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쉬엄쉬엄, 진초록 속으로..

박경일 기자 2016. 5.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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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의 광시면 마사리 쪽에서 임존성으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 저마다 채도가 다른 초록으로 가득한 이 길을 따라 봉수산의 산정 턱밑의 성곽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임존성은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근거지였다.
수몰 버드나무들이 물 위에 고요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충남 예산의 예당저수지 모습. 산양천의 물길이 저수지와 만나는 동산교 위에서 본 풍경이다. 낚시용 좌대가 마치 수중 별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봉수산 자락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존성의 성곽을 따라 운치 있는 도보 길이 이어진다. 임존성은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키려는 꿈을 꾸던 백제부흥군이 3년 동안 항전하던 곳이다.

예산 봄 끝에서 만난 슬로시티

봄날 진초록의 숲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충남 예산의 봉수산. 예당저수지를 끼고 있는 부드러운 능선의 산에 백제시대 성곽인 임존성이 있습니다. 임존성.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끝까지 맞섰던 백제 유민의 눈물이 마지막 꽃잎처럼 떨어진 자리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지만, 이긴 자보다 진 자들의 삶이 더 향기롭습니다. 승리의 희망이 간절할수록, 패배가 무참할수록 그 향기는 깊습니다. 임존성의 긴 성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의 숲에는 야생화가 만발했는데, 손톱만 한 꽃을 틔운 풀들 사이에서 으름덩굴이 탐스럽게 꽃을 피웠습니다. 으름 꽃의 짙은 향기는 그 길을 걷는 내내 따라왔습니다.

충남 예산은 느리고 또 평화로운 곳입니다. 임존성 아래 슬로시티로 지정된 대흥면 일대는 물론이거니와 수몰 나무들의 초록이 고요한 물그림자로 찍히는 예당저수지의 수변 풍경이 그렇고, 복원해 날려보낸 황새가 짝을 지어 알을 품고 있는 황새공원이 들어서 있는 광시면 일대의 풍경도 그렇습니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가야산 아래 남연군묘와 그 위쪽의 상가저수지 일대의 다치지 않은 경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행이 도시생활로 지치고 힘든 이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한 것이라면, 그 여행의 목적지는 이렇듯 느리고 평화로운 곳들이 돼야 옳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예산에서 익히 알려진 명소라면 수덕사와 추사 고택, 그리고 덕산온천입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알려져 번잡스러운 이곳들을 다 빼놓고, 나머지 것들만 여기 펼쳐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다 들러보긴 했으되 지금 이 계절에는 번잡스러운 관광지보다 고즈넉한 풍경이 더 어울리는 데다, 이런 곳들을 빼놓고도 가야 할 곳이 예산에는 차고 넘치는 까닭입니다. 지금 신록의 그림자를 고요히 비춰내고 있는 예당호가 만수위로 출렁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이국적인 엽서 사진 속 풍경이 거기 있다

다른 계절이라면 또 모를 일이지만, 만수위로 찰랑거리는 지금 예당저수지는 한 폭의 엽서사진을 그려 보여준다. 수몰 버드나무의 초록이 고요하게 제 그림자를 수면 위로 찍어내는 모습이라니….

이른 새벽 안개 낀 호수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오리떼와 고즈넉한 수변에서 평화롭게 깃을 고르고 있는 백로와 왜가리들도 이런 낭만적인 풍경에 한몫한다.

1964년 준공한 예당저수지는 전국 최대의 인공저수지다. 만수 면적이 1088㏊. 만수위는 22.50m, 만수 때 저수량은 4607만t이다. 이런 숫자와 단위만으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면, 이 정도면 감이 올는지. 만수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3.75배. 호수 둘레는 40㎞. 물론 다목적 댐이 만든 호수에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수지치고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게다가 지금 예당저수지는 만수위로 넘치고 있다. 지난 초겨울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저수율이 바닥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예당저수지를 제대로 보려면 물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게 제격이다. 저수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물 위의 숲’이다. 저수지 수위가 차올라 아랫도리를 물에 담근 나무 군락들이 성성한 초록의 잎을 내고 자라고 있다. 드문드문 수몰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으되, 군락을 이뤄 물에 몸을 담근 나무를 본 건 여기 말고는 기억이 없다. 수몰나무는 바람 없는 날, 잔잔한 수면이 마치 잘 닦은 거울처럼 데칼코마니의 풍경을 보여줄 때 가장 아름답다. 이른 아침이면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오를 때도, 해질 녘에는 수면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 때도 좋다.

예당저수지에서 수몰나무들이 가장 빽빽한 곳은 저수지와 흘러드는 물이 만나는 곳이다. 예산읍을 흘러온 무한천이 저수지 그릇에 담기는 합류지점에는 물 위의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만수위의 물이 논이며 밭의 땅 끝에서 찰랑거리는데, 숲이 그 너머 물 속에 있다. 활개 치듯 가지를 펼치고 물 위에서 저 혼자 마치 엽서 속 사진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고, 서로 뽐내듯 맑은 초록의 잎으로 그늘을 만드는 숲도 있다. 무한천 합류지역 주변에는 제법 규모가 큰 습지의 섬도 있다. 일부러 길을 냈는지, 물 위로 찰랑거리는 논둑길이 섬으로 이어져 있었다.

