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어쩌면]대통령님 초심을 지키세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2016. 5. 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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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떤 어머니는 그게 아기에게 좋은 줄 알고 열심히 가습기를 틀어줬다고 한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대통령께서 요즘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서였다. 원래 대통령께서는 이런 분이 아니었다. 재정적자가 누적돼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육박해도 재벌과 부자들을 지키겠다며 세금을 올리지 않으셨다. “이런 교과서로 배우면 혼이 이상해진다”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분이 갑자기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의외다. 게다가 그 사건이 당신의 임기 때도 아닌, 무려 5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도 대통령답지 않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평소 지론처럼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나태하게 쉬는 것보다 시간을 아껴 일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실 분이다.

박 대통령의 지표라 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하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5월5일이 쉬는 날이니 6일은 두 배로 일하도록 퇴근시간도 자정 쯤으로 미루는 게 이치에 맞을 텐데, 그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4일 연휴를 만들어 버린 건 대통령이 변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난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국민들에게 3일 연휴를 선물한 바 있지만, 그거야 더운 여름날이니 전혀 납득이 안 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5월 초인 데다 날씨가 시원해 마구 일이 하고 싶어지는 시기인데 임시공휴일이 웬 말인가?

최근 이란을 방문할 때 착용한 히잡도 논란이 됐다. 히잡이 여성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란한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해당 국가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곤 하지만 대통령이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프리카에 간다고 해서 벗고 가실 건 아니지 않은가.

추측하건대 대통령이 변한 건 지난달 치러진 총선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얻어 부녀가 개헌하는 값진 기록도 세울 법했지만, 결과는 과반수는 고사하고 제1당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선거에 초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 잘하고 있는 장관들을 데려다 총선에 내보냈고, 빨간 옷을 입고 격전지를 둘러보는 등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 전날까지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느라 애썼다. 그래도 불안해서 선거 직전 탈북자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거기에 자신이 배신자라고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기까지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들이 자신을 심판한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대통령으로서는 기운이 없을 수밖에 없다. 선거 2주가 지난 뒤 “양당체제인 국회가 하는 일이 없어 국민이 국회를 심판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낼 때의 심경은 실로 비참했으리라. 그 내용을 기사로 보면서 난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유권자들을 살짝 원망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원인이 국민들에게 있는 만큼 우리가 대통령에게 좀 잘해야 한다. 지지하던 분들은 계속 지지하고, 반대하던 분들도 ‘그만하면 됐다’는 마음을 갖자. 안 그래도 선거 패배로 마음 아파하는 대통령이 “지지율 31%로 급락” 같은 기사를 본다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두 번째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분들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역대 정부 중 현 정부만큼 아랫사람들이 개인적인 일탈을 저지른 정부는 없었다.

예컨대 2013년 청와대 행정관이던 조모씨는 당시 검찰총장 아들의 인적사항을 열람해줄 것을 지시했는데, 이건 대통령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인 일탈로 밝혀졌다. 2014년 터진 비선실세 의혹도 사심을 가진 몇몇 개인의 일탈이었다. 이번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사건 역시 허모 행정관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보필해야 할 이들의 일탈은 그 자체가 대통령에게 큰 타격이다. 어버이연합도 문제가 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청와대 허 행정관이 이렇게 지시했지만 우리는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으신 거 아닌가. 대통령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충성이라는 건 몸만 가지고는 안되는 법이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박 대통령이 쓰신 저서다. 이 책 제목처럼 대통령이 빨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길 빈다. 그래야 우리가 정권교체의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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