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부인 강주은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아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전민희.김경록 2016. 5. 4.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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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지?” 지난 1일 아들 유진이와 서소문로를 산책하던 강주은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며 장난을 치고 있다.
첫째 아들 유성이가 태어난 해 크리스마 스에 강주은이 한국을 찾은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집 앞마당에서 최민수와 두 아들. 당시 유성이는 초등학교 2학년, 유진이는 네 살이었다.
강주은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 196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모습.
유성이가 여섯 살, 유진이가 한 살 때 모습. 명절을 맞아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두 사람.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찍은 가족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성·유진·최민수·강주은. 터프가이 최민수도 집에서는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아내에게 찍 소리 못하는 착한 남편이다. 또 아들 말이라면 껌뻑 죽는 ‘아들 바보’ 아빠다.
강주은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 주로 그가 썼지만 중간중간 최민수에게 의견을 물어 완성했다. 두 아들이 인생을 살면서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마음과 가슴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 사람과 경험과 도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좋은 시간뿐 아니라 힘든 시간도 다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경험을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라. 그러면 하나님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최고의 유산] 최민수 부인 강주은의 자녀교육법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너무 영광이에요.” 방송인 강주은(46)이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캐나다 대사관 주최 만찬 행사에서였다. 인터뷰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5분 사이 ‘고맙다’는 말을 다섯 번도 넘게 했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 대학생 때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다. 우연한 기회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간 게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놨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모장(家母長)이 됐다. 방송에서 그는 대한민국 대표 터프가이 최민수를 돈 못 버는 실업자라고 무시하는 것은 물론, 설거지·운전 등에 마구 부려 먹으며 “저리 꺼져”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덕분에 카리스맘·깡주은·갑주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다. 두 아들 유성(20)·유진(15)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자녀 교육법도 인기다.

“엄만 무조건 네 편” 첫째는 성적도 안 봐
낙제한 둘째도 몰아세우지 않고 대화로
남편 구설수 땐 긍정의 힘으로 가족 지켜

누구나 로또 같은 대단한 기회 바라지만
진짜 기회, 시련 속에 숨어 있을지 몰라요
자녀에게 스스로 헤쳐 나갈 힘 키워줘야

최민수와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

그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다. 그의 아버지는 덴마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 화학 회사에 취직하면서 토론토에 정착했다. 한국인으로는 40번째였다. 그의 어머니는 성심여대(현 가톨릭대) 1회 졸업생으로 아버지가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물렀을 때 운명처럼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그의 러브스토리도 이와 꼭 닮았다. 캐나다에서 쭉 살다가 한국에 잠깐 왔을 때 최민수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결혼 과정뿐 아니다. 자녀 교육 방식도 비슷한 점이 많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있잖아요. 저는 여섯 살 때 그걸 알았대요. 가을에 부모님과 단풍 구경하러 차를 타고 산을 지나갈 때였는데, 제가 부모님에게 ‘저 숲이 멀리서 보면 정말 아름다운데, 저기 안에 들어가면 흙도 있고, 벌레도 있어서 지저분한 거 아느냐.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고 했대요.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에요.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조숙했나 봐요.”

그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컸다. 그의 부모님은 항상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했고,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부부 싸움을 할 때 중재자 역할도 늘 그의 몫이었다. “인간관계에서는 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죠.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도 없고,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싫었어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죠.” 그런 그에게 부모들은 한 번도 ‘어린 게 뭘 알아’ ‘어른들 일에 왜 끼어들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그의 얘기에 귀 기울였고, 그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그가 그의 두 아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건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또 잔소리는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니가 조금 완벽주의자라 아버지의 상황을 컨트롤 하려는 면이 있었어요. 쉽게 말하면 잔소리를 좀 하셨죠. 예를 들어 아버지가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하면 어머니는 ‘왜 주말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느냐’고 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됐는데 말이죠. 어머니의 잔소리가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드는 걸 보면서 결심했어요.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절대로 잔소리하지 말자’고요.”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그의 부모는 그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기보다 먼저 모범을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했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부모님 지인 중에 부동산과 주식으로 큰돈을 번 후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진 가족이 있었다. 이사 간 후 전화 받는 친구 어머니 목소리가 냉랭해져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았다. 가족끼리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그 집이 갑자기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등을 돌린 뒤였다. “부모님도 서운한 게 많았을 텐데 집에 찾아온 그분들을 예전과 변함없이 따뜻하게 대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니고, 겸손해야 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는 걸요.”

여덟 살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급할 때만 쓰라고 비상금으로 준 2달러를 준비물 살 돈이 부족한 친구에게 줘 버린 거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일이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됐고, 혼날 각오를 하고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아버지는 저를 나무라는 대신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요.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습관도 생겼다. 부모님이 다툼이 자신의 힘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때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고, 그럴 때마다 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하는 기도와 조금 달랐다. 대부분은 힘들 때 “도와주세요”라고 빌지만 그의 기도는 “감사합니다”로 시작했다. 하나님에게 가장 먼저 배달되는 기도가 ‘감사기도’라는 걸 교회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상황이 싫지만 하나님께서 언젠가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 일이 해결될 걸 생각하니 감사합니다’라는 식이었다. 이런 습관은 그를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로 만들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이 발휘됐다. 2008년 4월 최민수가 노인 폭행 사건에 휘말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당시 가족이 받은 고통은 상상할 수 없다. 남편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믿기에 그런 상황을 만든 게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때도 감사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그가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련을 주는 거라 생각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감사기도가 통한 거라고 생각해요.”

