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행령 손대 '親기업'으로 역주행.. 공정위 "규제 완화用"

세종=이성규 기자 2016. 5. 3.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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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초안 마련..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 추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친기업적’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민주화 주무부처로서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지적과 함께 법은 놔두고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시행령만 개정하려는 처사도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달 중순 김학현 부위원장 주재로 제도합리화 추진회의를 열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초안에는 공정거래법상 일반 불공정행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 등 공정위 핵심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선 시행령상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및 기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거나 ‘부당하게’로 변경했다. 일반적인 뉘앙스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두 문구가 함축하고 있는 법률상 차이는 크다. 법무법인 바로법률 김민호 변호사는 “‘부당하게’는 불법·위법한 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이 공정위에 있는 반면, ‘정당한 이유 없이’는 불법·위법한 행위를 면책받기 위해 기업체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정당한 이유 없이’란 문구가 시행령에서 사라진다면 불공정행위 적발 시 공정위에 모든 입증 책임이 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정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불공정행위를 공정위가 불법·위법행위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공정위는 시행령상 거래상 지위남용행위에 대해서도 행위 유형을 보다 엄격히 했다. 한 예로 구입 강제 행위를 구체화했다. 지금까지는 구입 강제 행위가 있는지만 입증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이 행위가 정상적 거래질서를 저해했는지를 또 한번 따져야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 관련 시행령에 규정된 ‘다른’ ‘새로운’ ‘기존’으로 분류된 사업자 객체를 ‘다른’으로 통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공정거래법에는 사업자 객체가 3가지로 분류된 상황에서 시행령만 고칠 경우 법과 시행령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공정위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위 안팎에서는 공정거래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시행령 주요 내용을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의 핵심 가치인 공정거래 저해성 판단을 뒤로 제쳐두고 행위의 결과만을 따지는 경쟁제한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고려대 법학대학원 이황 교수는 “전경련 등 경제단체의 건의도 없이 문제없이 이뤄지는 시행령을 굳이 공정위가 나서서 고쳐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곽세붕 경쟁정책국장은 “논의 중인 것은 맞지만 아직 구체적인 추진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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