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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천안서 숱한 역사의 인물을 만나다'

송고시간2016-05-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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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목천 인물 많고 북면 숲길은 '고즈넉'…순댓국밥도 별미어사 박문수 테마길 공무원 연수생 단골 견학코스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취암산터널을 넘으면 21번 국도 왼쪽으로 충남 천안의 랜드마크 독립기념관이 있지만 일단 접어두고 길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천안 병천면에서 시작해 목천을 지나 북면, 입장으로 넘어가는 코스다. 도시를 피해 산과 논밭, 하천, 저수지를 보며 오갈수 있는 길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은 거셌다. 그때문에 만세시위를 주도한 유관순(1902∼1920)과 그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이화학당에 적을 뒀던 유관순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만세운동 이듬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열여덟 나이에 옥사했고 남은 형제들은 거처할 곳이 없어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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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도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가옥과 헛간 모두 불태워졌기 때문에 유관순의 유품은 옷가지 하나 도 건질 게 없었다.

병천 장터에서 가까운 매봉산 기슭 아래 열사의 생가터는 1972년 사적 230호로 지정됐고, 1991년 12월 초가집으로 깔금하게 복원됐다.

거처할 곳이 없던 남은 가족들에게도 국가는 너무 늦긴 했지만 1977년 생가 오른쪽 논배미 쪽으로 작은 한옥을 지어줬다. 그러나 남동생 가족들이 떠나 지금은 자물쇠만 굳게 잠겨 있다.

친일의 열매는 달콤했지만 일제에 맞섰던 사람이나 그 후손들은 소태보다 더 쓴 고통에 몸을 떨었고, 때로는 국외자들까지 분노했다.

산너머 탑원리에는 유관순 추모각이 있다. 좌파든 우파든 유관순을 들먹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품계'는 건국훈장 3등급(독립장)이다.

많은 이들은 '왜 3등급 밖에 안 되는가'를 놓고 분개한다. 역대 대통령들도 외면하다가 지난해 9월에야 박근혜 대통령 명의로 추모화환이 영정 앞에 놓였다. '뉴스'가 됐다.

유관순이 태어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약 1km거리에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유석 조병옥(1894∼1960)의 생가도 있다.

도산 안창호와 가까웠고 이승만 정권에서 경무부(경찰청장), 내무장관을 지냈으나 1951년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959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후보등록후 병을 얻어 미국에서 사망했다.

유관순, 조병옥의 족적을 더듬고 '격물치지'에 능했던 실학자 담헌 홍대용(1731∼1783)) 생가와 묘, 홍대용과학관도 둘러볼수 있다. 이어 임진왜란 당시의 명장 김시민(1554∼1592) 장군 유허를 거쳐 북면 은지리쪽으로 길을 잡으면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를 만날수 있다.

조선 후기, 특히 영조의 명으로 지방관리들에 대한 감찰과 민생을 점검한 최고 '어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경상관찰사, 대사성, 대사간, 도승지, 예조참판, 병조판서, 호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지낸 뛰어난 행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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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가 은지리 고령 박씨 종중 재실에서 넓적바위, 은석사, 박문수 묘소, 은석산 정상을 잇는 5.2km 등산로를 정비해 만든 '박문수 테마길'은 제법 걸을 만하다.

흉년엔 사재를 털어 백성을 구제했고, 고을 수령·아전 등 토호세력들의 비리를 단호히 응징한 '백성을 생각한 행정가'였던 그의 테마길은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지방행정연수원, 충남지방공무원교육원 등 공무원 연수생들의 단골 견학 코스가 됐다.

재실은 퇴색해 문을 열면 형편이 옹색해 보이지만 은석산은 편안하고 넉넉하다. 능선이나 계곡코스 어느 쪽을 택해도 좋다. 원점 회기산행으로 3∼4시간이면 적당하다.

암행어사 박문수에 이어 만나 볼수 있는 인물은 독립운동가 이동녕(1989∼1940)이다.

목천읍 동리 'ㅁ'자 기와집의 생가 홑처마 팔작지붕은 많이 변형됐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인근 기념관에 유품과 그의 필적이 잘 정리돼있다.

안창호, 김구 등과 신민회를 조직한 뒤 1910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그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원장, 외무총장을 지낸 뒤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일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9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꾸려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에서 병사했다.

이동녕을 뒤로 하고 차량 내비게이션에 부수문이고개를 찍었다.

병천천(아우내)을 따라 올라가는 57번 지방도는 넓고 시원하다. 경유지를 용연저수지로 하면 애기똥풀이며 개망초 무성한, 뜻밖의 넓은 물을 만나고 굽이굽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북면사무소를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고갯길이 이어지는가 싶을 때쯤 입장면과 경계를 이루는 부수문이고개가 나온다. 왼쪽은 위례산, 오른쪽은 부소산이다.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백제 초기 도읍지에 대해 아직도 향토사학자들은 위례산과 부소산 아래 직산(稷山)을 주장한다.

구구한 학설은 역사가들에 맡기고 돌말뚝 '부소령'(扶蘇嶺)을 끼고 오르면 2.1km 산길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가뿐 숨을 몰아쉬지않아도 될 만큼 푸근하다. 정상을 앞두고 300m가량 조금 경사길이 있구나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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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걸어도 40∼50분이면 도착하고, 잔돌조차 거의 없는 흙길 옆으로 쪽동백이며 참나무, 단풍나무, 나이먹은 진달래들이 터널을 이룬다.

산은 고즈넉하고 해발 523m 정상은 보잘 것이 없지만 경사가 급한 비탈 40m가량에 테뫼식 산성이 남아있다. 되돌아 내려오는게 편하지만 형편에 따라 성거읍이나 입장면쪽으로 내려갈수도 있다.

병천은 순대거리가 형성될 만큼 아우내 순댓국밥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북면 연춘리 순두부, 보리밥집에도 식객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린다.

목천 용연저수지 옆으로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카페의 더치커피도 일품이며, 부수문이고개 직전의 산장 간판이 붙은 식당의 오리·닭백숙·연잎밥·능이버섯전골 등도 맛이 썩 괜찮다.

y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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