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쥐 한 마리에 35만 원?

안서현 기자 2016. 5.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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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쥐 2종, 국산화 성공


 당뇨와 암, 비만 등 다양한 질환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숨은 공신이 있습니다. 바로 ‘실험용 쥐’입니다. 먹을거리나 의약품의 독성 실험이나 안전성 평가를 할 때도 실험용 쥐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실험용 쥐는 가격이 얼마나 할까요? 마리당 적게는 4천 원에는 많게는 35만 원에 팔린다고 합니다. ‘헉’ 소리 나는 금액입니다. 무슨 쥐가 그렇게 비싸냐고요? 35만 원에 판매되는 쥐는 이른바 ‘당뇨 쥐’인데, 당뇨병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유전자 변형을 거치기 때문에 몸값(?)이 그만큼 오른다고 하네요. 각 질환 연구에 맞도록 특화된 쥐들인 겁니다.

 그런데 이 판매 가격의 10~30%는 로열티입니다. 실험용 쥐 한 마리가 팔릴 때마다 미국과 유럽 다국적 기업으로 로열티가 빠져 나갑니다. 수입한 실험용 쥐가 국내에서 새끼를 낳아, 그 새끼들을 연구에 사용할 때도 어김없이 로열티를 내야합니다. 종자에 대한 소유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또 앞서 언급한 특정 질환 연구를 위해 유전자 변형을 거친 쥐들을 들여오려면, 판매금액에 속한 로열티 외에 항공료 등 운송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합니다. 요청한 즉시 받기도 어렵기 때문에 수개월씩 기다리는 일도 허다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은 ‘그거 1년에 몇 마리 쓴다고 로열티 좀 내고 말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에 한 해 사용되는 실험용 쥐는 무려 4백만 마리나 됩니다.

 해결책은 우리만의 국산 종자를 갖는 수밖에 없는데,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예전에 들여온 실험용 쥐가 새끼의 새끼를 낳아도, 그 종자는 외국 기업의 것이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겁니다. 국내산 소(수입 후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사육)가 한우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실험용 쥐의 국산 종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전체 실험동물 사용량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하는 ICR(흰 쥐)과 C57BL/6(검은 쥐), 무려 2종이나 말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식약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실험용 쥐 2종을 꾸준히 번식시켰습니다. 30세대 이상을 거치며 번식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이가 생겼고, 기존 실험용 쥐와는 다른 고유한 염기서열을 가진 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실험동물 생산기관 코드를 관리하는 실험동물협회(ILAR)에 코드 등록도 마친 상탭니다. 이제 식약처가 실험동물 생산업체에 자체 개발한 국산 종자를 분양하면(모체 분양), 각 업체들은 이를 번식시켜 연구에 사용될 실험용 쥐, 혹은 특정 질환 연구에 맞도록 유전자 변형을 거친 ‘당뇨 쥐’, ‘비만 쥐’ 등을 필요한 연구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각 연구기관에선 더 이상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그때그때 필요한 쥐를 더 쉽게, 더 빨리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직 국산 실험용 쥐를 활용한 연구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당뇨병 연구에서 외국의 A사 쥐를 갖고 어떤 결과가 도출됐다면, 후속 연구를 하는 다른 과학자들도 같은 A사의 쥐를 갖고 실험을 할 것입니다. 기존 연구들과 정확한 비교가 되도록 말입니다. 결국 누가 더 좋은 연구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실험동물자원 시장에서는 가장 큰 경쟁력인 셈입니다.

 국산 실험용 쥐를 갖고 국내에서 좋은 연구가 많이 이뤄진다면, 관련 연구를 하는 다른 과학자들도 외국기업의 쥐 대신 우리 쥐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번 종자 개발로 실험동물자원 수입국에서 생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는 뜻입니다. 현재 자국의 종자를 갖고 실험을 하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이 실험동물자원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껏 만들어 놓은 국산 실험용 쥐가 사장되지 않도록, 이를 사용한 연구들이 꾸준히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식약처는 현재 국내에서 쥐를 사용하는 실험의 50%정도를 국산 쥐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 이미지/이매진스)    

안서현 기자as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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