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상처 씻어줄 '가정' 절실한데.. 위탁부모 찾기 힘들어
[동아일보]
《 아이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잔뜩 날카로워진 새끼 고양이 같았다. 세 살이었지만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옆에 가면 괴성을 지르며 물건을 마구 던졌다. 2009년 9월부터 성민이(가명·10)를 위탁해 키우고 있는 신숙희 씨(59·여)는 아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우연히 방송을 통해 ‘일반가정위탁’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신 씨 부부는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하고 교육을 받았다. ‘천방지축 남자애를 둘이나 키운 노하우가 있으니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성민이를 선택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후 조부모와 친인척의 집을 전전한 성민이는 제대로 된 돌봄 없이 방치돼 왔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마음의 문을 꼭 닫았다. 》
2009년부터 성민이(가운데)를 위탁받아 키워온 신숙희 씨(오른쪽)는 “성민이 덕분에 우울증 없이 사랑이 가득한 갱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50, 60대가 위탁부모로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민이 왼쪽은 신 씨의 첫아들인 오정표씨.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제공 |
○ 7.2%에 불과한 일반위탁가정
전문가들은 “학대받은 아동은 혈연관계가 없는 모범적 가정이 자발적으로 일정 기간 맡아서 기르는 ‘일반가정위탁’과 연결하는 게 좋다”며 “학대받은 아이가 조부모에게 맡겨지면 또다시 학대받는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되는 실정이니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영미권 국가에서는 부모의 학대를 받은 아이는 18∼22개월 정도 위탁 가정에 맡겨진다. 정부 역시 3월 29일 발표한 ‘아동 학대 방지 대책’에서 “일반가정위탁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3년 시작된 가정 위탁 제도는 학대, 방임, 질병, 빈곤, 장애 등으로 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없을 때 위탁 가정이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 양육하는 아동 복지 서비스다. 유형은 △조부모 △조부모 제외한 친인척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인에 의한 양육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보통 일반인에 의한 양육을 ‘일반가정위탁’이라고 부른다.
2014년 기준 일반가정위탁을 하는 가정은 791가구로 전체 위탁 가정(1만42가구)의 7.2%에 불과하다. 즉 가정 위탁이 여전히 조부모와 친인척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혈연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미친 영향이 크다. 하지만 2003년(435가구)에 비해서는 2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등 일반가정위탁에 대한 관심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 소득 높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앞장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에 따르면, 일반위탁가정은 주 양육자의 연령이 50∼59세가 46.0%로 가장 많았고 40∼49세(30.3%), 60∼69세(13.4%) 순으로 나타났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38.9%), 대학교(36.1%), 대학원 이상(9.8%) 순(재학, 중퇴, 졸업 포함)이고, 월 소득 역시 300만 원 이상(33.0%)이 가장 많았다. 학력은 중간 이상, 소득 수준은 고르게 분포해 있었다.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친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50대에 위탁 아동을 양육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가정위탁 참여자의 절반가량(47.2%)은 참여 동기로 ‘사회적 이타심 실현’이라고 답했다. 조부모와 친인척은 각각 54.4%와 51.5%가 ‘혈연관계로 인해’라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위탁 기간은 아이와 친부모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친부모가 경제적, 정서적으로 아이를 키울 처지가 되면 1, 2년 내에 위탁을 끝내고 아이를 돌려보내기도 했고, 앞선 신 씨의 사례처럼 5년 이상, 또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 비혈연, 전문성 가진 위탁 부모가 학대 아동 맡아야
정필현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관장은 “학대 피해나 장애가 있는 아동은 조부모나 친인척이 아닌 일반가정위탁, 특히 관련 전문성을 가진 위탁 부모에 의한 양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복지부는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의료인, 교사,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등 관련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문가정위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제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할지, 위탁 부모가 된 후 양육에 대한 학습 지원을 어떻게 할지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내년에 관련 시범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아동 1명당 월 15만 원에 불과한 양육 보조금을 현실화하고 아동의 연령과 특성에 따라 차별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실제로 양육 보조금(월 기준)은 미국(71만∼177만 원)이나 호주(61만∼314만 원), 영국(92만∼161만 원), 일본(108만∼160만 원)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와 함께 일반가정위탁 부모들의 자조 모임을 활성화해서 이 제도의 장점을 홍보하고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김준회 서울기독대학교 교수는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했고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 부부가 일반가정위탁에 참여해 상처 받은 아이를 보호해 주면 아이뿐 아니라 부부 관계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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