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에 몰린 십대 성매매, '자발적인 성적 결정'인가요?

양은하 기자 2016. 5.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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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아동·청소년의 자발적 성매매, 민사상 손해배상 허용될 수 없어" 지원단체 "갈 곳 없는 청소년 성매매, 자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지난 2014년 6월, 지적 장애가 있는 김가영(가명·당시 13세)양은 엄마의 핸드폰을 갖고 놀다가 떨어뜨렸다. 핸드폰 액정이 깨진 걸 보고 야단맞는 것이 두려웠던 김양은 가출을 했고 채팅앱에서 재워줄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만난 남성을 따라 모텔로 간 김양은 일주일 동안 6명의 성인 남성들에게서 성폭행과 추행을 당했다.

최근 김양이 성매매 남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서부지법이 기각하면서 10대 청소년의 성매매를 자발적인 성적 자기 결정으로 보는 법원의 판단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동·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위력이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면 이들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인데 김양을 지원해 온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아동·청소년의 성매매는 자발적 결정이 아닌 성인들의 성 착취기 때문에 법적 약자인 이들을 피해자로 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 성매매는 자발적? 지난 13일 법원은 김양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대상아동·청소년은 피해아동·청소년과 개념적으로 구별된다"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이 성매수자를 상대로 낸 민사상 손해배상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김양의 성매매를 자발적인 행위로 본 데는 성매매 과정에서 위력, 위계, 강요가 없었다는 점과 김양이 사건 당시 만 13세를 넘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현행 형법상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만 13세부터 인정된다. 따라서 만 13세 미만 아동·청소년과의 성관계는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의제강간으로 처벌받지만 김양의 경우 사건 당시 만 13세 2개월이었기 때문에 법원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 본 것이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매매가 성적 자기결정에 따른 판단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대가가 있었다는 이유로 성매매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아동·청소년의 성매매는 이처럼 성폭행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탁틴내일 대표도 "성매매 아동·청소년 대부분은 가정폭력 등 집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를 시작한다"며 "몹시 곤궁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성매매를 자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의 2014년 성매매 피해청소년 치료·재활사업 운영실적 분석에 따르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매매 청소년 중 가출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98.0%에 달한다. 이들 중 가족과 동거하지 않는 청소년이 34.7%이고 성매매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가출 후 생계비 마련'(34.6%)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등 단체들이 16일 서울서부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 News1

◇피해자 아닌 대상청소년, 지원 대신 처분받아

문제는 성매매 아동·청소년들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를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수사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과 달리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의 경우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전문 상담가들로부터 경찰·검찰·법정 피해자 진술 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성매매 아동·청소년들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에 따라 '대상청소년'으로 분류돼 감호 위탁,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을 뿐이다. 김양의 경우도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성매매라는 이유로 아동센터로부터 지원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보호처분은 성매매 청소년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보호처분을 처벌처럼 느껴 신고를 주저한다"며 "심지어 성매매 알선자, 성 구매 남성들이 이를 청소년 위협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을 돕는 위기청소년교육센터가 전국에 10개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센터에서는 성매매 청소년을 포함한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4박5일 성장캠프 등 단기 프로그램과 상시 상담 등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 대표는 "성매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문상담소 설치 등 피해자로서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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