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알바해서라도.." 쥬얼리 하주연의 래퍼 집념

양승준 2016. 5. 1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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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쇼미더머니5' 탈락 뒷얘기
걸그룹 쥬얼리 출신 하주연은 Mnet '쇼미더머니5'에 지원해 화제를 모았으나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Mnet 방송화면 캡처

시작은 화려했다. 지난 2008년 걸그룹 쥬얼리에 새 멤버로 들어가자마자 댄스곡 ‘원 모어 타임’으로 KBS2 ‘뮤직뱅크’에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꽃길’을 걸었다. 헬기를 타고 스케줄 이동을 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 좀처럼 누리기 어려울 정도의 스포트라이트와 수입이 그에게 쏟아졌다.

축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정아와 서인영이 2010년 팀을 떠난 뒤 쥬얼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새 멤버를 영입해 재기를 노렸으나, 빛을 보지 못해 결국 2015년에 팀은 해체됐다. 이 때부터 쥬얼리 출신 하주연(30)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약 10년 동안 몸 담았던 소속사 스타제국을 나와 홀로서기에 나섰으나 설 무대가 없었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레 수입도 끊겼다. 하주연은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현실은 냉정했지만, 래퍼로서의 욕망은 더 뜨거워졌다. 결국, 그는 용기를 내 Mnet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5’에 지원서를 냈다. 13일 방송에서 공개된 결과는 1차 예선 탈락. 약 두 문장의 랩을 하고는 가사를 잊는 실수를 한 탓이다. “속상해서 집에 와서도 계속 울었어요.” 15일 전화로 만난 그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쥬얼리 탈퇴 후 2년 동안 꾸준히 랩 가사 쓰며 연습했거든요. 방송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혼자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는 건 처음이라 너무 긴장을 한 거 같아요.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주위의 시선도 절 조여오더라고요. 오디션이 처음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랩을 하는 데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멘붕’이 됐죠. 얼마나 기다렸던 무대인데… 실수도 제 탓이죠. 지나간 일 변명하긴 싫지만, 많이 아쉽네요.”

걸그룹 쥬얼리로 활동했던 시절의 하주연(앞줄 가운데). KBS 제공

하주연은 오디션 장에 등장하자 다른 평범한 지원자와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얼굴이 알려진 그가 ‘쇼미더머니5’의 문을 두드린 건 “이러다가 (래퍼로서)내가 없어질 것 같아서”다.

“2년 동안 쉬며 너무 힘들었어요. 직접 기획사를 찾아가 봤지만 일도 잘 안 풀렸고요. 아는 분 연습실에 가 랩 연습도 꾸준히 하고 가사를 쓰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TV 속에 동료들 활동하는 모습이나 새로운 가수들 나오는 걸 보면서 점점 제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나이만 먹고 난 뭐하고 있는 걸까’란 자괴감까지 들었죠. 집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여성 래퍼들은 주로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오고, 좀 더 거친 남성 래퍼들이 ‘쇼미더머니’에 나온다는 걸 알지만, 딱히 제가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요.”

하주연은 ‘쇼미더머니5’에서 ‘잘 나갈 때 에브리바디 콜 미, 못 나가니 돈 노 바디 콜 미’라고 랩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한 순간에 잊혀진 가수가 된 자신의 처지를 담은 랩이다. 그는 이 랩을 제대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랩엔 독기가 서려있었다. 데뷔 9년 차로 설 자리를 잃은 여가수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무대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담겨서다. 미처 못 들려준 노랫말이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내 절실함을 표현하는 내용이었다”며 “이제 기회가 왔다는 노랫말도 있어 들어 본 지인들이 짠하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들려줬다.

하주연의 뜻밖의 도전에 동료들도 놀랐다. 박정아와 서인영이 빠진 뒤 쥬얼리로 함께 활동하던 은정과 예은도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냐” “대단하다”며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박)정아 언니는 ‘누구나 실수하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니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고 했어요.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광희는 ‘누난 랩 잘하니 잘 하고 와’라고 격려해줬는데, 절 응원해 준 지인들의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해요. 광희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정준하 선배님이 ‘쇼미더머니5’에 지원해, 제가 나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하주연이 Mntet '쇼미더머니5' 예선에서 탈락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Mnet 방송화면 캡처

쥬얼리 시절의 화려함은 잊은 지 오래다. 그에겐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게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집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인으로서 집에 손 벌리는 걸 스스로 용납하지 못해서다. 하주연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로 데뷔한 뒤 청춘스타로 활약했던 배우 하재영의 딸이다.

“2년 동안 쉬었으니 당연히 수익이 없었죠. 저도 서른이 넘었는데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는 거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자 가게 계산원으로 일하고 그랬죠. 처음엔 사람들이 너무 알아봐 쑥스럽긴 하더라고요. 음악학원에서 랩 레슨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제 현실은 바뀌지 않았으니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어요. 아는 분이 하는 커피숍 일로요. 열심히 일해야죠, 하하하.”

하주연은 15일 오랜만에 쥬얼리 멤버들을 만난다. 박정아가 이날 프로골퍼 전상우와 웨딩마치를 울리는 데, 쥬얼리 멤버들이 축가를 부르기로 해서다. 하주연을 비롯해 서인영, 이지현, 김은정, 예원 등 쥬얼리 신·구 멤버들이 함께 모여 팀 히트곡 ‘니가 참 좋아’를 불러 박정아의 앞날을 축복한다.

“정아 언니 결혼식 보면 울컥할 것 같아요. 제 계획요? 전 계속 랩 연습해야죠. 언제 다시 무대에서 랩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주위에서 ‘언프리티 랩스타’에 도전해보라고 하는데, 글쎄요. 기회가 된다면 좋은 모습으로 찾아 뵐게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박정아와 서인영 등 함께 모인 쥬얼리 멤버들. 하주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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