에서 남여공용화장실이 있는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술집을 찾은 여성 손님 세 명은 다 함께 화장실로 올라왔다. 정작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은 한 명이지만 지난 사건이 신경쓰여 친구들이 동행한 모양새였다. 주변에 서서 통화를 하는 남자를 보고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상가 내 가게 업주 방모씨(30)는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손님이 줄거나 공용화장실인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사건 다음날만 20% 쯤 줄어든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뉴스를 보고 화장실 입구를 다르게 만들어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별다른 민원이 없어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상가시설 2000㎡이상이면 공중화장실 남녀공간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2004년보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남녀공간 분리를 강제할 수 없다. 규모가 작은 상가나 오래된 상가에서 남녀공용화장실이 종종 보이는 이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전수조사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 개정을 국회에 건의하거나 자체 개선으로 방안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그래도 나는 아니겠지" 강남 찾는 사람들…=시간이 지나 오전 1시가 넘자 술에 취해 길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과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강남역을 찾는다는 박모씨(27·여)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아닐거야'라는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혼자 화장실을 가거나 집으로 갈 땐 경계심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인근 술집이나 클럽 직원들은 사건 이후 여성손님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전 1시30분. 길게 늘어진 버스 대기 줄과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한 여성이 넘어졌다. 가장 먼저 여성을 일으킨 건 주변에 있던 20대 여성 김모씨. 뒤이어 한 남성도 '어디가시냐. 부축해드리겠다'고 다가왔다. 김씨는 넘어진 시민을 부축해 근처 의자에 앉혔다. 한참을 함께 있어주더니 택시까지 태워 보냈다. 김씨는 "며칠 전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괜히 나쁜일 당할까 걱정이 됐다"며 "그래도 둘이 있으면 범죄 표적이 될 일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회식을 마치고 귀가 중이던 이모씨(27·여)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씨는 "인터넷에서 보니 혼자있는 여성 중에서도 힘없게 걷는 사람이 범죄 표적이 되기 싶다고 하더라"며 "혼자 가려니 무섭기도 하고 최대한 빨리 걸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기자 na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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