산양천의 물길이 만나는 자리의 풍경도 이 못지않다. 산양천과 저수지가 만나는 지점에는 동산교가 있는데, 이 다리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 저수지의 경관이 으뜸이다. 수몰 버드나무들이 새 잎으로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뒤로 멀리 청보리밭의 너른 구릉이 펼쳐지는 자리다. 몸을 반쯤 물에 담근 버드나무 곁의 낚시용 좌대 위에서 물안개 자욱한 아름다운 새벽을 맞는 낚시꾼들이 부러웠다.

# 임존성 성곽을 딛고 가는 초록의 길

충남 예산에는 백제시대 임존성이 있다. 예당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봉수산의 정상 둘레에 지어진 성이다. 오래된 성이 뭐 볼 게 있을까부터 생각했다면, 여기에 꼭 가보자. 산의 팔분 능선을 둥글게 감아 지은 성의 규모와 긴 성곽이 그려내는 곡선을 보고 나면 얘기가 달라질 게 분명하니 말이다.

모름지기 성이란 주변을 경계하기 좋은 곳에다 짓는 법. 그래서 어디든 성곽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지금 임존성을 딛고 보이는 풍경은 신록이 녹음으로 넘어가는 숲의 색으로 가득하다. 이런 경관을 끼고 내내 걸을 수 있으니 임존성이야말로 그 어떤 길보다 더 매력적인 도보 코스인 셈이다.

성이 있는 봉수산에는 등산로가 여러 개이지만, 그중에서 임존성의 턱밑까지 차가 닿는 포장도로가 있다. 내비게이터에 광시면 마사리 마을회관을 입력해 찾아가면 거기에 임존성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여기서 초록 숲이 하늘을 가리는 구불구불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면 바로 성곽 아래다. 봉수산 정상 아래를 둥글게 감고 있는 성의 둘레는 2.4㎞ 정도. 남아있는 고대산성의 규모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쉬엄쉬엄 걸으면 1시간 남짓 성곽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성곽은 한 바퀴 도는 구간의 절반 정도는 복원돼 성벽의 형태가 뚜렷하고, 나머지 절반쯤은 성벽을 이뤘던 돌들의 자취만 남아있다.

성벽이 뚜렷한 쪽에서는 능선을 오르내리며 길게 이어지는 웅장한 성곽이 볼거리라면, 반대편 쪽에서는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대흥면 일대와 예당저수지의 경관이 압권이다. 예당저수지의 낚시용 좌대가 멀리서 보니 마치 남태평양 어디쯤의 이국적인 리조트처럼 보였다. 좌대를 좀 더 고급스럽게 다듬어서 낚시 대신 운치 있는 숙박용으로 쓰면 어떨까 싶을 정도였다.

성벽을 끼고 도는 길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하기야 초록이 짙은 5월 숲이 지금 어딘들 그렇지 않을까만…. 현호색, 양지꽃, 제비꽃…. 그 길에서 자주 발길을 붙잡았던 건 숨어서 핀 으름덩굴 꽃이었다. 성곽을 걷다가 짙은 향기가 코를 찌르면 그제야 꽃을 찾을 수 있었다.

# 백제 부흥군의 희망 그리고 최후

사실 거기서 보이는 빼어난 경관보다, 성곽을 끼고 이어지는 길의 매력보다, 임존성이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이 품고 있는 1300여 년 전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백제 최후의 장면이 바로 이 성에서 있었다. 백제의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되고 난 뒤에도, 의자왕이 무릎을 꿇고 항복한 뒤에도, 1만 명이 넘는 백성과 태자, 왕자가 전리품처럼 당나라로 끌려간 뒤에도 아직 백제는 멸망하지 않았다. 통치자와 권력자들은 항복을 선언했지만, 백성은 달랐다.

왕통은 사라졌어도 백성들에게 백제는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들이 이곳 임존성에서 백제 부흥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며 3년을 더 버텼던 것이었다. ‘백제부흥운동’이었다. 백제의 유민들이 용맹했던 건 더 이상 퇴각할 자리가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땅을 빼앗기고 집이 불태워지고…. 아마 나당연합군의 칼날 아래 부모와 자식을 잃은 이들도 있었으리라. 백제 유민들을 지탱했던 건 비통함과 억울함이었을 것이었다. 그것으로 칼날을 시퍼렇게 벼렸을 것이었다.

부흥군의 중심에는 키가 7척이 넘었다는 용맹스러운 장수 흑치상지가 있었다. 그가 열흘 만에 백제 부흥군 3만 명을 모았다. 군사훈련 한번 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었겠으나 부흥군들은 분노와 다시 나라를 세우겠다는 열망으로 뜨거웠다.

