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곡성' 천우희 "선악 공존하는 내 얼굴에 만족"

현화영 2016. 5. 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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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에 등장하는 배우 천우희(29)의 얼굴을 보며 문득 든 생각. 배우가 자신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 것이다. 

얼굴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건 특히 그러하다. 사실 인간이란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입체적이어서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우는 때와 상황에 맞게 선의 얼굴이든, 악의 얼굴이든 드러낼 줄 알아야 ‘좋은 배우’라는 평을 듣는다.

‘곡성’에서 천우희는 그런 면에서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극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무명’으로 분해 관객들에게 끝없는 혼란을 안긴다. 이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인터뷰에서 천우희는 촬영 당시 스스로도 큰 혼란과 고민에 빠졌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최선이란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부터 ‘대혼란’을 느꼈죠. 이게 뭐지? 어떡하지?(웃음) 무명이란 캐릭터가 원래 그래요. 끝까지 모호하죠. 그래서 저 또한 혼란스러웠고 촬영 전까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지금도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느끼는 혼란보다 관객들이 느끼는 혼란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들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기 때문에 혼란 그대로를 연기하면 되겠다는 깨달음 같은 게 생겼죠.”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2016) 스틸/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곡성’은 ‘추격자’ ‘황해’에 이은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외지인이 나타난 후 의문의 사건이 끊이지 않는 한 마을의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곽도원이 극의 중심인물인 순경 ‘종구’를 연기했고, 황정민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에 온 무당 ‘일광’을 연기했다. ‘대단한’ 배우들이 총출동한 만큼 현장 분위기도 폭발적이었다는 게 천우희의 전언이다.

“다들 열정이 넘치세요. 그분들 열정에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죠. 단순히 후배로서가 아니라 ‘배우 대 배우’로서 현장에서 느낌과 에너지들을 주고받고 싶었어요. 특히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씨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사실 고령에 몸상태가 안 좋으셨거든요. 골반에 통증이 있으셔서 힘들게 앉아 계시다가도 ‘슛’만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시는 거예요. 저도 촬영하면서 다치고 아프고 했는데 내색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앞서 열린 ‘곡성’ 언론시사회에서 곽도원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만은 맑았다”며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대해 천우희는 “배우로서 모든 것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배우로서 현장에서 ‘최대한’의 것들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 아쉬울 때가 많은데, 이번 현장은 ‘이만하면 됐지’할 때가 없었다고. 나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 모든 배우들이 최고의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줬고, 천우희는 오랜만에 배우로서 모든 갈증이 풀리면서 정신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나홍진 감독이 왜 천우희에게 무명이란 배역을 맡겼을지도 궁금했다. 그러다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됐고 선악을 단번에 규정짓기 어려운 모호함이 아직 느껴졌다. '그래서 무명이겠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본인 얼굴에 대해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천우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 눈이 ‘짝눈’이거든요. 어떨 때 보면 선해 보이는데, 또 어떨 때 보면 되게 못돼 보여요.(웃음) 특히 저는 심리상태에 따라 얼굴이 확 달라 보여요. 그래서 전 제 얼굴이 좋아요. 가끔 구겨진 듯한 느낌마저도 좋을 때가 있어요. 구김살 하나 없이 매끈한 얼굴이었으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안 났을 거예요.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스스로 ‘별로야’했던 부분들도 이젠 배우로서 강점이라 생각하게 된 거죠.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좀 고치면 좋겠다'고 했을 때도 저는 제 얼굴이 좋았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의 단역으로 연기에 첫발을 들인 지 12년. 이번 영화 속 배역명과도 같은, 긴긴 ‘무명’의 시간을 보내고 2014년 영화 ‘한공주’로 톱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같은 해 청룡영화상은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이란 선물을 안겼고, 천우희는 대중의 믿음을 발판 삼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2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게 뭐냐는 질문에 천우희는 별로 없다고 답한다.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다 보이니까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들어요.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실 만큼의 그릇을 가진 사람인가’라고 스스로 묻기도 해요. 연기를 하다가 표현이 안 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고민이 될 때도 많고요. 그런데 어디까지나 저는 연기가 좋고 재밌어서 시작했으니까 그런 것들 다 털어내고 늘 하던 대로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곡성’이 오는 11일 개막하는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되는 바람에 천우희 역시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공식 스크리닝 행사를 앞두고 오는 17일 출국하는 그는 “언젠가 가게 될 줄은 알았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몰랐다”며 해맑게 웃었다.

“배우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설마 난 못 가겠지’하는 배우도 없을 걸요? 저 역시 ‘언젠간 갈 거야’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빨리 온 거예요. 매우 감사한 일이고, 이제 시작하는 배우로서 좋은 경험 얻고 오고 싶어요. 현지의 관객들도 이 영화 보시고 분명 관심을 가지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 영화를 사랑해 주실 거란 확신이 있거든요. 아, 거기 가서 짐 자무쉬, 자비에 돌란 등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들 만나서 함께 사진 찍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까요?(웃음)”

‘곡성’은 오는 12일 국내 개봉한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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