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과거 금지곡 합창한 대만 새 총통..'대만 원주민시대' 왔다

2016. 5. 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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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 경제·사회정의·국제활동공간 확대 등 내정에 방점 중국이 바라는 '92공식'은 언급 안해..'경제총통' 기대감
차이잉원 총통 취임식장(EPA=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취임 선서(AFP=연합뉴스)
대만 총통 취임행사에서 대만 원주민 부족 공연(AP=연합뉴스)
집무실 책상 앞에서 선 대만 차이잉원 총통(AP=연합뉴스)

취임사, 경제·사회정의·국제활동공간 확대 등 내정에 방점

중국이 바라는 '92공식'은 언급 안해…'경제총통' 기대감

(타이베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대만 정권의 교체는 20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식장에서 울려 퍼진 저항가요 '메이리다오'(美麗島)가 알렸다.

취임 연설을 마친 차이 총통이 마지막 순서로 예정된 타이베이 둔화(敦化)초등학교 합창단과 국립실험 합창단의 '메이리다오'를 막힘없이 불러나가자 취임식 행사는 절정에 올랐다.

"우리의 요람 메이리다오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안"(我們搖籃的美麗島, 是母親溫暖的懷抱)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가 중반에 이르자 차이 총통은 손을 휘두르며 감격에 겨워했다.

취임식장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의 참석자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는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한때 금지곡이었던 메이리다오가 총통 취임식에서 불릴 것이라고는 상상키 어려웠던 일이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메이리다오는 1970년대 대만의 민가를 시인 천슈시(陳秀喜)가 개사한 노래로 대만의 민주화와 독립을 상징하며 계엄령 시기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노래다. 대만판 '님을 위한 행진곡'인 셈이다.

이 노래의 제목을 본따 발간된 잡지 '메이리다오'를 둘러싼 1979년 민주화 투쟁은 대만판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며 민진당 창당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메이리다오 합창에 앞서 차이 총통의 출신 부족인 파이완(排灣)족 어린이들로 구성된 핑둥(屛東)현 디마얼(地磨兒)초등학교 합창단원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단상에 올라 파이완족 언어로 부르는 대만 국가를 차이 총통에게 헌창(獻唱)했다.

취임식장엔 차이 총통에 대한 환호와 박수 소리와 함께 대만의 원주민 부족을 상징하는 대형 인형 풍선 5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국민당 정권이 대만에 진주하기 이전부터 대만에 정착해 살던 본성인(本省人) 시대의 대만사회가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듯 보였다.

취임식 행사에선 대만 원주민 부족들의 다양한 삶과 고통, 역사를 재현한 퍼포먼스가 장관을 이뤘다.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시대'가 가고 민진당의 '차이잉원 시대'가 오는 것을 대만 사회의 주류가 외성인(外省人·1949년을 전후해 국민당 정권과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한족) 대신 원주민 중심의 본성인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취임식장이 마련된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대도의 이름 역시 과거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의 장수를 비는 의미의 제서우(介壽)로에서 타이베이 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한 원주민 부족인 카이다거란족의 이름을 따 개칭한 도로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취임식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는 총통부에 들어가 정권 인수인계와 취임선서를 하는 차이 총통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하얀색 정장에 검정색 바지 차림의 차이 총통은 예의 차분하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정각에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안내로 총통부내 강당 징궈(經國)청으로 들어섰다.

국가 제창 순서에서 차이 총통이 가사중 "오당소종(吾黨所宗·우리 (국민)당을 뿌리로 삼아)"이라는 대목을 조심스럽게 부르는 모양이 나오자 주변 대만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과거 차이 총통은 국가를 부를 때 이 대목은 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차이 총통은 중화민국 국기와 국부 쑨원(孫文)의 초상화 앞에서 삼배한 뒤 라이호민(賴浩敏) 대법관회의 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을 들고 총통 취임 선서를 했다.

쑤자취안(蘇嘉全) 입법원장(국회의장)으로부터 중화민국 국새, 총통 인장 등을 받아듦으로써 정권인계를 완성했다.

차이 총통이 총통부 건물에서 빠져나와 천젠런(陳建仁) 부총통과 취임식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2만여 참석자들의 환호 소리로 장내가 떠나갈듯 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참석자들은 차이 총통의 연설 한마디를 경청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 첫 소절부터 "젊은이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과감한 개혁 실행을 약속했다.

차이 총통은 "젊은층의 미래는 정부의 책임이며 젊은이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국가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젊은 층을 돕는 것을 정부의 중대 책무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국민이 새 총통과 새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문제해결' 네자"라며 "지금 대만의 처지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집권자가 '의무반고'(義無反顧·정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간다)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정리를 위한 총통부 직속의 '진상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겠다며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취임 연설의 대부분은 경제살리기, 사회정의 실현, 국제활동공간 확대 등 내정 부문에 할애됐다.

중국이 집요하게 압박해온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양안관계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줄임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엿보였다. 대신 연설 곳곳에 '중화민국 헌정'을 강조하며 대만의 주권 정통성을 역설했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대만'은 41차례, '중화민국'은 5차례 언급했다.

그는 또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밝히는 대목에서도 "기존의 단일 시장에 의존하는 현상과 작별을 고하겠다"며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샤오잉(小英·차이잉원의 애칭)의 친구'라는 단체의 한 40대 회원은 "대만 역대 총통 중에서 최고의 경제 총통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취임식에 참석한 린융지(林永基·52·의료기기 도매상)씨는 "원래 국민당 지지자였으나 마잉주 정부의 경제실정, 부정부패에 실망해 차이잉원 지지로 바꿨다"며 "차이 총통이 대만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참석자들 사이에선 차이 정부의 의도대로 양안관계가 큰 문제가 없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대세를 이뤘다.

한 참석자는 차이 총통의 '중화민국' 노선은 과거 민진당의 급진적 대만독립 노선과 국민당의 대륙통일 노선의 사이에 있는 중간 노선이라는 해석과 함께 "중국이 차이 총통의 온건 중도노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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