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당하지 않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로

박정훈 입력 2016. 5. 18. 21:38 수정 2016. 5.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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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여성혐오범죄',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려면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오마이뉴스박정훈 기자]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난 죽이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난 살아남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분명 다른 세상을 살고 있으며, 분명 다른 권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난 죽이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남성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사회로부터 무시당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누구나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약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취사선택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약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냥을 나가듯, 어제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 가해자들은 희생양을 찾기 위해 거리에 나선다.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는 존중은 이 순간 사라진다. 상대를 존엄한 인간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 나와의 공통성과 동등성을 부정하는 것을 혐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면에서 지난 17일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칼로 살해한 '강남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범죄다.

'우발적 살인'이 절대로 아니다

 지난 17일 새벽 살인이 발생한 강남역 일대의 노래방 화장실의 문.
ⓒ 이희훈
따라서 이것은 무의식이나 우발로는 설명할 수 없다. 나보다 힘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 라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질문에 대한 이성적 답변이자 그에 따른 목적의식적 행동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여성혐오범죄를 토론할 수 있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물학적 힘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의 미친 행동도 아니다. 여성혐오범죄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쥐어준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한낮에 거리를 활보한다고 하더라도, 성별이 구분되는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온몸을 두꺼운 옷으로 덮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서 살인과 강간의 위험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여자화장실의 문을 딸 수 있는 힘, 강제로 옷을 벗길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고 부른다.

이 권력구조에서 아무 죄를 짓고 살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끝나는 것일까?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고 그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80년 5월 18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사람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5.18 진압에 직접 총을 들고 가지 않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80년 5월 18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지지하지 못한다면 절망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 주변의 여성들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 주변의 남성들과 성 평등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나와 당신의 존엄을 찾는 길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이것은 당신을 가해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당신이 자신의 욕구와 불만 때문에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지 않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며 여성혐오적인 발언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을 믿는 것이며, 권력에 맞선 약자들의 강렬한 연대의 요청이다.

개인이 홀로 힘으로 살아가는 두렵고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권력자들의 혐오와 범죄에 함께 맞서 싸운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원칙은 간단하다. 너와 나는 동등하다. 이 동등함과 공통성이 여성 앞에서 멈추지 않으면 된다. 여성은 인간이다. 비록 우리는 자산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상당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최소한 정글에서 살아가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누군가 그런 취급을 받는다면 그것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며, 따라서 나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숲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야수가 아니라, 힘은 없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강남역 10번 출구가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양심의 분출구라고 믿는다. 서로의 양심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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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알바노조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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