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학부모한테 19억원 뜯어낸 과외 교사.. 검찰도 "이런 악질은 처음"

강훈 기자 입력 2016. 5. 7. 03:03 수정 2016. 5. 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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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법대 나온 사기꾼은 어떻게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았나

지난달 27일 수원지검 안양지청(김영종 지청장)은 한 수험생 부모를 상대로 5년간 49차례에 걸쳐 19억원을 뜯어낸 명문대 출신 과외교사를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악질 사건은 처음 본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명문대 떨어지면 환불해준다"

박모(38)씨는 안양·용인 등 경기 남부 지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논술 과외 교사였다. 명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과외 교사가 된 그는 경기 광명시의 한 오피스텔로 수험생을 불러 논술을 가르쳤다. 지방에서 KTX 타고 과외받으러 오는 학생들 때문에 KTX 광명역 근처에 오피스텔을 잡았다고 한다.

2010년 5월 당시 고교 3학년 아들의 어머니 이모(49)씨는 주변 소개로 과외교사 박씨를 만났다. 이씨의 아들은 성적이 학교 중상위권으로, 명문대에 진학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이씨에게 박씨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아들을 맡겨주면 논술 수시 전형으로 연세대와 고려대, 한양대 등 서울 지역 대학에 합격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씨는 "논술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대학과 뒷거래를 하는 서울 강남의 J논술학원을 통해 입학을 청탁해야 확실하게 합격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에 합격 못 하면 과외비와 입시 청탁비를 모두 돌려준다"고도 했다. 이씨는 대학에 떨어지면 돈을 돌려준다는 박씨의 자신감과 "명문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연수원 시절 작은 사건에 연루돼 변호사 대신 과외교사 길을 택했다"고 알려진 박씨 이력에 믿음이 갔다고 한다.

그들의 은밀한 거래는 성사됐다. 안양에 살던 이씨는 박씨의 광명 오피스텔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들을 보내 논술 과외를 받게 했다. 그리고 입학 청탁비와 과외비 명목으로 그해 말까지 한 차례에 2500만원씩 다섯 차례에 걸쳐 1억2500만원을 박씨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씨의 아들은 원서를 낸 대학마다 떨어졌고, 서울의 한 중위권 대학에 추가모집으로 합격했다. 그러자 박씨는 "J학원을 통해 들어가는 학생이 너무 많다. 그 학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대학마다 특화된 논술학원이 있으니 그쪽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시키자"고 했다. 연세대 입학을 위해선 A학원, 고려대를 위해선 B학원, 한양대를 위해선 C학원에 별도의 청탁금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1년 이씨의 아들은 재수를 시작했다. 이씨는 박씨가 알려준 대로 학원마다 5000만원씩 4개 주요 대학 입시 청탁 명목으로 모두 2억원을 박씨의 계좌로 입금했다. 아들은 그해 입시에서도 모두 낙방했다. 박씨는 다시 이씨를 설득했다. "너무 아깝게 떨어졌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어차피 불합격하면, 지금까지 낸 입시 청탁비는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당시 이씨가 주변에 이런 얘기를 했더라면 사기극을 의심할 수 있었겠지만, 매번 '은밀하게 추진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박씨의 말에 속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12년 이씨의 아들은 삼수에 나섰고, 이씨는 박씨에게 2억2500만원을 다시 입금했다. 3년간 모두 5억5000만원을 송금한 것이었다.

수사받을지 모른다고 협박

그해 가을 어머니 이씨는 은행에서 "화성경찰서에서 당신 계좌를 조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통상 수사가 끝나면 은행은 계좌 조회 사실을 계좌 주인에게 알려준다. 이씨가 화성경찰서에 전화를 걸자, 경찰관은 "(과외교사) 박씨에게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덜컥 겁이 난 이씨는 "그런 일 없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수험생 학부모들의 고소로 박씨를 수사하고 있었다. 박씨는 이씨뿐 아니라 다른 학부모를 상대로도 입학 청탁비 명목으로 3000만원씩을 받았고, 대학에 불합격했는데도 돈을 돌려주지 않아 고소를 당했던 것이다. 경찰이 박씨 계좌를 조사하다 수시로 돈을 입금한 이씨의 계좌까지 조회했던 것이다.

이씨는 바로 박씨에게 연락했다. "경찰에서 수사받고 있다는데 대체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 그러자 박씨는 "수원지검에서 대입 청탁 혐의로 나를 수사하고 있는 게 맞다"면서 "더 큰 문제는 내게 돈을 송금했던 당신과 당신의 아들, 남편 사업장까지 수사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 고소에 의한 단순 사기 사건을 부풀리고 왜곡해 오히려 이씨를 협박했던 것이다. 박씨는 "수사가 진행되면 아들이 다니는 대학도 입학이 취소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씨 아들은 수능 첫해에 합격한 대학에 학적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들의 명문대 입학은커녕 건설업 하는 남편까지 수사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박씨와 대책을 논의하게 됐다. 박씨는 그동안의 돈거래가 입시 청탁금을 주고받은 게 아니라 주식 투자를 위임한 것처럼 보이게 하자면서 자신의 증권 계좌로 수시로 돈을 보내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자신이 명문대 법대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검찰 수사를 최대한 막아보겠다고 했다. 수사가 종결되면 모두 돌려받는 돈이라는 박씨의 말에 이씨는 박씨의 증권 계좌로 2012년 10월부터 수개월에 한 번씩 3000만~5000만원을 입금했다.

