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관 변호사 49명, 年 20시간 의무 공익활동조차 안 했다

손현성 입력 2016. 5. 6. 04:49 수정 2016. 5. 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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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2011~2014년 변협 자료 입수

32명은 1년 동안 1시간도 안해

2회 이상 걸린 6명 블랙리스트에

檢 출신 35명… 판사 출신의 2.5배

미이행 대체 기금 납부도 안해

변호사회서 징계 청구할 때 되면

기금 납부ㆍ날림 보고서 내기 일쑤

非 전관 변호사들 공익활동 초과분

넘겨받은 ‘무임승차’도 비일비재

검찰총장 등 판ㆍ검사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 49명이 연간 20시간의 의무공익활동도 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에서 부장판사와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액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일부 전관 변호사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하고 공익활동은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일보가 5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입수한 ‘전관 회원 변호사 공익활동의무 미이행자’자료에 따르면, 2011~2014년 검찰총장과 부장검사, 부장판사 등을 지낸 전관 변호사 49명이 변호사법에 규정된 공익활동 이행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엘리트 기관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출신의 변호사가 7명, 서울중앙지법에서 법복을 벗은 변호사가 5명 포함됐다. 부장판사 및 부장검사 이상 출신은 각각 6명과 7명으로 집계됐다. 검사 출신 공익활동 미이행 변호사는 35명으로 판사 출신 14명보다 2.5배 많았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이번에 파악된 49명의 전관 변호사들은 변호사법에 따른 최소한의 공익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미이행시 대체하는 기금 납부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법 27조에는 모든 변호사들은 인권 등 공익을 대변할 의무가 있는 만큼 연간 일정 시간 이상 공익활동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공익활동 이수 시간은 각 지방변호사회가 정하는데 대부분 1년에 20시간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간당 2만~3만원의 기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들 전관 49명 중 32명(65.3%)은 1년 동안 단 1시간의 공익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6명(12.2%)은 두 차례 이상 공익활동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변협의 ‘블랙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지내고 2009년 서울변호사회 소속으로 개업한 A 변호사는 2011년 공익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2012년에도 의무이행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활동을 했다. 제주지법 판사 출신 B 변호사는 2011~2013년 공익활동을 겨우 2시간만 해 3년 연속 미이행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익 변론 등 공적 활동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B 변호사의 행태에 서울변호사회는 2014년 “이 전관에게 현행 법대로 과태료를 부과해 달라”는 취지로 변협에 징계를 청구했다. B 변호사는 결국 전문 분야 광고 게재 규정위반과 함께 과태료 1,000만원 처분을 받았다. 변호사단체 소속 고위인사는 “이런 전관들은 공익활동도 안하고 대체 기금납부도 무시하다가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징계 청구를 할 때가 돼서야 뒤늦게 밀린 기금을 60만원씩 한번에 내고 넘어가거나 공익활동 보고서를 날림으로 내곤 했다”고 전했다. 이외에 서울중앙지법, 서울남부지법 판사 출신과 부산고검 출신 전관들도 2012년과 2014년 공익활동을 단 1시간도 하지 않았다.

물론 전관 변호사만 공익의무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전관 변호사 2,147명(2014년 기준) 중 공익활동 미이행 변호사 비율은 2.3% 정도로 전관 출신이 아닌 변호사 1만3,844명 중 미이행자 비율 3.4%(471명)보다 낮은 편이다. 다만 대형로펌에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법무법인(로펌)의 경우 소속 변호사들끼리 공익활동 시간 초과분을 다른 변호사에게 양도하는 게 가능해, 로펌 소속 전관들은 변호사단체 및 공익재단 봉사 등으로 공익활동을 인정 받은 다른 비전관 변호사들의 봉사에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과 법원 등에서 고위 공직자로 오래 몸담았다가 옷을 벗자마자 돈벌이에만 매몰돼 공익활동을 외면하는 행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판사 출신의 한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법원을 나와서 변호사로 돈을 벌어 보니 공직자에 대한 평가는 밖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 전관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익활동은 오랫동안 세금으로 먹고 산 데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서울 종로구 당주동 변호사회관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상. 디케가 오른손에 든 저울은 엄정한 법의 기준을, 왼손으로 잡고 있는 칼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힘을 의미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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