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미워요] (하) '대안 양육' 고민도 않고 너무 쉽게 시설로 보낸다

남지원 기자 2016. 5.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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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보호대상 아동’ 어디로 가나

지난해 10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수민이(가명)는 생애 첫 어린이날을 영아원에서 보냈다. 수민이 엄마는 교회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살다가 아이를 가졌다. 수민이를 낳았을 때 아이 아빠와는 헤어진 상태였다. 가족과 연락도 끊겼고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에서 0~3세반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최소한의 규정조차 안 지켜

교회 목사는 “암암리에 아이를 보내는 곳이 있고 얘기도 다 끝났다”며 출생신고를 만류했다. 다행히 수민이가 태어난 병원에서 위험한 낌새를 느끼고 아이의 퇴원을 막았다. 수민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미혼모단체와 병원의 도움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병원의 조치가 없었다면 수민이는 태어났다는 기록도 없이 불법입양되거나 유기될 수도 있었다.

200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대안적 양육에 대한 지침’ 결의안은 부모가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더라도 국가는 아이를 시설에 보내기 전에 부모가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하고, 직접 양육이 어렵다면 아이를 대신 맡아줄 가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가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 고민도 없이 아이를 너무 쉽게 시설로 보내고 있다. 최소한의 규정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행 체계상 수민이처럼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요보호아동’을 돌볼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아동복지법은 지자체에 ‘아동복지심의위원회’라는 기구를 두고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를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할 지자체에는 같은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위원회’가 있었지만 수민이의 보호 절차를 논의할 때 이 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수민이를 1 대 1로 담당하는 공무원은 원래 1년에 20건의 사례만 맡도록 규정돼 있지만 지자체 관계자는 “실제로는 더 많은 사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동인권포럼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관할 지자체와 아동복지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이달 중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기로 했다.

아동인권포럼이 지난달 지자체 232곳을 실태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실제로 구성한 지자체는 83곳(3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조례조차 없는 지자체도 87곳(37.5%)이었다. 위원회가 있더라도 회의 개최 횟수가 연평균 0.98번에 그쳐 정상적인 역할은 하고 있지 못했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당장 전담공무원이나 상설기구를 둘 수 없다면 심의위원회의 역할이라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선의 양육환경 제공 고민해야

수민이 엄마는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과 연락해 아이를 맡기는 것도, 아빠의 신원을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결국 병원이 입양 절차를 알아봤지만 병원이 접촉한 민간 입양기관 2곳은 모두 엄마의 장애를 이유로 아이를 받길 거부했다. 소라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해당 아동에게 입양이 최선의 조치라는 공적인 판단이 내려졌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입양기관에 입양 절차 개시를 강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 입양된 아동 중 건강에 이상이 있는 아동은 3.5%로 국외입양(26.5%)보다 훨씬 적었다. ‘어리고 건강한 아이’를 선호하는 입양 풍토 때문이다.

입양 실패 후 수민이는 별다른 조치 없이 아동양육시설로 인계됐다. 수민이의 친부나 친척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없었다. 현행법에 부모가 아이를 키우거나 가족에게 맡기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 반드시 대안 양육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서, 가정이 해체돼서, 학대를 당해서… 수민이처럼 부모가 기를 수 없게 된 요보호아동은 지난해에만 4500여명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원가정의 기능을 회복시켜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고, 어렵다면 가정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동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실질적 정책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을 가정위탁 등으로 일시보호하며 가족 기능 회복을 지원하고, 회복이 불가능할 경우 가정에 가까운 환경에서 영구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고 말했다.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은 임상심리사 등 전문가 배치를 늘려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성아 은평천사원장은 “아동양육시설이 학대 피해아동 등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관리하고 원가정 기능 회복을 돕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 아동인권포럼 공동기획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국제아동인권센터·민변 아동인권위원회·뿌리의집·세이브더칠드런·아동인권실현을위한연구자모임·유니세프한국위원회·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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