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농축산업 죽인다?

2016. 5.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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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행령 입법예고되자 일부 경제단체와 언론, 농축산·화훼단체 등 반발

“취임 이후 좀 할 만하면 (일이) 터지고 해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상한 법’이 시행되기까지 해서….”

2004년 10월 30일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의 세미나에서 이같이 넋두리했다. 이 장관이 언급한 ‘이상한 법’은 한 달 전 시행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의미했다. 당시 정부가 공언했던 경제성장률은 7%. 하지만 2014년 태풍 매미, 중국발 쇼크, 대통령 탄핵사태, 미국 달러화 약세 등 악재가 잇달아 경제를 강타했다. 성장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4.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자 이 장관은 돌연 성매매특별법을 문제삼고 나섰다.

2004년 9월 23일 시행된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대해 경제당국은 ‘9·23 사태’라고 부를 만큼 불만이 많았다. 재경부는 성매매가 금지되면서 잃어버리는 국내총생산(GDP)이 1%포인트는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근거는 2002년 기준 성매매 관련 시장이 GDP의 4.1%인 24조원대로 추정된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였다. 성매매 직·간접 관련자들은 전체 생산활동인구의 4%인 100여만명으로, 이들의 수입이 연간 25%만 줄어도 GDP는 연간 1%포인트 하락한다는 것이다. 당시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경기가 어려워진) 숙박업소 대출을 빠르게 회수하고 있고, 음주 등 주소비층인 젊은 남성의 소비심리가 급속하게 위축될 수 있어 성매매특별법의 여파는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어름장을 놨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2016년 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똑같은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원래 법률명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교사·언론인 등은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들로부터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을 초과해서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뇌물이나 과도한 접대를 받지 말라’는 법이다. 이 법은 공무원, 교사, 언론인 등 당사자와 그 배우자 등 최고 200만명에게 적용된다.

공무원은 이미 행동강령 통해 적용

이 같은 시행령이 입법예고되자 일부 경제단체와 언론, 농축산·화훼단체 등 이해단체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근거는 “내수가 위축돼 경제가 죽는다”는 12년 전 레퍼토리와 똑같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청렴해서 망한 나라가 있느냐”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이 직·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칠 분야는 농축산, 화훼 업계로 추정된다. 또 골프나 호텔 등 외식업체, 백화점 등도 매출액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전체 외식업체의 약 37%가 영향을 받고, 2014년 기준 국내 외식업 연간 매출의 약 5%인 4조15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한정식의 61.3%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어 서양식(60.3%), 육류구이전문점(54.5%), 일식(45.1%) 등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농축수산물 중에서는 한우, 굴비 등 고가상품을 판매하는 농어민들의 걱정이 크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김영란법은 부정청탁금지법이 아니라 ‘수입 농축산물 소비 촉진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농축수산업계에서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농축수산물을 제외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형평성에 위배된다”며 국민권익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과일의 경우 전체의 50% 이상, 인삼은 70% 이상, 한우는 98% 이상이 5만원 이상의 선물세트로 판매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사과·배는 최대 1500억원, 한우산업은 최대 4100억원까지 매출액이 감소한다고 농협은 밝혔다. 농협중앙회는 5월 12일 긴급성명을 내고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보다 더 큰 충격으로, 농업인의 생존권 위협은 물론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농축산업 기반이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회는 부정청탁금지법 금품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해 달라”고 밝혔다.

기업 접대비 감소도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이 도입되면 기업 접대비가 연평균 4503억원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부풀려진 것”이라는 반박도 많다.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행동강령을 통해 이미 적용되고 있어 김영란법으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행동강령은 3만원이 넘는 밥과 5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선물은 아예 기준이 없다. 선물과 경조사비로 보자면 김영란법은 오히려 기준이 각각 5만원씩 완화됐다. 공무원은 100만명으로 김영란법 적용대상 중 가장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청탁금지법의 적정 가액기준 판단 및 경제효과 분석’ 자료를 보면 선물의 수요 감소는 적으면 0.0052%, 많아야 0.86%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선물수요가 1%도 감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업 접대비 줄어들면 경쟁력 회복”

단기효과가 아닌 장기효과로 가면 성장 논쟁은 불필요해 보인다. ‘청렴한 나라일수록 잘산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부패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매년 0.6~1.4%포인트 높게 성장한다. 한국은 높은 부패도가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데 일조해 왔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청렴도 지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6점에 그친다. OECD 34개국 평균 67.2점과 비교하면 크게 낮다. 국가 비교를 보더라도 일본, 홍콩은 물론이고 아랍에미리트연합이나 부탄보다도 낮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수준만큼만 개선되면 2010년 기준 1인당 명목 GDP는 연평균 약 138.5달러, GDP 성장률은 명목기준으로 평균 0.65%포인트 정도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 성장률이 2.6%였으니까 청렴도만 높아졌다면 3%를 넘길 수 있었다는 의미다.

부패 축소는 지하경제를 축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린츠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1999~2007년 평균)는 26.8%로, OECD 34개 국가 중 네 번째로 크다. 한국보다 지하경제가 큰 나라는 멕시코, 그리스, 이탈리아밖에 없다.

또 기업 접대비 감소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감소시켜 경쟁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많다. 기업의 경영상 부담이 줄어든 만큼 외국과의 가격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부패지수가 낮은 선진국의 기업들은 접대비 비중이 현저하게 낮다. 다만 농축수산물 수요 감소는 기업들이 절약된 접대비만큼 사내 임직원들이 명절선물로 활용하거나,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들이 사내식당에서 국내 농축산물 사용 비중을 확대하고 각종 회의 때도 공산품인 음료보다 국내산 과일을 제공하는 식으로 수요를 늘리면 된다는 제안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측은 “만연되어 있는 접대문화는 ‘누가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가’보다 ‘누가 접대를 잘하는가’를 기준으로 사업 입찰 등의 수혜를 받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기술과 마케팅 전략을 앞세운 건전한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면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본도 적극적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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