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날 무시해?"..강남역 사건으로 돌아본 '여성혐오 범죄'

김수완 기자,안대용 기자 2016. 5. 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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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살인'도 여성을 타깃으로.."사회 현상이라는 맥락 파악해야" "이런 범죄 묵과하지 않는다는 분위기 필요..근본적으로 '차별' 없애야"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2016.5.20/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안대용 기자 = #이모씨는 지난해 11월 채팅 어플을 통해 만난 10대 여성을 살해했다. 범행 이유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피해 여성이 여러 차례 헤어지자고 했지만 이씨는 계속해서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지난달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대 여성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김치X", "줘도 안 먹는다" 등의 폭언을 들은 것. "만나고 싶다, 연락처를 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정중하게 거절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황한 A씨는 대화 내용을 모두 캡쳐했지만 상대 남성을 '모욕' 혐의로 처벌받게 하기는 어려웠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의자 김모씨(34)는 경찰 조사에서 "사회생활에서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밝혔다. 또 프로파일러 투입 조사에서는 "김씨는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구체적인 사례 없이 피해망상으로 인해 평소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늘어나는 여성혐오 범죄

고모씨는 지난해 6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도로에서 40대 여성이 자신을 기분나쁘게 쳐다본다며 욕을 하고, 뒤에서 밀어 쓰러뜨린 혐의로 기소됐다. 또 지난해 8월에는 택시에 타고 있는 20대 여성이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오해해 택시 문을 차고 택시 안에 있던 여성를 때리기도 했다. 의정부지법은 지난 2월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고씨에게 1심과 같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신모씨는 서울의 한 호프에서 우연히 합석한 뒤 친해진 50대 여성을 강간하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보험 관련 업무를 보기 위해 함께 보험사에 들렀다가 상대 여성이 자신의 본명과 나이 등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무시하냐'며 이유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북부지법은 강간·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신씨에게 지난달 징역 3년과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여성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벌이는 범죄는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흔히 일어난다. 자신보다 아래에 있어야 할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겨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 '묻지마 살인'이라고 알려진 사건의 경우에도 강남역 살인 사건처럼 '약자'인 여성만을 상대로 벌어진 범죄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여성혐오의 한 특징인 '여성멸시, 무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범죄 유형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여성혐오 범죄, 즉 증오범죄(Hate Crime)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지칭하는 순간 여성이 혐오, 범죄의 대상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며 "혐오범죄는 신념에 기인한 일종의 확신범인데 김씨가 의식적인 판단 하에 무슨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하면서 이런 종류의 범죄에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범죄'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의 특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김씨가 말 한 마디를 했다고 곧바로 혐오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며 법률적으로 혐오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이 사건을 혐오범죄로 봐서 가중처벌 할 것이냐, 혐오범죄법을 도입할 것이냐를 따져볼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파급력이 왜 이렇게 커졌느냐,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갑자기 누군가가 '혐오범죄'로 규정했기 때문에 폭발한 문제가 아니라 이런 범죄가 만연해 있고 수면 아래에 있던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폭발한 문제"라며 "개인의 정신병력이 사건의 원인이 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맥락을 보고 사회 현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의 20대 여성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2016.5.20/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여성혐오 범죄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졌나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저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여성혐오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타자화(여성 멸시), 객체화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십여년간 부쩍 늘어난 여성멸시 발언, 즉 혐오발언(Hate speech)에서부터 이미 이런 범죄는 예고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느날 갑자기 '여성혐오로 인한 살인'이 불쑥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여성과 관련된 인터넷 검색어를 분석했더니 '김치녀', '김여사' 등 여성혐오 관련 단어들이 5배 이상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여성혐오 발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남성 네티즌은 관련 기사에 "살인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살인하게 자극하지 마세요가 정답입니다, 한녀들 명심하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남성 네티즌은 페이스북에 "개같은X들이 피해자 이용해먹는데 일등이에요"라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혐오가 늘어났다기보다 표현할 수 있는 매체나 분위기가 허용됐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극단적으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분위기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간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잘못없이 (살해)당한 것"이라며 "(최근의 움직임은) 두드러진 양극화, 이유없는 분노, 분노를 아무에게나 폭발하려고 하는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이런 류의 혐오범죄는 '사회의 양극화'나 '여성혐오가 널리 퍼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곧바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류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엄단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했다.

이수연 위원은 "혐오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크게 없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도 혐오발언이 가볍게 다뤄지기도 한다"며 "아주 강력한 형태의 처벌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혐오발언을 넘어선 '혐오범죄'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사회가 단호하게 이런 류의 범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하는 자세나 대응을 보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흔한 범죄인 것처럼 넘어가면 추가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혐오범죄의 원인은 '혐오'이고 '혐오'의 근본은 차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기존의 여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ability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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