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산모가 원치 않는 '분만 참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서현 기자 입력 2016. 5. 21. 11:47 수정 2016. 5. 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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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태어날 아기의 출산을 앞두고 설레던 부부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동안 정기적인 검진을 받던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저체중아로 태어날 위험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한 겁니다.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은 두 곳이었습니다. 만삭이었던 36살 A씨는 일부러 여자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여자 선생님이 있는 대학병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곳 중 한 곳인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여교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출산 당일, A씨는 11시간 동안 진통을 하다가 병원 측으로부터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런데 진통을 하던 과정에서 남자 의사가 내진을 해 불편함을 느꼈던 A씨는 혹시 수술실에도 남자 의사가 들어오는지를 병원 측에 문의했습니다. A씨는 생각지 못한 수술에 불안했고, 남자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오면 더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병원 측은 “오늘 수술실에 들어오는 남자 의사는 없다”라고 확인해줬습니다. A씨는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실에는 의대생인 남학생 2명이 들어와 A씨 옆에 서 있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 참관이 목적이었습니다. 하반신 마취를 한 상태에서 이들과 눈을 마주친 A씨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A씨는 출산의 기쁨보다는 수치심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아기는 저체중으로, 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졌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A씨는 혹시 복도에서 그 학생들을 마주칠까봐 불안했습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수술에 직접 참여한 의료진이 아닌 제 3자에게 보여줬다는 생각과,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참관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당장 퇴원하고 싶었지만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어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A씨는 병원에 있는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아직까지 당시 상황이 영화처럼 생생히 떠올라 괴롭다며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신과 치료라도 받고 싶지만 현재 모유수유 중이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면증 약을 먹기가 꺼려진다고 말했습니다.

의대생 참관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엔 의대생들이 분만을 지켜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B씨 부부가 전주 모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병원이 산모에게 위자료 3백만 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피고였던 전주 시내 병원은 대학병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판결문에도 “대학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이자,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임상실습 및 참관이 교육과정의 일부로 정해져 있고, 환자의 입장에서도 이를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대학병원 또한 이를 근거로 A씨 가족이 항의하자, “대학병원은 수련기관이기 때문에 환자는 암묵적으로 의대생이나 수련의의 참관을 동의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주에서 있었던 사례와 달리, A씨는 사전에 ‘남자 의사 참관 여부’를 병원 측에 직접 확인했습니다. ○○대학병원은 이에 대해 “남자 ‘의사’가 안 들어온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의료계의 입장도 ○○대학병원과 같습니다. 대학병원은 교육 기관이기 때문에 미래의 의사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진료나 수술 ‘참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사전에 일일이 환자 동의를 받는다면 교육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겁니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요?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미국과 유럽의 대학병원에선 의료진의 필요에 따른 일방적인 참관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국내에선 교육이라는 이유로 관행화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이지, 교육 대상이 되려고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산모의 분만이나 진료 시 의대생이 참관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동의를 구하도록 기준을 설정해 안내하고 있습니다. 수련이나 교육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산모나 환자의 인격권도 보장돼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남녀의 구분을 짓자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남자 환자도 진료나 수술 시 여자 학생들이 참관을 위해 들어온다면, 혹은 남자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의대생 참관’과 이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는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당장 사전 동의 의무화가 이뤄지거나, 제도로 정착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호소하는 분이 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의료계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한번쯤 의견을 표출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를 도출해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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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현 기자as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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