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 22년 전 언론 보도 보니

정철운 기자 2016. 5. 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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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 언론은 자유롭나… 생각 없이 쓴 보도자료 기사의 해악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수를 8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살균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조금이라도 안전에 의문을 품었던 소비자라면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기사를 보고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대다수 언론이 가습기살균제 관련 비판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2001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살균제 출시시점 당시 보도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기사를 찾기 힘들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뉴스 검색결과 지난 15년 간 ‘가습기당번’의 안전성을 홍보한 기사는 단 두 건에 불과했다. 경향신문은 2004년 12월1일자 기사에서 건강한 겨울나기를 위해 가습기를 추천하며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라며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애경)와 ‘가습기당번’(옥시싹싹)을 소개했다.

문화일보는 2002년 10월10일자 기사에서 “애경산업은 가습기의 세균과 곰팡이, 물때를 한꺼번에 제거 하는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했다”고 소개하며 “가습기 물에 섞어 사용하는 제품으로 천연 솔잎향이 첨가돼 정신적 피로 해소에도 도움 된다”,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994년 12월2일 11면
언론보도를 통해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당번’(옥시싹싹), ‘가습기메이트’(애경),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홈플러스),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이마트)를 모두 검색해봤으나 관련 제품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소개한 기사는 앞서 언급한 두 건이 전부였다.
포털 검색 결과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사는 제품이 출시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5년 전인 2011년 9월부터 가습기 살균제가 급성 폐질환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수없이 검색되고 있다. 10년간 가습기살균제 홍보기사가 과연 저것뿐일까.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언론사가 가습기살균제 홍보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 경향신문 2004년 12월1일 온라인판
아마도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이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과거 기사를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보가 된 기사를 삭제한다고 언론사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5년 전 옥시싹싹 출시 당시 안전성에 의심을 품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기자가 단 한명만 있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1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업 제품 홍보자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론도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언론은 수백 명의 폐가 굳은 다음에서야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혹자는 기자가 검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건이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참사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직업적 책무를 져버린 궁색한 합리화일 수 있다.

▲ 매일경제 1994년 11월16일 11면
22년 전인 1994년,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용 살균제를 개발했을 때부터, 기자들이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매일경제는 1994년 11월16일자 기사에서 “가습기메이트란 제품으로 판매될 이 살균제의 효력은 약 15일 이상 지속되며 독성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어디 매일경제뿐이었을까. 기자가 의심하지 않는 사회는 이렇듯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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