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작품을 하는 것보다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인터뷰)①

김현록 기자 2016. 5. 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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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의 천우희 인터뷰
[스타뉴스 김현록 기자]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영화 '곡성'(나홍진 분)을 천우희(29)의 영화라 이르긴 어려울 것이다. 156분의 러닝타임 중 그가 나오는 분량이 20분은 될까 싶다. 하지만 '곡성'의 천우희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전한 뜻밖의 웃음과 뜻밖의 긴장감, 그리고 묵직한 존재감은 왜 그녀가 고질적인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던 충무로의 희망이 되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나홍진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곡성'은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져 발칵 뒤집힌 시골 마을의 이야기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고 살인을 저지른다. 누군가는 야생 버섯을 잘못 먹은 탓이라 하고, 누군가는 일본인이 이사온 뒤 흉한 일이 벌어진다며 수군거린다.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기이한 사건에 의심을 품는다. 그러던 중 그의 딸이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천우희는 그런 종구 앞에 나타난 사건의 목격자 무명 역을 맡았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기웃거리는 이름 없는 여인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불쑥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고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등장하며 종구와, 관객과 줄다리기를 한다. 천우희와 곽도원이 마주하는 후반의 투샷은 압권이다. 체구의 차이마저 지워버린 듯한 팽팽한 긴장에 숨이 턱 막힌다.

영화의 얼얼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시사회 다음날, 상큼한 단발로 웃고있던 천우희를 만났다. 그리고 치열했던 작업의 순간을 되새겼다. 지독하기로 이름난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이 즐거웠던 이유도 들려줬다. "천생 배우"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영화는 어땠나.

▶만족스럽다. 음악이 입혀진 영화를 처음 봤다. 음악이 없을 때도 2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는데 음악이 더해지니 느낌이 풍부해지더라.

-편집 탓인가, 분량이 많지 않더라.

▶원래도 분량이 많지 않았다. 편집된 부분은 한 장면이다. 외지인(쿠니무라 준)과 싸우는 격투신. 그 때 정말 너무 많이 다쳤다. 옷이 너무 얇고 산기슭에 올라가 몸싸움을 하는 신이었다. 치마를 입으니 보호구를 할 수 없었다. 집에 가서 봤더니 다리가 2배로 부어 있더라. 한 달은 피멍이 들어 살만 스쳐도 아팠다. 그 장면이 없어져 아쉽지만 전체적 흐름이나 '톤 앤 매너' 탓이라면 괜찮다.

-적은 분량에도 시나리오를 읽고 흥분을 느낀 건 왜인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시나리오다. 제 캐릭터는 그 다음이다. 전체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실현되면 어떤 느낌일까 너무 궁금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은 저에게 크지 않았다.

-시나리오만 보고 온전히 이해했나?

▶처음 읽고 감독님이 '어때요?' 그러시는데 '멘붕인데요, 대혼돈과 혼란인데요'라고 했다. 그때 딱 그랬다. 감독님이 느끼는 대로 보는 게 맞다고 이야기하시더라. 그 땐 저도 관객과 같은 마음이다. 이후 캐릭터에 접근할 때는 전혀 다르지만. 처음에는 약간 멍했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사람들은 명확한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지, 하고싶은 게 뭐지'라고 묻는다. 우리 영화는 그것을 던진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더라.

-걸음이 묵직해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미팅 때 감독님이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고 하셨지만 의도하거나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웠던 점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나 등장 분량이 적다 보니 초반 중반 후반 느낌을 동일하게 가져가야 하나, 페이크를 써야 하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막 가로막히곤 했다. 어찌됐든 이 인물은 아무도 연기해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상상하기 나름이고 내가 어떤 서브텍스트를 가지고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고민을 많이 하고 분석했지만 즉흥적인 것이 많았다. 지금껏 연기했던 것들 중에 가장, 정말 그냥 '날것'이었던 것 같다. 잘 보시면 머리가 조금씩 길어진다. 보통 연결 때문에 머리를 자르는데, 6개월 넘게 자연인처럼 살았다. 머리도 자르지 않고, 피부과도 가지 않고. 거기 그냥 있는 느낌이고 싶었다. 얼굴도 푸석해 보인다. 분장팀에서는 '얼굴 이상하게 나와서 어떻게 해' 하는데 저는 그게 좋았다. 있는 그대로 나오고 싶었다.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선과 악이 모호하다. 명확한 선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다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저 사람은 사람이야 귀신이야'부터 '선이야 악이야'까지 많은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종교의 기원 자체가 뭘까. 저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예전으로 돌아가보거나 샤머니즘을 떠올려보면 사람들은 무서운 존재에게 빌었다. 내가 선이라고 해서 선함을 연기하고 신적 영적인 느낌을 표현한다기보다 모호함을 가져가는 게 어떻겠나 했다. 무명은 정말 모호하다. 줄타기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선한 전재라고 그저 여기면 연기적으로도 그렇게 표출될 것 같아 모호하게 연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제가 느낀 설정은 분명했다. 제 스스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봤을 때 헷갈리게끔 연기해야 했다.

