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판 양적완화' 운운하는 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는 것"

김지섭 기자 입력 2016. 5. 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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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국내외 전문가에게 듣는다] [3] 재벌개혁 운동 벌여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 - 해운·조선 3社 부실처리는.. 韓銀이 국회동의 필요 없는 특별 융자로도 막을 수 있어 진짜 비상때 써야 할 양적완화를 벌써 얘기해 소모적 논쟁 벌어져 - 조선업 빅딜, 당장은 현실성 없어 공급과잉은 중국이 훨씬 심해.. 빅3 경쟁력으로 일단 버텨야 - 대량실업 대책, 공적자금이 최선 1997년·2008년 공적자금 조성 하지만 청문회 하는 바람에 관료들이 절대 먼저 얘기 안 꺼내.. 결국 정치권이 풀어줘야
지난 20여년간 재벌 개혁 운동을 벌여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5일 이 대학 연구실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는“‘양적 완화’는 진짜 비상 상황 때 써야 할 마지막 정책 수단”이라며“일부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한국은행 특별융자나 공적 자금 투입 등의 수단으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지금 국책은행 자본을 5조원 정도 확충하는 것을 두고 '한국판 양적 완화' 운운하는 것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들이대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진행되는 2개 업종(해운·조선)의 3개 회사(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부실 처리는 재정이 맡는 것이 원칙이나 정 급하면 한국은행 특별융자 정도의 예외적 수단으로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관료들이 국회에 가서 야단맞고 동의받는 절차를 생략하려고 그걸 미국이나 유럽식 양적 완화에 빗대니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바람에 지금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3개 기업 처리 방안과 향후 그 이상의 부실이나 경제 충격이 왔을 때 동원해야 할 마지막 수단을 구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진보 진영 경제학자로 재벌 개혁 운동을 벌여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요즘 누구보다 한국 경제 위기론을 부르짖고 있다. 그는 "재벌·노조·은행·정부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속히 구조조정에 착수하지 않으면 다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속살을 깊숙이 들여다본 그는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도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3개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이뤄지면 6개월 정도 시간을 번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도 만들어가야 하고, 진짜 경제에 충격이 오는 비상 상황 때 써야 할 정책 수단이 '양적 완화'인데 벌써부터 이를 양적 완화라고 부르는 바람에 소모적인 논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부실을 낸 대우조선은 문 닫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재무적 관점에서 맞는 말이지만, 산업적으로 봤을 때 과연 정답인지는 자신이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1·2·3위를 차지하는) '빅3'조선사의 경쟁력이라면 재무구조를 개선해서 당분간 각자 힘으로 살아보라고 하는 게 맞는 방식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대우조선을 계속 산은 자회사로 끌고 갈 수 없으니 당분간은 자회사로 두고 부실을 낮춰준 뒤 몇 개 사업 부문으로 쪼개 매각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조선업 빅딜론도 끊임없이 나돈다.

"조선사를 하나로 합치는 게 장기적으로 나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고 본다. 일본이 그렇게 한 이유는 심지어 고부가가치선에서도 한국 기업과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선박의 절반을 빅3가 만들던 시절이니까. 고부가가치선의 건조 능력에서만큼은 적어도 전 세계에서 빅3만큼 경쟁력을 가진 곳은 없다. 우리가 이번에 실패했지만 해양플랜트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향후 조선업을 구조조정하면 중국만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의 과잉 설비는 중국이 훨씬 심하다. 중국도 엄청나게 구조조정을 하는데 문제는 우리보다 낮은 수준의 벌크선 중심 조선사들이고, 다 국영기업이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오래 버틸 것이다. 결국 치킨 게임(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1분기에 수주를 4척밖에 못 한 것은 중국이 벌크선에서 덤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대우조선을 문 닫는다고 회복될 거냐. 자신이 없다. 정부도 기업도 당분간은 버티기 하며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다. 이미 빅3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조금 좋아지면 3년간은 버텨 보는 거고, 나쁜 시나리오 쪽으로 가면 5조원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자금 조성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세계 9위, 16위 수준의 두 해운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나.

"우리 해운사의 근본적인 약점은 낡은 배를 계속 운영하거나 중국에 발주해 만든 효율성 떨어지는 선박으로 버티는 거다. 용선료 인하 협상도 중요하지만 배에 대한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다. 해운사들은 우리나라 빅3 조선사가 만드는 배를 갖고 있어야 국제 경쟁력이 생긴다. 정부가 선박펀드를 만들어 새 배를 만들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10조원 정도의 설비 투자만으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 어떤 해법이 있나.

"해운사를 2개 다 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둘 다 법정관리로 갈 수도 있다. 둘 다 산은 자회사로 집어넣고, 설비 축소하고 신규 투자하면서 경쟁력을 높인 다음 새 주인을 찾아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둘 다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해운동맹에서도 이탈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다음 다시 해운동맹에 끼어드는 수순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 실업 사태와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

"해운업은 고용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조선업이 문제다. 조선 3사가 직접 고용한 인원이 3만명 정도고, 하도급 인력을 합하면 9만명 정도 된다. 쌍용차는 해고 인원이 천몇백인데도 그 난리가 났는데, 해고 인원이 1만명 넘고 노조와 야당이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때처럼 접근하면 나라가 결딴날 거다. 그렇다고 조선사 빅3한테 고용을 계속 유지하라고 하면 삼성도 3년 이상 못 버틴다. 고용은 외곽 쪽에서 고통을 절감해 주는 방향, 즉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금융 당국이 결정하겠나, 한국은행이 결정하겠나. 이 문제는 결국 정치권에서 풀어줘야 한다."

―사회 안전망까지 강화하려면 필요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거 아닌가.

"베스트 시나리오는 공적 자금을 동원하는 거다. 공적 자금은 정부가 지급보증한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하고, 국회 동의 절차를 밟는다. 2009년 조성된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하면 최대 40조원까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관료들은 절대 이런 얘기를 먼저 못 한다. 우리가 공적 자금을 1997년(외환위기), 2008년(글로벌 금융위기) 두 번 조성했는데, 두 번 다 청문회를 했기 때문이다."

―관료들을 과감하게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야·정 협의체가 해법이 될 수 있다. 거기서 결정한 방침대로 하면 관료들이 후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행의 양적 완화로만 자금 조달 문제를 풀면 사후적으로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공적 자금은 법에 따라서 관리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현 경제팀이 지난한 구조조정 문제를 잘 풀 수 있다고 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관료들이 너무 눈치를 보고 대통령이 딱 찍어서 지시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구조조정은 정답이 없는 가운데 차선을 찾는 것이다. 국무회의 가서 대통령한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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