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젝스키스가 지금 데뷔했다면

아이즈 ize 글 강명석 | 사진 MBC 입력 2016. 5. 4. 09:03 수정 2016. 5. 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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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강명석 | 사진 MBC

1990년대 후반, 성공한 음반 제작자들은 돈을 긁어모았다. 밀리언셀러 음반이 한 해에 몇 장씩 나왔던 이 시절에 어떤 제작자는 1천만 원도 안 들인 음반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통장에 하루 몇천만 원이 입금됐다. 한 기획사 사장은 소속 가수가 크게 성공하자 현금 1천만 원을 검은 봉지에 담아 로드매니저에게 던져주었다. 하지만 이 제작자들 중 상당수는 버는 돈이 아까워 보일 만큼 어처구니없이 가수들을 관리했다. 조폭이 관련된 기획사는 차치하고서라도, 평범한 제작자도 말을 듣지 않는 가수는 돈 한 푼 제대로 주지 않고 내쫓았다. 이런 제작자들이 고용한 매니저들은 가수에게 몰려든 팬들을 ‘빠순이’라 부르며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6인조 보이그룹 젝스키스는 이 시대의 수혜자로 시작해 피해자로 끝났다. 제작자가 인기를 얻고 있던 5인조 보이그룹 H.O.T.의 대항마로 만들기 위해 6인조로 기획하면서 기존 연습생 외에 새로운 멤버들을 급하게 모아 데뷔시켰다. 빠르게 움직인 만큼 막 성장하던 아이돌 산업을 선점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인 비전 없이 시장의 요구에만 맞춘 팀의 활동은 그들을 문자 그대로 ‘갈아 넣었다’. 앨범을 낸 지 1~2달 후 그다음 앨범이 나왔다. 그 사이 뮤지컬과 영화 출연은 물론 어이없을 만큼 작은 행사에도 출연했다. 지친 멤버들은 스케줄을 펑크 내고 잠적하기도 했다.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못해 회사가 주는 대로 돈을 받았다. 활동의 이유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작자는 3년만의 해체를 결정했다. 무리한 활동으로 지친 멤버들을 설득해 팀을 끌고 가기 보다 끼 있는 10대를 캐스팅해서 팀을 급조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때였다.

고지용을 제외한 젝스키스의 멤버들은 해체 후에도 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3년 동안 돈 버는 활동에 소모된 멤버들은 제작에 필요한 노하우도,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능력도 부족했다. 은지원은 솔로 앨범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두 장을 만든 뒤에야 ‘만취 In Melody’를 히트시켰다. 다른 네 멤버들은 그만큼 버텨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솔로로 자리 잡을 역량을 기르기 전, 이미 많은 팀이 데뷔했다. 계약서도 쓰지 않았던 그룹 시절 번 돈은 당연히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이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시절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무대에서 끌어내려지자마자, 인생의 무게를 실감해야 했다. 

그들이 해체 뒤 불행하기만 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MBC [무한도전]이 젝스키스의 재결성 과정을 보여주는 사이 드러나듯,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요즘 데뷔했다면, 굴곡이 더해진 지난 20여 년간의 삶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갔을지도 모른다. 경쟁할 팀이 많아진 만큼 회사에서는 더 투자를 하며 데뷔를 준비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공하면 해외 진출과 함께 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빅뱅처럼 결성 10년째에도 톱스타 자리를 유지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요즘의 성공한 아이돌은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며 30대를 준비한다. 반면 1990년대 데뷔한 아이돌 그룹들은 절정을 지나는 순간 해체됐고, 대부분 스포트라이트에서 빠르게 밀려났다. 그들은 그 시절 팬들에게 빛나는 판타지를 선사했지만,  그 후에는 이재진이 말한 것처럼 “먹고살기 바빴”다. 역량 문제라고만 하기엔, 준비조차 할 틈도 없었다. 

“젝키에게는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팬들에게는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절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 ‘토토가 2 젝스키스’.” [무한도전]이 젝스키스 게릴라 공연을 열며 단 자막이다. 분명히 그들은 화려했고, 팬들은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화려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시절이 지나서는 아니다. 결국 해체 당하지 않은 신화는 데뷔 18년째인 지금도 화려하다. 젝스키스는 화려했던 순간에도 멤버들은 지쳐 있었고, 열정적이었던 팬들은 젝스키스가 무대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해체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점에서 젝스키스의 공연은 단지 추억의 재생일 수는 없다. 이것은 16년 동안 꼬인 매듭을 푸는 일이기도 하다. 그 대단했다는 젝스키스의 장수원이 지금은 연예인 활동과 가게 운영을 병행하며 영수증을 챙긴다. 보기 안쓰럽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것을 단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그들은 반짝거렸고,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도, 반짝거림을 이어갈 수 있는 보호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 그렇게 화려하고 열정적이었던 한 세대는 왜 계속 반짝일 수 없었을까. 단지 더 이상 젊지 않기 때문일까. 이제는 지난 일이기에 모두 추억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 추억이 우리의 지난 날은 아름다웠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김재덕은 H.O.T.의 토니안과 함께 기획사에서 신인 관리와 트레이닝을 맡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회사의 연습생들에게 자신이 가수이던 시절처럼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겉보기 보다 훨씬 다사다난했던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젝스키스가 다시 무대에 올라온 바로 지금에야 할 수 있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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