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도..삶은 계속된다

입력 2016. 5. 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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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 “좋은 곳에 산다면 더 바랄게 없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만난 한 노파의 말에선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대규모 공영개발에 희망을 품었지만, 추억을 간직한 터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시원섭섭함이었다.

지난 4일, 공사가 한창인 개포주공2단지 건너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을 찾았다. 즐비한 판잣집들은 대모산을 품고 있는 천혜의 입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했다. 정상에 서서 바라본 강남 도심의 풍경에선 어색한 빈부격차의 공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구룡마을에선 빈부격차의 어색한 공존을 확인할 수 있다. 상전벽해 수준의 개발로 일대는 대모산을 품은 천혜의 입지의 복합단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사진=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구룡마을의 시간은 오래전 멈췄다. 개발은 언감생심이었다. 협소한 길은 미로 같았고, 구획정리가 되지 않은 집들 내부에선 주민들의 담소가 들렸다. 곳곳엔 쓰레기와 폐자재가 쌓여 있었다. 걷는 내내 얼굴에 벌레가 꼬였다. 오랜 시간 정비가 되지 않은 개울 주변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어렵게 말을 꺼낸 한 주민은 “여름이 되면 악취가 심해지지만, 익숙해서 그런지 화장실 외에 불편함은 없다”며 “다만 화재에 약한 집들이라 서로 주의하고 있는 편”이고 말했다.

대모산 등산로로 이어지는지 평일임에도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종종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이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조용하고 묵묵히 무료한 일상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적이 드문 탓에 마을에 자리잡은 가게는 한적했다.

온전한 골격을 갖춘 집보다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이뤄진 가옥이 대부분이었다. 창이 없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집엔 공가 출입제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강남구는 투기 세력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가 관리를 해왔다. 개발을 앞두고 주민을 위장한 이들이 더러 난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곳곳에는 쓰레기와 폐자재가 쌓여 있었고, 개울에선 악취가 났다. 주민들은 화재에 취약한 가옥 구조상 서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구룡마을 진통은 올해 사라졌다. 갈등에 따른 피로감은 남았지만 조용한 기대감이 감지됐다. 개발을 반대하는 플래카드는 마을 어디에도 없었다. 앞서 민영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 청사진에 거센 반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모산 아래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땅주인이 없어서 그간 마음이 심란했을 것”이라며 “계속된 개발 이야기에 피로감이 쌓여 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개발안은 지난 2011년 결정됐다. 그러나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으로 장기간 표류를 거듭했다. 같은 해 11월 발생한 대형화재는 주거약자를 향한 사회의 무관심을 꼬집은 계기가 됐다.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속도도 이때부터 붙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개포동의 한 주민은 “지난해 마을 자치회관을 강제 철거할 때는 개발이 아닌 강제철거가 될 줄 알았다”며 “일부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도 주민을 위한 방향으로 개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다들 같을 것”이라고 밝혔다.

빈집에는 어김없이 공가 출입제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방음이 취약한 판잣집에선 이야기 소리가 골목길로 새어 나왔다. 비닐로 덧댄 창에선 지난 겨울 한파를 이겨내기 위한 고충이 느껴졌다. [사진=정찬수 기자/andy@heraldcorp.com]

지난달 진행한 구룡마을 주민공람은 순조로웠다. 재활용센터와 마을공방 등 주민공동이용시설과 일자리, 자립경제를 지원한다는 안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강남구 관계자는 “커뮤니티 활성화로 거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신경을 썼다”며 “서울시 결정을 거치면 오는 2018년 차질 없이 첫삽을 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공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소셜믹스’ 원칙을 반영할 계획이다. 공공임대와 분양물량을 혼합 배치해 구룡마을 주민과 입주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다. 일대는 도로ㆍ공원 등 기반 시설과 분양 아파트 1585가구, 임대 아파트 1107가구 등 총 2692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의 구룡마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옛 정취는 사라져도 삶은 계속된다. 거주민과 지역의 관심이 중요한 이유다. 20년 넘게 구룡마을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생각해보면 개발 이야기가 없었던 예전이 좋았다”며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임대로 들어가겠지만, 마음의 응어리만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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