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입니다" 한마디로 신원확인 통과? 결혼정보업체 '고스펙 모시기' 과열

입력 2016. 5. 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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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의대를 나오셨군요.”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다는 말에 수화기 너머 상담직원은 더이상의 신원 확인은 필요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대신 ‘전문직’을 위한 ‘특별만남 코스’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상담직원은 “어리고 예쁜 여성을 원하느냐, 아니면 스펙이나 집안을 더 보는 편이냐”는 노골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가입비가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는 “전문직이니 무료도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신랑감 및 신붓감을 찾기 위해 결혼정보업체를 이용하는 젊은 남녀가 늘면서 업체들의 회원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가입 대상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회원으로 받아들여 물의를 빚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명 결혼정보업체 5곳에 ‘사립대 의대를 졸업한 30세 남성 공중보건의’로 가장해 전화로 가입을 의뢰해본 결과 5곳 모두 신원확인 절차가 부실했다. 특히 3곳은 재직증명서나 주민등록증을 직접 제출하지 않아도 가입이 가능했다. A업체 상담직원은 “서류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뒤 문자메시지로 보내도 된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돼 서류 사진을 보내기가 꺼려진다고 하자 B업체는 “중요 정보는 적당히 가린 뒤 보내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가입비도 제각각이었다. 일부 업체는 ‘전문직’만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어떤 여성을 원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다르니 일단 가입한 뒤 상담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결혼정보업체들이 이처럼 전문직 회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직업이나 재산 정도, 부모의 재력 같은 ‘스펙’이 좋은 회원이 많을수록 영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잘못된 관념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업체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명부로 회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외국계 회사 직원 이모 씨(33)는 최근 “우수 고객의 자녀에게 중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입 권유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서 단지 부모의 은행 예치금이 많다는 이유로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아니냐”며 황당해했다.

허술한 신원 확인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여성에게 재벌 3세를 사칭해 2억여 원을 뜯어낸 남성을 구속했다. 이 남성은 가입 시 조작한 재직증명서를 제출했지만 피해자가 고소장을 내기 전까지 업체는 조작 여부를 알지 못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결혼정보업체의 잘못된 회원 정보 제공에 따른 피해구제요청이 꾸준히 들어온다”며 “현행법은 업체의 거짓 정보 제공을 금지하지만 현실적으로 업체들이 개인 신상을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소비자의 주의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남준기자 kimgija@donga.com·박창규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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