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닐하우스·컨테이너에 수백억대 그림이..'한국 피카소' 김흥수 작품 73점 한때 방치
‘한국의 피카소’ 김흥수 그림 73점, 비닐하우스에 있었다 서양화가 고(故) 김흥수 화백의 유족들이 그림 73점을 놓고 사찰과 2년여간 벌인 소송에서 이겼다. ‘김흥수 미술관’ 폐관 이후 맡긴 그림들을 사찰 측이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에 보관한 게 발단이었다.
‘한국의 피카소’로 불린 김흥수(1919~2014) 화백의 그림 73점을 놓고 유족들이 한 사찰과 벌인 그림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31부(부장 오석준)는 김 화백 측이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사찰이 운영하는 J재단을 상대로 낸 ‘유체동산 인도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화백은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 ‘하모니즘’ 화풍의 창시자다. ‘미의 심판’(1997), ‘두 여인’(1982) 등 누드화 시리즈로 유명하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3년 6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김흥수 미술관’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됐다. 김 화백 측은 급하게 그림 100여 점을 보관할 장소를 찾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승려 A씨 소개로 J재단을 보유한 사찰에 그림 73점과 표구 등을 옮겨 놨다. 전체 그림 가격은 수백억원대라고 한다.
사찰 측은 당시 김흥수 미술관 및 기념관 건립용 미술품을 보관한다는 보관증을 써줬다. ‘김 화백 또는 그가 지명한 대리인의 요구가 있을 시 작품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한 달여 뒤 현장을 둘러본 김 화백의 처제인 B씨가 “사찰이 고가의 미술작품을 항온·항습장치도 없는 컨테이너·비닐하우스에 방치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사찰 측은 “보관 창고를 짓기 전의 간이 시설”이라고 해명했지만 가족들은 “그림을 당장 돌려달라”며 2014년 2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김 화백은 소송 4개월 만에 노환으로 별세했고 소송은 김 화백의 첫째·둘째 부인의 자녀(3남 1녀)들이 이어받았다.
재판에서는 사찰이 미술품을 임시 보관 중인 것인지, 기증받은 것인지가 논란이 됐다. J재단은 “미술관 건립과 생활비 지원 등을 대가로 재단에 기증한다며 넘겨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애초에 기증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는 김 화백과 사찰을 연결해준 승려 A씨의 증언을 근거로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고가의 미술품을 넘겨 받으면서 작가인 김 화백에게 기부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건 재단의 과실”이라고 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컨테이너 구입비 등 재단이 임시 보관에 들인 1800여만원은 유족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김 화백과 부인 장수현씨가 2009년께 협의이혼했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김 화백은 스승과 제자지간으로 만난 장씨와 43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92년에 결혼 했다. 김 화백에겐 세 번째 결혼이었다. 장씨는 2012년 11월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현재 그림은 김 화백의 자녀들과 장씨의 유족이 나눠 가져갔다고 한다. 자녀 중 한 명은 그림 훼손 등을 이유로 재단을 상대로 3억 2000만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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