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그렇게 해도 돼"..인체 유해설 실험 한번 안했다

이태성 기자 2016. 5. 5.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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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사건의 재구성] "아기를 위해 썼는데.."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사건의 재구성] "아기를 위해 썼는데…"]

"내 아기를 위하여! 가습기엔 꼭 가습기메이트(가습기살균제)를 넣자구요"

1995년 한 신문에 실린 광고다. 이 광고문구 대로 당시 가습기는 아이를 위한 제품이었다. 집안의 공기가 건조하면 아이들에게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 피부염 등이 생기기 쉽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대다수의 부모들은 집에서 가습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거 환경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집안이 과거에 비해 건조해 진 것도 가습기 사용 증가에 한몫 했다. 2012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가습기를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7.2%로 나타났다.

가습기를 사용하며 가장 귀찮은 문제가 가습기의 청결 유지다. 물을 사용하는 가습기의 특성상 박테리아 등 세균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가습기 사용 주의사항에는 '매일 물을 갈아주고 가습기 청소도 해야 한다'고 돼있다.

이 귀찮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이 1994년 국내 기업에 의해 탄생한다. 유공(현 SK케미칼)은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을 이용, 물에다 약품을 타고 가습기를 작동시키기만하면 세균이 하루만에 100% 죽는 제품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다. 그 전까지는 세정제를 사용해 가습기를 직접 씻어야 했다(해외는 아직도 세정제를 사용한다). 유공은 '효과가 15일가량 지속되고 독성실험 결과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선전했다.

시간이 지나며 '살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다른 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이 옥시였다. 2000년 10월 옥시는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성분이 들어간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사용법은 유공의 살균제와 같았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 역시 함께 따라붙었다. 이후 버터플라이이펙트, 홈플러스 등도 옥시 살균제를 베껴 상품을 출시했다.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을 사용한 업체도 있었다.

국내에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성분 중 CMIT, MIT, PHMG, PGH는 보통 살균이나 소독, 방부제로 쓰인다. 이 중 PHMG, PGH는 다른 살균제에 비해 피부나 입을 통해 접촉했을 때 독성이 5분의 1정도로 적다. 문제는 이 물질을 사람이 호흡기를 통해 '흡입'했을 경우 어떤 위험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물질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화학물질은 사용 방법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균을 죽이는' 물질의 경우 해외에서는 강도 높은 안전검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는 별다른 실험 없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꼬리를 달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개당 3000~4000원에 불과한 가습기 살균제는 2010년 약 20억원어치가 팔렸다. 연구에 따르면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 중 절반 이상, 약 800만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물과 함께 분출되도록 만들어진 살균제는 사용자들의 호흡기를 타고 몸에 흡수됐다. 가장 처음 이상이 발견된 것은 2006년이다. 그해 아이, 산모를 포함한 원인 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서울 소재 큰 병원들에 잇따라 찾아왔다. 이들은 호흡을 담당하는 폐세포가 호흡할 수 없는 상처조직(섬유조직)으로 변해버린 '폐섬유화' 증상을 보였다. 보통 60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증상으로 젊은 사람에게 나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의사들은 이들에게 발생한 증상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비슷한 환자는 계속 발생했지만 2011년 산모 7명이 같은 증상으로 한꺼번에 입원하고 그중 4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터진 후에야 질병관리본부(질본)가 나섰다. 질본은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과 연관이 있다고 발표한다. 장기간 살균제 성분을 흡입했을 경우 폐섬유화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 아기를 위해' 살균제를 썼던 이들은 땅을 치고 통곡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는 곧바로 중지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이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 모두가 피해자로 인정된 것도 아니었다. 업체들은 정부의 조사가 잘못됐다고 반발했고 정부부처는 역학조사 이후 사실상 손을 놨다. 이에 피해자들은 검찰에 업체를 고소하고 국가가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내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 시민단체도 가세해 가습기 피해자들을 도왔고 불매운동도 시작했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대학 교수를 포섭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를 받아내려고 했던 살균제 업체들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후에야 하나 둘 고개를 숙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개발된지 22년, 피해 원인으로 지목된지는 5년 만이다.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384명이다. 최초의 피해자로 드러난 것은 2002년 사망한 김모양(당시 5세)이었다. 시민단체는 피해자를 1528명, 사망자는 239명으로 보고 있다.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며 CMIT/MIT성분을 사용한 애경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이르면 6월 가습기 살균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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