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겹치고, 예산 찢기고..152조 쓰고도 못 푼 저출산·고령화

박병률 기자 2016. 5. 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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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기관·부처별 제각각 집행, 혼란만 초래…총괄 컨트롤타워 필요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저출산·고령화 정책 얘기만 꺼내면 속이 쓰리다. “도대체 정부는 뭐 했느냐”는 질타를 받으면 답답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저출산·고령화를 막기 위해 쓴 돈은 저출산대책 80조원, 고령화대책 57조원 등 모두 15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저출산도, 고령화도 막지 못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큰돈을 쓰고도 쓴 것 같지 않은 것은 사업이 너무 많은 것도 원인이다. 지난 10년간 시행한 저출산 사업만 191개에 달한다. 정부 재원이 자잘하게 쪼개지면서 사업규모가 축소됐고, 그러다 보니 소득수준에 따른 선별복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재원이 적다 보니 수혜대상은 축소돼 정책 체감도는 낮아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출산·고령화에 투입한 재정은 우리 예산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라며 “출산아 1인당으로 따지면 5000만원꼴인데, 차라리 아이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타 사업도 마찬가지다. 올해 재정에서 지원하는 청년일자리사업 예산은 2조1100억원이다. 이 돈으로 14개 부처(청)에서 57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청년일자리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청년고용대책까지 합치면 20개 부처(청)가 139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정도 숫자라면 청년실업 문제가 진작에 해결됐어야 하지만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해외 청년인턴 사업을 보자. 외교부는 공적개발원조(ODA) 청년인턴프로그램과 해외지역기구파견 인턴프로그램을,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ECDF) 채용형 인턴제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해외인턴사업을, 교육부는 한·미대학생 연수취업과 대학글로벌 현장학습 프로그램 등을 하고 있다. 비슷비슷한 해외인턴 사업이지만 이렇게 쪼개져서는 청년들이 정보를 제대로 얻기도 어렵다. 차라리 한곳으로 통합해 ‘해외인턴프로그램’으로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성이 높아보인다.

다른 청년인턴제도 마찬가지다. 국토부의 항공인턴제, 중소기업청의 창업인턴제, 문화체육부의 체육분야 인턴십 지원사업도 ‘청년인턴사업’ 하나로 묶어 통합관리하는 게 효율적으로 보인다. 같은 목적의 사업들이 부처별로 난립하는 것은 새사업을 만들고 싶어하는 관료 특유의 관성에 부처별 예산확보 경쟁이 겹친 결과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청년일자리사업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사업 인지도가 낮을 뿐 아니라 일자리 정보가 실제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아 실효성과 체감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사업이 기관별·부처별로 분절화돼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아껴 쓰겠다며 내년도 예산 10%를 절감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재정지출 체계를 큰 폭으로 개편해 전달과정에서 새어나가는 행정비용을 줄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지적도 많다. 돈은 쓰면서도 국가와 자치단체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한 송파 세모녀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사회부총리가 노동·복지·고용을 총괄적으로 조정하면서 사업이 중복되거나 과도하게 나뉘지 않도록 컨트럴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며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 갇혀 큰 그림도 못 그리고 그때그때 땜질식 정책이 양산되면서 예산의 효율적 사용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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