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통 12년 달았는데.. 10초 고개숙였다

이미지 기자 입력 2016. 5. 3. 03:07 수정 2016. 5. 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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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침묵하던 옥시 대표, 검찰 수사 조여오자 사과 유족들 "한국 떠나라" 반발 - "보상안 준비하느라 늦어" 변명 기금 100억원 마련하고 1·2등급 피해자 별도 보상 구체적인 기준은 안 밝혀

2일 오전 11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의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기자회견장이 잠시 술렁이나 했더니 산소통에 연결된 호스를 코에 꽂은 소년이 옥시 한국지사(옥시 레킷벤키저)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 앞으로 다가섰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돌 지난 2004년부터 12년째 산소호흡기 도움을 받고 있는 임성준(13)군이었다.

임군의 어머니 권미애(40)씨가 따지듯 물었다. "우리 아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요? 학교에 가서 공놀이하는 거예요." 임군과 함께 온 피해자 유족 10여명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년간 100번이 넘게 전화를 해도 만나주지 않더니…. 우리에겐 연락조차 주지 않고 무슨 사과 기자회견이냐."

단상에 선 사프달 대표는 "저도 아빠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또 피해자들 앞에서 사프달 대표가 고개를 숙인 건 10초가 조금 넘는 듯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제조·판매된 지 15년 만에, 살균제가 '폐손상 괴질'의 원인이란 게 드러난 지 5년 만에 옥시 측이 공개적으로 한 '사과'였다.

옥시 기자회견의 핵심은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본 사람들 중 정부가 1·2등급(가습기 피해 거의 확실·가능성 높음)으로 분류한 사람들에게 따로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1·2등급 피해자는 221명이며, 이 중 일부는 옥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프달 대표는 구체적 보상 방안은 밝히지 않으면서 "7월까지 보상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서 1·2등급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어 "(1·2등급보다 피해 정도가 낮은) 3·4등급 피해자들을 위해 100억원의 기금을 내겠다"고 했다. 앞서 옥시는 지난달 말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입장 자료를 보냈다가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샀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들고 소비자 불매 운동이 거세지자 보상 액수를 늘리는 방안을 들고 나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사프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완벽한 보상안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 그동안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았느냐'는 질문엔 답변을 회피했다. 이 문제는 옥시에 대한 형사처벌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 옥시는 '사과 기자회견'을 했지만, 피해자들 마음은 돌리지 못했다. 최승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표는 "옥시는 (한국에서) 자진 철수하고 폐업하라"고 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옥시는 "여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은 이들이 공평하게 지원받아야 하니 다른 제조·판매사들이 보상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상 절차는 국내 기업들이 먼저 시작했는데 기가 막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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