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재수 없다" 막가는 요즘 초등생 SNS

유소연 기자 입력 2016. 5. 6. 03:06 수정 2016. 5. 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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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가 된 SNS] [3] 신종 학교폭력 무기로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에서 욕설 등 사이버폭력 경험 늘어.. 한명씩 돌아가며 '왕따 놀이'도 교사·학부모가 조기발견 어려워

"오늘 성나은이 입고 온 하늘색 원피스 완전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

인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성나은(10·가명)양은 최근 하굣길에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가 한참을 울었다. 같은 반 친구가 성양을 흉보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성양과 반 친구 10여명을 태그(다른 이용자와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한 것이다. 태그된 친구들은 공감을 뜻하는 '좋아요'를 눌렀다. 성양이 '페따(페이스북 왕따)'가 된 것이다. 반 친구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옆에 가면 냄새 난다" "키가 작고 뚱뚱하다" "영어를 못 읽는다"며 성양이 싫은 이유를 썼다. 또 "XX년 재수 없다" 같은 욕설도 잔뜩 써놓았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SNS가 학교 폭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5일 본지가 입수한 방송통신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5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 가운데 14%가 "사이버상에서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들이 꼽은 '사이버 폭력'의 30%가량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SNS를 이용한 학교 폭력은 교사나 학부모의 눈을 피해 이뤄지기 때문에 조기(早期) 발견이 쉽지 않다. 경기 오산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이모(26)씨는 지난달 정연아(13·가명)양과 이채린(13·가명)양이 교실에서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 서로 사과편지를 쓰게 했다.

이씨는 두 학생이 금방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며칠 후 반 학생들의 카카오스토리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많은 학생이 봄 소풍 때 찍은 단체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정양 얼굴만 모자이크로 가린 것이었다. 이양과 친한 친구들은 정양이 찡그린 얼굴을 크게 확대해놓고 '굴욕 사진'이라며 낄낄거렸다. 결국 이씨는 반 학생들에게 카카오스토리 금지령을 내렸다. 이씨는 "연아 사건 이후 학교 차원에서 '학교 폭력을 막으려면 학생들의 SNS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방통위와 인터넷진흥원의 실태조사 결과, 초등교사의 42%가 "학생들의 SNS를 주기적으로 들어가 본다"고 답했다.

사이가 좋은 친구들끼리도 한 명씩 돌아가며 '왕따' 학생을 지정해 놀리는 'SNS 왕따 놀이'도 퍼지고 있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김모(43)씨는 최근 아들 다울(12·가명)군의 SNS를 샅샅이 뒤졌다. 다울이가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파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하자, "혹시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울군의 페이스북엔 지난달 일본 도쿄 가족여행 때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 김군의 친구들이 적어놓은 "방사능충(蟲) 꺼져" "방사능 옮기지 말고 집에 있어라" 같은 악성 댓글(악플) 수십 개가 달려 있었다. 놀란 김씨에게 다울이는 웃으면서 "친구들끼리 SNS 왕따 놀이를 하는데 이번이 내가 당하는 차례다. 다음 차례 친구에겐 내가 당했던 것 이상으로 복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4.4%였던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지난해 59.3%로 급증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5명 가운데 3명은 스마트폰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 학부모는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이모(여·36)씨는 "스마트폰을 안 사주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되고, 사주면 SNS 등에서 '카따(카카오톡 왕따)'나 '페따'를 당할까 봐 겁난다"고 했다.

김은정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이버 폭력은 스토킹이나 신상 정보 유출처럼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초등학생들은 주로 언어 폭력과 따돌림 같은 피해에 자주 노출된다"면서 "사춘기와 겹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SNS에서 친구들에게 왕따 피해를 당하면 자존감 상실이나 우울증 같은 충격이 평생 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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