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의 폴리티션]'强철수'에 묻힌 '안철수의 말'

김태은 기자 2016. 5. 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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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정치지도자의 언어, 정치인을 향할 것인가 국민을 향할 것인가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the300]정치지도자의 언어, 정치인을 향할 것인가 국민을 향할 것인가]

정치인이 위력적인 '정치언어' 갖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훌륭한 무기임이 틀림없다. 권력 교체 수단으로 전쟁 대신 등장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기는 상대방에겐 치명적이되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동은 최소화될 때 가장 위력적일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정치권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정치언어가 낼 수 있는 효과의 차별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같은 말을 해도 덜 독해 보인다'는 이미지다.

한 정치 평론가는 "기존의 야당 정치인들이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로 콘텐츠보다 애티튜드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안철수는 이런 선입견에서 자유롭다"며 "대통령에 대해 '센 워딩'을 해도 거부감이 상당 부분 완화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순둥이? 달라진 안철수…그가 싸우는 법 기사읽기)

안 대표가 이른바 큰 '설화(舌禍)' 없이 국민의당을 안착시킨 것은 앞서 언급한 그의 정치언어가 가진 독특한 힘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상대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감수해야 할 반작용이 기존 정치인들보다 적다는 것이 힘의 원천이다. '안철수의 말'이 나날이 세질수록 지지율도 같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 창당과 함께 '강(强)철수'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도 정치언어가 큰 역할을 했다. 갈등회피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됐던 '애매모호 화법'에서 벗어나 정치 현안에 대해서든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든 직선적인 화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야권통합 시도로 코너에 몰리자 일견 과격해보이기까지하는 표현도 서슴지않았다. 김종인 대표를 '모두까기 차르'라고 비유한 것이야 이례적인 반격쯤으로 여겨졌지만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발언에 이르러서는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과연 지도자의 언어로 적절한 지 우려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가장 화제로 떠올랐던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다"는 조소성 발언도 그렇다. 지난달 26일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안 대표의 이 발언을 '낚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같은 말이라도 다른 정치인이 하는 것과 안 대표가 하는 것은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고 촌평하기도 했으나 동시에 '안철수의 말'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국민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안 대표가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다고 인정받아왔던 주요 강점이 예의바름과 온화한 태도였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강철수'에 대한 환호에 가려져있지만 선거 유세 현장 등에서 안 대표를 만난 일반 시민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이 "다른 정치인들처럼 싸우지 말고 막말하지 말라"는 것을 상기해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안철수의 정치언어'가 가진 힘의 성격이 변화한 탓에 그의 말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측면이 크다. 정치언어는 정치인의 실적과 성과, 나아가 정치행보를 통해 구현하는 가치와 동떨어질 수 없다. 안 대표가 '강철수'로서 주먹을 불끈 쥔 이상 그의 말 속에 번뜩이는 '날'이 바늘이 아닌 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문화의거리에서 집중유세를 하고 있다. 2016.4.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엇보다 안 대표를 비롯해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말'은 싸우는 무기가 아닌 힘을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건네는 악수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존중하는 언어는 비록 정치 노선이나 주의주장, 정책에 대한 판단이 다르더라도 이에 동조하고 지지하는 국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겁게 여기는 자세의 발로다.

더구나 국민의당은 적대적 공생의 양당 체제를 종식하고 협치, 나아가 연정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펼쳐갈 '제3당'의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지도자의 언어, '안철수의 말'에서부터 시작되지 못한다면 국민의당의 가치에 공감할 국민들이 있을까.
기자는 최근 정치인들의 말 중 인상 깊었던 연설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유승민, '진보적 보수' 선언…"새누리 새 바이블" 예고 기사보기)과 조성주 정의당 당대표 후보의 출마선언문(☞"노회찬·심상정은 스타됐는데, 진보정치는?"…'출마선언문' 조성주의 일침 기사보기)을 떠올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싸움 대신 합의의 정치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집권여당의 힘을, 진보정치의 대의를 강변하거나 설득하려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존재를 치켜세워주는 배려와 존중의 언어들로 채웠다.

정치지도자가 하는 말은 결국 국민들을 향한 말이 된다. 국민들을 공격하고 다치게 하는 정치언어가 국민들의 지지로 돌아오기는 어려운 법이다.

김태은 기자 tai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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