박씨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2013년 5월엔 "나를 조사했던 화성경찰서 측에서 내가 수원지검에 로비한 사실을 알고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신과 남편에게 소환장이 날아갈 수 있다"고 했다. 지어낸 말이었지만 다급해진 이씨는 박씨에게 해결책을 물어봤고, 박씨는 "특별형사공탁금을 내면 소환받지 않고 조사를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특별형사공탁금을 관리한다는 수원지검 엄모 계장의 은행계좌 번호를 알려줬다. 소환을 막으려면 계속 공탁금을 내야 하고 나중에 수사가 끝나면 공탁금은 돌려받는다는 말에 이씨는 작년 7월까지 15차례에 걸쳐 6억5650만원을 엄씨 계좌로 보냈다. 그러나 특별형사공탁금이란 제도는 있지도 않았고 계좌 소유자인 엄씨는 사업하는 박씨의 친구였다.

재작년에는 "수원지검이 감사를 받게 됐는데, 감사가 우리 사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문제 삼으려 한다"며 "감사에게 뇌물 1억원을 채권으로 줘야 한다. 내가 7000만원 내고 부족한 3000만원을 부담해달라"고 요구해 이씨에게 3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5년간 이씨가 박씨에게 준 돈은 모두 19억750만원이었다. 집안 여윳돈을 모두 쓴 이씨는 수사를 막아보려는 생각에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는 등 7억원의 빚까지 졌다. 하지만 박씨가 언급한 입시 부정 수사는 끝나지 않았고 돈 요구는 계속됐다. 작년 7월 사업 자금이 필요했던 남편 유모씨가 돈의 행방을 추궁했고, 그제야 이씨는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사시 합격증 위조하고 연기자 동원

사기극을 의심했던 남편 유씨는 박씨에게 믿을 만한 자료를 갖고 오라고 다그쳤다. 박씨는 사법시험 합격증부터 만들었다. 위조 업자에게 300만원을 주고 2011년 사시 53회 합격 통지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시 53회에는 박씨의 동명이인이 합격한 적이 있다. 박씨는 법무부장관 명의의 사시 합격증을 내밀면서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느냐"고 했다. 남편과 이씨가 '사법시험 53회 박○○'이라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실제로 박씨의 이름이 있었다.

박씨는 특별형사공탁금 잔고 증명서도 위조했다. 이씨가 송금한 자금이 서울중앙지법 공탁관 직인이 찍힌 공탁금 잔고에 나와 있었다. 남편이 의심을 거두지 않자 박씨는 공소장도 보여줬다. 공소장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때 범죄 사실을 기록하는 문서다. 박씨가 위조한 공소장에는 범죄 사실은 없고, "박씨에 대한 입시 청탁 수사를 하던 중에 이씨와 그의 남편 계좌를 수사하게 됐다. 특별형사공탁금을 내서 소환 조사를 연기했다" 등 그동안 박씨가 한 거짓말을 사실로 둔갑시키는 내용이 나열돼 있었다. 공소장을 본 적 없던 부부는 박씨의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씨가 공탁금을 계속 돌려달라고 재촉하자 박씨는 또 다른 문서를 위조했다. 박씨는 자신이 법원에 공탁금 반환을 요구했던 가짜 '출급 청구서'를 보여주며 "부장검사가 내 계좌를 동결시켜 공탁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박씨는 연기자도 동원했다. 박씨가 인터넷에서 돈 주고 구한 아마추어 연기자들은 부장검사와 여검사 대역을 했고, 그들과 나눈 대화를 박씨가 녹음해 이씨의 남편에게 들려줬다. 대화 내용엔 여검사가 '사건을 덮어 주기로 했으니 당신(박씨)은 숨어 있으라'는 내용과 '자꾸 공탁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짜 부장검사의 발언이 담겨 있었다.

각종 핑계를 대며 돈을 돌려주지 않자 부부는 지난 3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박씨를 고소하게 됐다. 검찰은 즉각 희대의 사기극으로 판단해, 부부에게 고소 사실을 박씨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 박씨의 도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담당 검사는 박씨가 합격증을 위조했던 사시 53회 출신의 성진영 검사였다. 성 검사는 "박씨의 위조 합격증과 내 합격증을 대조했더니 합격증 수여 날짜가 달랐을 뿐 구별이 어려웠다"면서 "법을 배운 사람이 법을 모르는 피해자를 잔인하게 농락한 사건"이라고 했다.

부부를 상대로 고소인 조사와 박씨의 금융계좌를 추적했던 검찰은 혐의가 확인되던 지난달 6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박씨를 체포했다. 박씨는 이씨에게 받은 돈을 주식, 선물과 옵션에 투자해 대부분 날린 상태였고, 선물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이씨를 계속 속였다고 한다. 부부는 파탄 위기에 처했고 아들은 현재 군 복무 중이다. 검찰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부장검사를 지정했고, 피해 금액 회수를 위해 박씨 주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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