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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북벌의 한과 절경 어우러진 화양구곡

송고시간2016-05-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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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맑은 물·울창한 숲 조화…우암 송시열 자취 고스란히 남아

(괴산=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 국립공원 내 낙영산에서 뻗어 내려온 계곡은 넓게 펼쳐진 바위 위로 흐르는 맑은 물과 기암, 울창한 숲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3㎞가량 이어진다.

<길따라 멋따라> 북벌의 한과 절경 어우러진 화양구곡 - 2

사계절 내내 나들이객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화양구곡이다.

북벌(北伐)을 이루지 못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의 한(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다. 화양구곡으로 명명한 인물도 바로 그다.

송시열은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봉림대군의 스승이다. 그는 봉림대군이 왕(효종)으로 즉위하자 조선에 치욕을 안기고, 명나라와 대결하던 청나라를 치겠다는 뜻을 세웠다.

그러나 김자점 일파가 청나라에 밀고하는 바람에 그의 북벌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10년 가까이 낙향했다가 다시 관직에 나섰으나 이듬해 북벌의 '평생 동지'였던 효종이 승하하면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결국, 북벌 실패의 한을 가슴에 품고 1666년 화양계곡에 터를 잡아 칩거했다.

자신을 중국의 주자에 비유했던 그는 주자가 극찬했던 무이구곡에 버금가는 절경이라는 의미로 이곳을 화양구곡으로 불렀다.

300여년의 역사가 흘렀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의 편린들이 남아있다.

화양계곡에 들어서면 가파르게 솟은 바위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친 듯한 절경이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화양구곡의 제1곡인 경천벽(擎天壁)이다.

이곳을 지나면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이 나온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은 물에 거울처럼 비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계곡에서 빠르게 흘러 내려온 물이 이곳에 잠시 고여 숨을 고른 뒤 다시 흘러내려간다.

<길따라 멋따라> 북벌의 한과 절경 어우러진 화양구곡 - 3

운영담 남쪽에는 희고 넓적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북벌의 웅비를 펼치지 못한 송시열이 효종을 생각하며 엎드려 통곡했다는 제3곡 읍궁암(泣弓巖)이다.

읍궁암 맞은 편에는 반청친명(反淸親明)주의자인 송시열의 문하생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한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두고 제사를 지냈던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있다. 지나친 중화주의자, 조선 말 당쟁의 중심에 있던 노론의 영수라는 또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는 송시열의 이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만동묘는 1942년 일제에 의해 불타고 묘정비들은 땅에 묻혀버렸다.

화양서원은 1980년대 수해로 13채 중 11채가 초석마저 유실돼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은 화양계곡 최고 절경이다.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시열은 금사담에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를 주춧돌로 삼아 한 칸짜리 방으로 된 암서재(巖棲齊)를 지어 책을 읽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주위의 기암절벽과 노송이 어우러진 암서재에 올라 맑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시 한 수를 읊으며 깊은 감상에 잠길 듯하다.

암서재 아래 바위에는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산은 구름이 끊어지고, 무이산은 비었다)'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창오산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산이고 무이산은 주자가 살던 산이다.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거꾸로 거슬러 오르면 수십 개의 바위가 엉켜 있고 별 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의 제5곡 첨성대(瞻星臺)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평평한 바위가 첩첩이 겹쳐져 있고 그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한다.

바위에는 명나라 의종이 송시열에게 내린 것으로 전해진 '비례부동(非禮不動·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이라는 글이 음각 돼 있어 화양구곡이 이어온 역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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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걷다 보면 바위들이 벽처럼 하늘로 치솟거나 가로누운 너럭바위에 물이 미끄러지는 풍광들이 파노라마처럼 넘어가는 듯하다.

양쪽 산기슭에 빼곡한 소나무들이 굵은 줄기를 드러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제법 시퍼렇게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고, 바위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거친 물살을 일으키는 계곡의 풍경은 여행의 지루함을 잊게 한다.

주변의 경치에 감탄하다 보면 큰 바위가 계곡 옆에 우뚝 솟아 구름을 찌를 듯하다는 제6곡 능운대(凌雲臺)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을 한 제7곡 와룡암(臥龍巖)이 펼쳐진다.

바위산 위에는 낙락장송들이 오랜 성상의 옛일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 잡고 있다.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 학소대(鶴巢臺)로 불리는 제8곡이다.

경천벽에서 걷기 시작해 다리가 뻐근해질 만하면 화양구곡의 마지막 절경인 파천(巴天)이 맞이한다. 하늘의 마지막 한자락이라는 의미를 담은 곳이다.

협곡에 널찍한 반석이 펼쳐지고, 그 위로 물살이 굽이쳐 흐른다.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던 곳이라는 전설도 있다.

너럭바위와 금빛 모래를 가르는 맑은 물이 굽이치고, 기암과 노송이 가득한 화양구곡을 걷다 보면 조선의 대학자인 송시열이 왜 이곳을 화양구곡으로 불렀는지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햇볕이 따가운 봄 화양구곡을 둘러보고 나면 촉촉한 땀이 젖어들지만, 세상의 시끄러움을 잠시나마 잊기에 충분하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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