-감독의 주문이었나.

▶그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도 접한 적 없는 존재니까 제게도 많이 물어보셨다. 디렉션을 주거나 연기를 할 때 정확하게 하면 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명확한 표현을 하기 힘든 거다. 명확한 걸 해야하는데 그 느낌만 느껴지니까. '알지, 그 느낌?', '알 것 같은데 일단 해볼게요', '아 그 느낌' 이러며 찾아갔다.

-나홍진 감독과의 첫 작업이 '징글징글했다' 했는데, 잘 맞았나?

▶잘 맞는 것 같다. 저는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다. 같이 해 나가는 데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감독님의 성향, 스타일이 영화적 성향이랑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것을 많이 따라가기도 하고 분위기를 탄다. 많이 잘 맞았다. 감독님하고 그렇게 집요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저는 정말 좋았다.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해보고 싶지만 안 될 때도 있고, 더 갈망하면서 이끌어주길 바랄 때가 있다. 끝까지 '한 번만 더 해보자', '새로운 건 없을까' 하는 방식이 저는 정말 좋았다. 다들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제가 했던 여러가지 작업 중에서 저는 굉장히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즐거웠다.

-본인도 집요하고 징글징글하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약간 다르지만, 제 것만 고집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배우에게는 왜가 중요하다. 그에 대해 충분히 전달만 받으면 이해하고 할 수 있다. 대화 없이 '무작정 해'라면 힘들다. 감독님은 그런 부분을 충분하게 이야기하고, 저도 그런 부분에 타협 없이 집요하게 물고 가는 게 있다. 작품을 그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작품을 왜 하고, 이 인물을 왜 하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감독님에게도 그런 부분이 너무 많이 있고, 제가 갖고 있는 그런 부분을 건드려주시니 저로선 정말 좋았다.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배우 천우희 / 사진=김창현 기자

-연기관을 듣고싶다.

▶연기관은 항상 바뀌긴 한다. 분명한 것을 관객에게 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이 영화가 지금 이 시기에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주든, 위로를 주든, 오감으로 만족을 주든, 메시지를 주든. 어떤 것이든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임할 때도 항상 진지하게 생각한다. '작품이 들어왔네, 한 번 해볼까' 이게 아니라 분명하게 만들어지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곡성'의 이유는?

▶대혼돈을 주기 위해서.(웃음)

힘든 일을 겪거나 했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존재는 있나. 그렇다면 뭘 하고 있나' 거기에서 시작했다는 감독님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한번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그것을 영화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연기하며 인물을 항상 창조해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초월적인 부분이었다. 너무 하고 싶은데 겁이 났다. 임팩트나 느낌, 존재감이 확실히 있어야 하는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겁도 나긴 했다. 그런데 감독님을 만나고 리딩을 하고 현장에 가는 즐거움이 크니까 힘들어도 재미가 나는 거다. 너무 재미있다. 저는 테이크 갈 때마다 다르게 해본다. 제가 순간적으로 의심하거나 흔들릴 때가 있는데 감독님은 정확하게 캐치하신다. 그 미세한 걸 알아주시니까 즐거울 수밖에 없다.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오래 찍은 신은?

▶종구(곽도원)를 붙잡고 있는 마지막 장면 가장 많이 찍었다. 앵글, 조명 등도 제한이 많아 어려웠다. 저와 종구가 만나는 신은 거의 즉흥적이었다. '이건 어떨까요' 하면서 이것저것 해 나갔다. 3회차로 잡았는데 6회까지 늘어났다.

-곽도원이란 큰 배우에게 위압감을 준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위압감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다. 에너지를 무한대로 발산하면 차라리 연기를 하기 쉽다. 제가 카메라 넘어서까지 에너지를 뻗치면 차라리 쉬운데 저는 제한적으로 감춰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거다. 그 힘조절이 어려웠다. 카메라 앞에서 호흡하거나 인식하는 것도 다르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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