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날]부부(夫婦)가 될 수 없는 부부(夫夫) 혹은 부부(婦婦)

이혜원2 입력 2016. 5. 2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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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인정 받고 싶은 '동성 커플' 확산
세계 22개 국가에선 동성결혼 합법화
"한국 가치관과 맞지 않아" 거부 여론도 여전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느낀 건 내 인생에 두 번뿐입니다. 태어난 성(姓)이 아닌 사랑에 혼인 기반을 두는 시대에 살고 있어 행운이죠."

48년간 아내 클레어와 결혼 생활 후 두번째 '신혼'을 맞은 해리스 워포드(90) 미국 민주당 전 상원의원. 그는 지난 30일 10년 넘게 교제한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워포드 전 의원은 "1996년 아내가 사망한 후 다신 그런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5년 뒤 해변에서 다시 한번 로맨스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의 새 배우자는 남자인 매튜. 동성 파트너다.

지구 반대편 한국.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인 부부의 날(21일)에 화목한 가정을 일구자며 하나가 됐지만 '부부'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동성(同姓) 커플이다.

◇"우리도 부부로 인정받고 싶어요"…'법적 커밍아웃' 꿈꾸는 동성 커플들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가수 송재만(31)씨는 연인 크리스 슈나이더씨와 12년째 교제 중이다. 긴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신고할 계획이다.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관계는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에 담기지 않는 '남'이기 때문이다.

송씨는 "오랜 교제 끝에 관계를 법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며 "결혼식은 7월 한국에서 올리지만 신고는 외국에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 커플은 6월 스위스에 '파트너' 신고를 할 예정이다. 현재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시행 중인 스위스에선 동성결혼 입법화까지 추진 중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지난 2014년 10월 발표한 '한국 LGBTI(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LGBT 417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가량(45.3%)이 연애 중이라고 응답했다. 이들 25.5%는 동거 중이었다.

응답자 86.1%는 "파트너와의 결혼이나 관계의 사회적 인정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이들 5명 중 3명(59.8%)은 법적 결혼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러나진 않지만 사실혼에 가까운 동성 커플들 대부분이 '법적 커밍아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동성커플로 익히 알려진 김조광수(51) 감독과 김승환(32) 레인보우팩토리 대표는 동성결혼 합법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 커플은 지난 2013년 9월 공개결혼식을 올린 같은해 12월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구청은 "민법상 당사자 간의 혼인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불수리처분했다.

김조 감독과 김 대표는 2014년 5월21일 부부의날을 맞아 서울서부지법에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지난 7월 심문기일이 열린 이후 더디게 진행 중이다.

◇동성 간 결합은 비정상?…세계는 이미 합법화 추세

동성결혼 합법화는 이미 세계적 추세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현재 세계 22개 국가에서 동성 간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13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면서 모든 공문서에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부모1'과 '부모2' 등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미국 내 동성결혼 금지는 위헌"이라 결정하면서 미 전역에 합법화가 이뤄졌다.

지난 11일 이탈리아도 하원에서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최종 가결되면서 28개 유럽연합 회원국 중 마지막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가 됐다.

합법화는 아니지만 일본에선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 시부야 구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성 커플을 일반 부부와 같은 관계로 인정하는 '파트너십 증명서'를 최초로 발급했다.

동성 파트너십은 법적 배우자 권리를 일부 보장하는 제도다. 법적 상속권은 부여하지 않지만 일반 부부의 권리 일부를 보장한다. 응급상황 시 의료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작게는 휴대전화 가족할인 등도 가능케 한다.

시부야 구 이후 세타가야 구 등 일본 지자체에선 잇따라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기본권 문제" vs "한국 가치관 맞지 않아"

동성결혼 합법화는 이들에게 공식으로 '부부'라 불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동거인'이 아닌 '배우자'로 인정되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0월 부산에선 60대 여성이 40년간 동거해온 동성 친구가 사망한 후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자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가 암으로 사망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A씨는 재산 상속을 두고 유족과 갈등을 빚은 끝에 "장기를 기증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후 투신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이들이 사실혼 관계인 레즈비언 커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십년 동안 동거해온 커플이 상속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사실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선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김규호 선민네트워크 대표는 "서양의 상황을 한국에 비추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선 1000년 넘게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동양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만큼 결혼은 이성에 의한 결합만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녹색당 류미희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동성 간 결혼을 찬성하는 비율이 5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야 법제화가 됐다. 기분권 보장을 국민 대다수의 완벽한 합의로 이뤄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hey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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