난공불락이었던 임존성을 무너뜨린 건 당나라 군대도, 신라군도 아닌 백제 부흥군 내부 권력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암투와 배신. 백제부흥군의 최고권력은 의자왕의 사촌인 ‘풍’과 승려 ‘도침’이 나눠 갖고 있었다. 그런데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면서 풍이 도침을 살해했다. 적들에 포위당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저희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건 장수 흑치상지가 당나라에 투항한 것이었다. 자신들을 이끌던 흑치상지가 백제 유민들을 배신하고 당나라군의 선봉에 서서 임존성을 치러 왔을 때, 성을 지키던 백제 부흥군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 절망감은 얼마나 깊었을까. 속절없이 임존성이 무너졌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써 고대국가 백제는 완전히 멸망했다. 분노와 배신, 그리고 허탈. 임존성은 이런 백제의 마지막 비극의 시간이 지나간 곳이다.

# 최고 명당이 거기 있다… 남연군묘

예산에는 가야산이 있다. 해인사를 품고 있는 합천의 가야산과 이름이 같다. 산세는 합천의 것에다 대면 어림없지만, 예산의 가야산은 풍수로 이름난 곳이다. 가야산의 기운이 뭉쳐있는 곳이 바로 석문봉 아래 남연군의 묏자리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본디 남연군 묘는 경기 연천에 있었는데, 아들 대원군이 이쪽으로 옮겨왔다. 왕권에 대한 야심을 숨긴 채 안동 김씨 일가에게 갖은 수모를 겪고 있던 대원군이 지관을 불러 ‘왕이 될 지세’를 물었다. 지관이 ‘2대에 걸쳐 왕이 날 자리’로 꼽아준 곳은 마침 가야사란 절이 들어서 있었다. 대원군은 불을 질러 절집을 태워버리고는 그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남연군 묘를 등지고 서보면 문외한이라도 이 자리가 왜 명당인지 금세 알게 된다. 왼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청룡의 세를 이루고, 오른쪽으로 가사봉, 가엽봉, 원효봉이 백호의 세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 앞으로는 탁트인 덕산의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기운 때문이었을까. 묘를 이장한 지 7년 만에 대원군은 고종을 낳았고, 고종이 왕위에 등극함에 따라 대원군은 왕권을 쥐고 흔들었다. 고종에 이어 대원군의 손자인 순종까지 왕위에 등극해 지관의 말이 적중했지만, 순종을 마지막으로 조선의 519년 역사가 막을 내렸으니 여기가 과연 명당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남연군 묘 위쪽의 상가리에는 상가저수지가 있다. 가야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담기는 저수지인데, 저수지 상류 쪽에 뜻밖에 꽃과 나무로 정성스레 치장한 멋진 집이 한 채 있다.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마당에는 복사꽃과 꽃잔디가 만개했고, 범상찮은 솜씨로 모양을 잡은 주목 군락이 도열했다. 김무현(85) 씨와 권기자(72) 씨 부부가 사는 집이다. 집 마당에 연못을 내고 괴목을 다듬어 정원을 가꾼 건 죄다 부인 권씨의 솜씨다. 김씨 부부는 누구에게든 마당을 열어둔다. 가야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제 집처럼 마당에서 꽃구경을 하거나 도시락을 꺼내 먹어도 김씨 부부는 ‘정원을 함께 누리려 가꾼 것’이라며 손님들을 반긴다. 가야산의 초록빛이 풍덩 담긴 맑은 저수지와 잘 가꾼 정원, 그리고 김씨 부부의 호의를 보는 것만으로 여기를 찾은 보람은 충분하다.

# 황새, 다시 텃새가 될 수 있을까

예산 여행에서 한 곳 더 보탤 곳이 있으니 바로 황새공원이다. 황새는 지구상에 2500여 마리만 남아있는 귀하디 귀한 새다.

우리나라에서 황새 복원사업이 시작된 건 지난 1996년.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는 러시아와 일본에서 들여온 황새의 증식에 성공했다. 황새공원은 개체 수가 늘어난 황새들을 과거 서식지였던 예산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2014년 만든 곳이다. 황새공원이 보유한 황새는 모두 60여 마리. 이중 관람객들이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황새는 14마리다. 그물 없이 울타리만 두른 공간에다 정기적으로 속 깃털을 잘라서 날지 못하도록 한 황새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나머지는 관람객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연구동에 있다.

황새공원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황새를 자연방사했다. 날려보낸 황새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는다면 이 땅에 황새를 다시 살려내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날려보낸 한 쌍의 황새가 황새공원 부근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다. 연구진들은 초긴장 상태다. 과연 황새 한 쌍이 저희 스스로 자연 속에서 새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예정된 새끼황새 탄생일은 오는 15일. 지금 황새공원에 가면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다. CCTV로 생중계도 하고 있다. 이 땅에 텃새 황새가 다시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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