갓난아기도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

그가 부모에게 받은 존중·감사·겸손의 가치는 그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도 아이들을 늘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대학생·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물론, 말도 통하지 않던 갓난아기 때부터 한 인격체로 대했다. “한번은 유성이가 자신의 육아 비디오를 보고 신기해했어요. 갓난아기일 때나 지금이나 제 말투가 똑같다고요. 사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늘 제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존중하고 타협하려고 했거든요. 아이가 비행기에서 떼쓰고 울어도 기내 화장실로 데려가 나지막이 말했어요. ‘지금 밖에서 울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야. 여기서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해’라고요. 그리고 울음 그칠 때까지 같이 기다렸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둘째 유진이가 시험에서 F(낙제)를 받았을 때도 아이를 혼내기보다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화를 내기 전에 아이를 소파에 앉혀놓고 그런 성적을 받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대화의 핵심은 ‘얼마 전까지 별문제 없다고 한 게 거짓말인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지’ ‘숙제를 제날짜에 제출하지 않았는지’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일관된 목소리와 톤으로 대화를 나눴다.

-성적에 신경 쓰는 거 보면 교육열이 높은 것 같다.

“전혀.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애들이 아니다. 학원 한 번 보낸 적이 없다. 아이들답게 자라고 학교생활 즐겁게 하면 그걸로 만족했다. 사실 첫째 때는 성적을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다. 부모가 인터넷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전교에서 유일하게 성적 확인을 안 한 엄마였다. 아이가 ‘내 점수 좀 봐 달라’고 성적표를 가져와도 ‘이건 네가 해낸 거다. 너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괜찮다면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다’라고 말하고 안 볼 정도였다.”

-이번에는 왜 관심을 가졌나.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지 않을까 그게 우려됐다. 만약에 아이가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면 학교 다니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했고, 실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다.”

-그럼 대입에도 전혀 신경 안 쓰나.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공부를 잘하려는 스스로의 의지다. 누군가 나한테 뭔가를 억지로 강요하면 내 인생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평생 행복하게 할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외동딸로 자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님의 바람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다른 길을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이후 자기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두 아들에게는 그런 자유를 주고 싶다.”

-의사의 꿈은 언제 접었나.

“원래 캐나다에서 생물학과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독특한 스펙 쌓으려고 미스코리아 대회 나갔다가 남편을 만나면서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토론토를 떠나서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느덧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22년째다. 부모님이 나를 강하게 키워주지 않았으면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기 더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유성이가 토론토대 정치학과 2학년이다.

“기대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한 번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다. 고3 2학기 때도 공부보다 졸업연극에 더 열중했다. 셰익스피어 대본 700줄을 몽땅 외워야 했는데, 연극 연습하는 유성이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성이도 걱정됐는지 ‘대학 못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더라. 커뮤니티칼리지(2년제 대학)도 괜찮다고 했다. 아직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걸 찾지 못한 상황이니 지금 당장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유성이는 늘 ‘다른 애들은 대입 준비하느라 새벽 3~4시에 자는데, 자신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고맙다’는 말을 참 자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다.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한순간에 막대한 부를 누리거나 국내 최고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늘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차려준 아침밥을 먹은 후에도 꼭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 존중하고, 항상 겸손한 것. 이 세 가지만 잘 갖추고 있으면 어떤 일도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 중 하나다.”

-또 다른 건 뭔가.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힘을 키워줘야 한다. 인생이라는 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이게 끝인가’하고 장애물을 하나 넘으면 더 큰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눈앞의 시련을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헤쳐나갈 용기를 키워줘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의 역경을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최선은 아니다. 아이들은 벽에 부딪히고 실수하면서 한 단계씩 성장한다. 한계를 뛰어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음도 얻고,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회가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예전의 위기가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타가 되거나 복권당첨 같은 대단한 기회를 기다리지만, 진짜 기회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짧은 순간이나 시련 속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게 재산이 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강주은 프로필

1970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
80년 게이트웨이 초등학교 졸업
84년 성바바라 가톨릭 중학교 졸업
89년 카디널 뉴먼 고등학교 졸업
9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캐나다 진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생물학과 졸업
94년 배우 최민수와 결혼
2003~2009년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개발이사
2005년~현재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교육위원회 공동의장
2007년~현재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이사회 이사
2010~2014년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마케팅개발이사
2015년~현재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 부총감

○ 인생의 롤모델: 부모님
○ 내 인생을 바꾼 책: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부담 때문에 두려워하던 나에게 인생이 뭔지 알려준 책이다. 남녀·부부·자녀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 좌우명: 겸손함이 자신의 자존심이 되게 하라.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최고의 유산]
▶백일 때부터 책 읽어주니, 나중엔 아이 혼자 수천 권 읽더군요
▶돈만 벌다 사라질 건가, 선한 빛을 남기고 갈 건가
▶장학 사업하며 행복하다던 아버지, 나눔이 최고의 가치
▶나눔이 축복이라던 어머니, 세상 살리는 디자인하는 아들
▶서울대 나온다고 행복할까, 자녀에게 자유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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