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미워요] (상) "잘되라고 때렸는데 뭐가 문제"..이러다가 '폭력의 악순환'

남지원 기자 2016. 5. 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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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진이(11·가명)와 우현이(9·가명) 남매를 키우는 어머니(40)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아이를 때리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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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도록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옷에 실수를 했다. 어머니는 바지에 오줌을 싼 미진이의 허벅지를 때렸고 아이에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자신도 맞으며 자란 어머니는 ‘아이는 당연히 때리면서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옷에 배변을 하고 집에 난리를 쳐놔서 때렸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만 집에 내버려두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서 자란 지혜(17·가명)는 중학교 때부터 할머니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할머니는 지혜의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바깥으로 쫓아냈고 화장을 하면 “남자 꼬시려고 그랬느냐”는 폭언을 퍼부었다. 지혜는 결국 가출해서 제 손으로 할머니를 경찰에 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할머니는 “손녀가 잘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훈육했을 뿐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는 “할머니가 너무 무섭고 싫다.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건을 담당한 가정법원 조사관은 “폭력 정도가 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잦은 욕설과 손찌검이 반항심을 더 키운 듯하다”고 의견서에 적었다.

법원은 두 사례 모두를 학대로 보고 아동들을 시설에 보호위탁하기로 결정했다. 미진이 엄마와 지혜 할머니처럼 아이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이 주변에 흔하다. 이 중 일부만 사건화돼 수면 위로 드러날 뿐이다. 내 아이는 내가 때려서 가르쳐도 된다는 생각은 폭력을 습관으로 만들어 증폭시킨다.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을 많이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부모에게 맞은 아이는 곧바로 잘못했다고 말한다. 부모는 손쉬운 교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계속 매를 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아동은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폭력이 재생산되고 대물림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피해아동 중 36.3%에는 반항·충동·공격성이나 거짓말, 도벽 등 적응·행동 문제 특성이 나타났다. 부모와의 안정적인 관계형성에 실패한 아이들이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게 돼 공격성향을 갖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정윤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는 2012년 중학생 3196명을 조사해 “가정폭력에 더 많이 노출됐을수록 학교폭력 가해 행동을 할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폭력의 증폭과 재생산을 막기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모든 체벌 금지를 법제화해 폭력의 첫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고 명문화했지만 여전히 처벌 규정은 없다. 친권자가 자녀에게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법과 학교장이 법령과 학칙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한 초중등교육법은 체벌을 허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적으로는 체벌금지법 도입이 대세다(표 참조). 1979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녀 체벌금지를 법제화한 스웨덴에서는 제정 당시 국민 70%가 반대할 정도로 논란이 심했지만 법 시행 이후 인식이 서서히 변해갔다. 1980년 28%였던 자녀를 체벌하던 부모 비율은 2011년 조사에서 3%까지 떨어졌다.

경향신문-아동인권포럼 공동기획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국제아동인권센터·민변 아동인권위원회·뿌리의 집·세이브더칠드런·아동인권실현을위한연구자모임·유니세프한국위원회·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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