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에 취한 한국사회..이대로 괜찮을까?

이미영|이슈팀 신지수 기자|기자 입력 2016. 5. 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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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더이슈] A씨, 매운 음식 먹은 후 응급실행..소화계통 질환 年 1000만명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이슈팀 신지수 기자] [[이슈더이슈] A씨, 매운 음식 먹은 후 응급실행…소화계통 질환 年 1000만명]

# A씨(33·회사원)는 최근 매운맛으로 유명한 떡볶이 집을 찾았다. 평소 매콤한 맛을 즐겨먹는 A씨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는 떡볶이를 몇점 먹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놔야 했다. 위에서 '이상반응'이 나타난 것. 수 분 후 A씨는 배를 부여잡으며 뒹굴었다. 결국 응급실을 찾은 A씨가 받은 진단은 '위경련'. A씨는 며칠동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고생해야 했고 흰죽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불맛 짬뽕'이 인기더니 이젠 '매운 치킨'이다. 매운 음식의 인기가 절정이다. 사람들은 맵고 달짝지근한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들 한다. 하지만 매워도 너무 매워진 음식 때문에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독 '빨개진' 한국 음식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매워진 한국사회…'중독' 원인은?

고춧가루가 빨갛게 올라온 닭볶음탕, 해물찜 등은 한국사람들이 자주 찾는 별미다. 고춧가루에 갖은 양념과 설탕, 그리고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까지 넣어 완성한 매운요리는 한국인의 '상징'이 됐다.

사실 매운요리가 인기있는 이유는 '맛'보단 '자극'이다. 고춧가루에 들어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몸에 들어와 '아드레날린'이 분비를 촉진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작용을 하는 것.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매운맛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것처럼 '통각'인데, 보통 몸에 아프다는 신호가 오면 그 통증을 회피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며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매운 음식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는 향신료 개념이기 때문에 맛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달고 짠맛"이라며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는 엔돌핀을 분비시키기 위해 매운맛을 밀어 넣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면 시장에서도 이 현상은 뚜렷하다. 1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맵다고 꼽혔던 '신라면'의 스코빌지수(매운맛의 척도)는 2700. 하지만 신라면은 매운라면 순위에서 9위까지 밀렸다. '틈새라면 빨계떡(8557)', '불닭볶음면(4404)' 등 최근 나온 라면들이 상위권을 섭렵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매운 맛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며 "예전에 소비자들이 '맵다'고 느꼈던 강도보다 더 자극적인 맛이 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캡사이신 과다섭취 위암발병률 높여…설탕·소금 과다섭취는 '덤'

문제는 과다한 매운 음식 섭취가 건강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춧가루 주 성분인 캡사이신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과다 섭취할 경우 다른 요소들과 맞물려 암 발생을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글라라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캡사이신을 많이 먹으면 역류성 식도염과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고, 특히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경우 캡사이신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위암 발병률을 더 높인다"고 설명했다. 2014년에는 과잉 섭취된 캡사이신이 면역세포를 억제해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5명 중 1명이 위염,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등 소화계통 질환을 앓고 있다. 2015년 '식도, 위 및 십이지장의 질환' 진료 환자는 약 1036만명으로 3년 내내 1000만명을 넘었다.

매운 음식을 먹다보면 설탕과 소금을 과다섭취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황 칼럼니스트는 "우리나라의 매운 음식에는 소금과 설탕이 함께 많이 들어간다"며 "우리 국민들이 과도한 나트륨, 당을 섭취하는 건 매운 음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춧가루와 같은 매운 음식과 관련한 이렇다할 정부 지침은 없는 상황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설탕과 소금은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영양 성분이라 섭취하는 양이 매우 중요하지만 매운맛은 열량도 없고 영양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별도의 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매운 음식 인기는 '자의' vs '타의'?

매운맛을 즐기는 분위기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가 만든 '강요'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음식을 찾는 소비자와 원가 절감을 위한 고육책으로 매운 음식을 내는 요식업계가 맞아 떨어진 일종의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황 칼럼니스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운동이나 사랑을 해서 엔돌핀을 건강하게 분비하는 방법도 있지만 돈과 여유가 없으니까 음식으로 단시간에 해소를 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싼 값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매운 음식 정도밖에 없는 각박한 우리 사회의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기가 안좋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도 보다 자극적인 맛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비교적 저렴한 식재료를 사용해도 양념을 통해 맛을 내기가 용이한 점 때문이다.

차윤환 숭의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매운맛으로 식재료의 맛을 덮어버리면 되기 때문에 가게 주인들이 다른 요소들은 신경 쓸 노력을 굳이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mt.co.kr, 이슈팀 신지수 기자 sgs08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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