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앤장, 가습기 사건 서울大와 이메일 논란

檢,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수사 확대

◆ 가습기살균제의 진실 ◆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와 옥시를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대표 이재후)가 2013년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에 살균제 독성 추가 실험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실험 조건을 의뢰한 다수의 이메일을 매일경제가 15일 확보했다.

문제의 이메일은 옥시와 김앤장이 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2011년 서울대 연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새롭게 확인된 것이어서 논란이 거셀 전망이다.

매일경제가 확보한 3건의 이메일에 따르면 2013년 7~8월 김앤장의 화학·제약 담당 김 모 변리사는 조 모 교수에게 살균제 독성 실험 조건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김앤장이 2013년 3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당시 법원에 서울대 보고서를 제출하고 같은 해 4월 혈청·혈액 원 데이터(raw data)를 요구한 데 이어 8월 실험 조건을 재설정해 줄 것을 의뢰하면서 쓴 이메일이다.

김 변리사는 2013년 8월 2일자 이메일에서 △흡입 독성 실험 시 '(가습기 분무액) 입자 크기'가 다르다는 논란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니 별도로 측정할 필요가 없음 △흡입체임버(실험공간)의 크기가 작아 공기 중 농도가 높아지니 실험 장소를 바꿀 것 △공기 중 PHMG(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탈린구아니딘) 농도 측정 방법 개발 과정을 생략할 것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메일에는 또 "저희 (김앤장) 팀 내부에서 상의한 결과 실험 계획을 보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옥시)가 학수고대하고 있으니 되도록 이른 시간 내에 보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등의 의견도 담겼다.

김앤장 관계자는 그러나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재판에서 검증하면서 추가 실험이 가능한지 문의한 것일 뿐, 추가 실험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서울대 연구팀 권 모 연구원은 나흘 뒤인 8월 6일 조 교수에게 "(김앤장의 요청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고 추가 실험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권 연구원은 △'입자 크기'는 OECD 기준 필수 기재 항목이고 정확한 독성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측정이 필요함 △(실험 공간은 바꾸지 말고) 실제 가정집을 시뮬레이션한 기존 데이터를 참고하면 됨 △공기 중 PHMG 농도는 중량법이나 고분자 분석을 통해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김앤장의 요청에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도 문제의 이메일을 확보했으며, 김앤장의 서울대 실험 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15일 "전문가(김앤장 변리사)가 옥시에 유리한 실험 환경을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를 (조 교수 측에) 먼저 제시했거나 공모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조사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앤장은 서울대 연구팀이 새끼를 밴 쥐를 대상으로 한 생식 독성 실험 결과를 발표하던 2011년 11월 29일과 12월 27일 자리에도 참석해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는 옥시 본사인 레킷벤키저 글로벌 독성연구소 책임자인 아룬 프라카시 박사도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호주에 위치한 글로벌 독성연구소는 전 세계 레킷벤키저 제품 안전과 환경 문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한다. 2001년 3월 옥시 인수 이후 본사가 흡입 독성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도 본사 차원에서 전 세계 연구개발 기능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옥시에 유리하게 실험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대 조 교수의 구속은 몇 개월간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처음 이뤄진 형사처벌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넘어온 것은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 원인'이라고 밝힌 질병관리본부의 중간 발표 이후 1년 뒤인 2012년 8월이지만, 검찰은 첫 고발 이후 6개월이 흐른 2013년 2월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당시 시민단체를 통해 확인된 사망자만 52명이었는데도 2014년 3월 보건 당국의 1차 피해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사가 멈춰섰다.

　올해 1월 26일에 이르러서야 검찰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을 구성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신현우 전 대표(68)와 세퓨의 오 모 전 대표(40) 등 살균제 '최초 개발' 책임자 4명 전원을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 수감하면서 수사의 큰 산을 넘었다.

　검찰은 이제 수사 범위를 옥시 살균제를 베껴 자체 PB상품을 내놓았던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업체로 넓힐 계획이다.

　16일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PB상품을 제조한 용마산업 대표 김 모씨에 대한 소환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04년 각각 개발·출시된 롯데마트, 홈플러스 살균제가 안전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제조·판매된 경위를 조사한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와 이승한 전 홈플러스 대표는 현재 출국금지 상태다.

[김윤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