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인간존엄 탐구 통했다
◆ 한강, 맨부커상 수상 ◆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지만 차분하고 정갈한 목소리의 소설가 한강은 수상 소감을 전했다. 연단에 선 한강은 영어로 "오래전 쓰인 책으로 지금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서도 "독자들이 소설 읽기를 좀 다르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 갖는 마음으로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한강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7번째 수상자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2005년 이스마일 카다레를 시작으로, 2015년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까지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예를 안겼다. 필립 로스, 리디아 데이비스 등을 수상 작가로 둔 미국은 수상자를 유일하게 복수 배출했고 알바니아, 나이지리아, 캐나다, 헝가리는 한 명씩 배출했다. 한국은 6번째 수상국의 명성을 확보했다. '채식주의자'는 알바니아어, 헝가리어 외에 영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다섯 번째 수상작이다.
벼락 같은 희소식에 문단의 찬사가 이어졌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순수한 문학적 평가를 통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탄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언어 장벽에 가로막혀 절연돼 있던 한국 문학이 번역으로써 장벽을 허물었다. 한국 문학이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라는 틀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간 낙차가 없다는 진실이 밝혀진 사건"이라며 "한국 문학 위기설이란 쓸데없는 경멸의 담론에 대한 저항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극찬했다. "한국 문학이 지역적인 내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적 공감을 살 만한 주제와 이미 만나고 있었음을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한강 소설은 첫 작품부터 웅숭깊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은 인간 상처를 탐구하는 한강의 문학관(觀)을 세상에 알렸다. 첫 장편 '검은 사슴'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의 모습으로,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은 석고로 인체의 본을 뜨는 라이프캐스팅으로 인간 심연을 파고들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촉망받는 여자 화가의 의문사에서 기억과 고통을, '희랍어 시간'에서는 최고(最古)의 언어인 희랍어란 소재로 말(言)을 잃어가는 여성의 삶에서 침묵과 소멸을 조명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희생과 상처를 다뤘다. 한강표 소설을 단 한 단어로 압축한 키워드는 '인간'이다.
이번 수상은 번역이 빛을 발했다. 톤킨 위원장은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에 대해 "놀라운 번역"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기묘하면서도 뛰어난 '채식주의자'가 영어에 들어맞는 목소리를 찾았다"고 평했다.
한편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채식주의자'는 국내 서점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주요 서점들에서 이날 하루에만 1만4000부 이상 팔렸다.
▶ 한강이 걸어 온 길
▷1970년, 광주 출생 ▷199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문학과사회'에 '얼음꽃' 외 4편의 시로 등단 ▷1994년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 당선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7년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2010년 동리문학상, 목월문학상
▷2014년 만해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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