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 버려진 집 820만채.. 수도권마저 '쓰레기 빈집' 골치

도쿄/김수혜 특파원 2016. 5. 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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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고령화 심화 여파로 살던 노인 숨지면 그대로 방치 20년 뒤면 3채 중 1채 빈집 전망 팔리지도 않고 철거 비용 부담 "집 있는 건 축복 아닌 걸림돌"

빨래가 걸려 있으면 사람 사는 집, 빨래가 없으면 빈집이었다. 어쩌다 노인 한두 명이 지나다닐 뿐 동네 전체가 적막했고 애들 소리가 안 났다. 어떤 골목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았다. 주민 호리오(63)씨가 "사람이 없어서 이젠 반상회도 안 열린다"고 했다. "손주들이 놀러왔다 가면서 '좀비 마을'이라고 하데요."

6일 오전, 일본 수도권 요코스카(橫須賀)시 시오이리(汐入) 마을. 산자락을 따라 단독주택 150채가 오밀조밀 모인 곳이다. 멀리서 보기엔 평화로운 주택가 같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골목마다 빈집투성이였다. 잡초 무성한 마당에 깨진 화분이 나뒹굴고, 비틀린 문짝 틈새로 먼지 쌓인 세간이 보이는 집이 대강 헤아려도 스무 채쯤 됐다. 그중 한 집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봤다. 재작년 소인이 찍혀 있었다. 옆집 사람이 "은퇴한 노부부가 살던 집인데, 2년 전 도쿄에 사는 장남 집으로 간 뒤 비어 있다"고 했다.

빈집이 일본 사회의 골칫거리다. 올 초 일본 총무성은 전체 주택 6063만 채 중 820만 채가 사람이 안 사는 빈집이라고 밝혔다. 10년 뒤에는 1000만 채, 20년 뒤에는 2000만 채를 넘길 거라고 했다.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서른 안팎이 될 때면, 전체 주택 세 채 중 한 채가 빈집이 될 거란 얘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주택 수요가 꺼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80~90대 부모가 지방에 살다 별세한 뒤, 대도시 사는 자식들이 고향에 내려오지 않고 그냥 비워두는 집이 계속 쌓였다. 남에게 넘기려 해도, 세 들겠다는 사람도 없고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1980~1990년대만 해도 도쿄·오사카 같은 대도시 주변에는 도심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시오이리 마을 사람들이 "우리 동네도 옛날엔 사람이 넘쳤는데…. 지금은, 살던 사람이 자식 집에 가거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일은 흔해도, 다른 데 살던 사람이 새로 이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일본은 기후가 습하고 지진이 잦은 데다 목조주택이 많다. 몇 년만 비우면 언제 기둥과 지붕이 내려앉을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빈집은 더 이상 재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치워야 할 '쓰레기'다. 태풍이 오면 빈집에서 옆집이나 골목으로 기왓장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일본 정부는 고민 끝에 작년 5월 '빈집 대책 특별법'을 만들어 지자체가 일정한 절차를 밟으면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붕괴 우려가 있는 빈집을 철거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못 된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집주인을 수소문해 철거 비용을 받아내는 과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나루세 겐스케 요코스카시 건축지도과 계장이 "시청이 가장 골치를 앓는 행정 고충이 빈집 처리"라면서 "한 집당 많게는 150만엔 정도 철거 비용이 드는데, 이 돈을 집주인에게서 회수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고 했다.

빈집이 늘어나면, 빈집뿐 아니라 주변까지 가치가 떨어진다. 인구가 감소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리모델링·재개발 같은 단기 대책도 딱히 효과가 없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장차 국가 전체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앉는 '집값 멜트다운(meltdown)'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시미즈 지히로(淸水千弘) 싱가포르국립대 부동산연구센터 교수는 "일본 집값이 앞으로 30년간 매년 2%씩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20년 뒤면 집값이 '반토막' 날 거란 소리다.

이런 상황이 중년 일본인들에겐 만만찮은 부담이다. 은퇴를 앞둔 처지에, 팔리지도 않는 집을 상속받았다가 상속세·고정자산세에 짓눌릴 수 있어서다. 빈집을 지자체나 공익재단에 기부하려 해도 '재산 가치가 없어서 미안하지만 사양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그대로 방치하자니 이웃에게 폐가 될 뿐 아니라, 지자체가 나서서 철거한 다음 비용을 물어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빈집 관리 서비스 업체까지 등장했다. 지자체가 철거하겠다고 나서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업체가 집주인에게 월 5000~1만엔씩 받고 '최소한의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시오이리 마을에서 만난 하즈히로(77)씨가 "집을 갖고 있다는 게 이젠 축복이 아니라 걸림돌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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