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교육 <중>] '월화수목금금금'.. 공부시간만 쑥쑥, 능률은 뚝뚝

이용상 기자 2016. 5. 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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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쉼 없이는 미래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서울 중계동의 한 도서관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달력에 일요일을 빨갛게 표시해 놓은 건 이날이 쉬는 날, 즉 휴일(休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주 동안 고생했으니 이날만큼은 쉬라고 정해놓은 휴일마저도 쉬지 못하는 학생들이 한국엔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 같은 ‘월화수목금금금’ 강행군이 학업성취도 향상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일만이라도 아이들이 학원에 내몰리지 않도록 ‘학원 휴일휴무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도 인정한 한국 교육의 이면=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3년마다 60∼70개국의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읽기(언어)·과학·문제 해결력을 측정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실시한다. 일종의 ‘공부 올림픽’인데 한국은 거의 1, 2위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고생들의 ‘학습효율화지수’는 OECD 30개 회원국 중 24위에 불과하다. 학습효율화지수란 PISA 점수를 평균 학습시간으로 나눈 수치다.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에 비해 성적이 저조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주당 공부시간은 69시간30분으로 1위 핀란드(38시간28분)보다 30시간 이상 많았다. 학교 정규 수업시간을 제외한 개인 공부시간만 비교해 봐도 한국 학생들(주당 19시간30분)은 핀란드 학생들(8시간28분)보다 배 이상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저조한 학습효율화지수로도 PISA에서 매번 최상위권을 기록한다는 건 그만큼 ‘쉴 새 없이’ 공부에만 내몰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20년 경력의 중학교 사회교사 권재원(47·교육학 박사)씨는 2000∼2012년 PISA 결과를 분석해 지난해 6월 발간한 저서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우리 학생들이 PISA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우수한 학업 성취의 그림자에 가린 우리 교육의 오래된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생들의 주말 공부시간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중·고교 학생의 주말 공부시간은 5년 전인 2009년에 비해 중학생은 42분, 고등학생은 30분 늘었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일주일에 하루 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기독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이 2014년 전국 중·고 학생 11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일요일 학원운영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4%(매우 필요하다 59.1%, 필요하다 26.3%)가 일주일 중 하루는 공부 대신 휴식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종민 경기도 여주교육지원청 교육장은 “학교를 의미하는 스쿨(school)은 ‘여유’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서 비롯됐다”며 “학교는 여유를 가지고 사색하는 곳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학교는 많은 학습량을 주입식으로 가르침으로써 오히려 흥미, 자기주도 학습능력, 창의성을 잃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여백의 미를 살릴 줄 모르는 시스템”이라며 “이제는 ‘더 많이’가 아니라 ‘다르게’ ‘더 효과적으로’를 통해 학습효율화지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쉼 없는 공부’로 인해 추락하는 학생들의 흥미와 의욕은 학습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오히려 적절한 휴식이 공부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소아정신과 전문의)은 “쉬어야 두뇌가 발달할 수 있다. 양적으로 밀어붙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한다”며 “쉼을 통해 ‘리셋’을 해야 힘을 받고 열심히 공부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휴일엔 아예 학원 문 닫자”=전문가들은 쉼 없는 교육이 학생들의 정서에도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학원이나 도서관에만 매여 있는데도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 경우 학생은 실망감을 넘어서 자존감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은 “학업 압박이 큰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들은 공부에 더 집중하기 어려워진다”며 “마음이 힘들고 불안한데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복통이나 설사 등 ‘신체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재원 비유와상징 행복한공부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라는 책에서 “학원엔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마음의 상처와 압박감만 받고 돌아서는 ‘들러리 학생’이 많다”며 “이들에겐 공부에 대한 기본적 의욕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성적도 오를 리 없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휴일엔 아예 학원이 문을 열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좋은교사운동 등 교육단체들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학원 휴일휴무제’ 법제화를 주장했다. 일요일을 학원 의무휴강일로 지정하고 위반 땐 교습 정지 등 행정처분을 하도록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쉼이 없는 공부는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고 정서를 빈곤하게 하는 데다 정작 공부 자체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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