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식] "인사동, 너마저".. 고개 떨군 한식당

2016. 5. 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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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인사동서도 맥 못 추는 한식 / 손님 줄어 임대료 감당 못해.. 대기업 한식집 진출로 '설상가상'
“한식이요? 비싸기만 하죠….”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은 내·외국인 관광객들로 온종일 북적였다. 경기 성남시에서 온 정명옥(54·여)씨 일행 역시 ‘전통문화거리’에서 각종 공예품을 둘러보며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씨 일행은 식사 때가 되자 종로3가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씨는 “(한식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모처럼 외출했는데 밖에서까지 한식을 먹고 싶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식당이 위기에 놓인 것은 ‘전통문화의 메카’인 인사동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지역 한식당 업주들은 “죽을 맛”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최근 손님이 크게 준 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원성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한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화가 산업 활성화의 돌파구”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인사동 분위기는 그런 인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였다.
휴일인 1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외곽 골목에 밀집해 있는 한식당들. 이곳 한식당 관계자들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이 40% 이상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문 기자
◆“인사동, 너마저”… 고개 떨군 한식당

2일 취재팀이 사단법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의 ‘인사동 문화지구 지도’를 분석한 결과 2012년 80곳이던 한식당 중 21곳이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주 요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식 업계 한 인사는 “규모가 있는 인사동 한식당 임대료는 월 2000만원 내외”라며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이후 손님이 크게 줄어 임대료를 대기에도 버거운 상황에 빠졌고 재료비와 인건비가 크게 올라 체감상 매출은 2년 전에 비해 4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인사동 한식 상권의 현주소는 부동산 거래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억대 권리금을 포기한 매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종로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최모(57)씨는 “작년에 U한식당이 1억원 선이던 권리금을 서서히 내리다가 결국 권리금 없이 매물을 매도했다”며 “그 자리에 들어온 한우고깃집도 인테리어 비용만 2억원을 썼는데 6개월 만에 자리를 뺐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인사는 “과거 30년 이상 ‘회장님’들이 찾던 유명한 K한식당도 지난해 매물로 나온 이후 9개월 넘도록 주인을 찾지 못하다 겨우 다른 한식당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고 귀띔했다. C한식당에서 근무하는 박모(36)씨는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된 곳들조차 힘들다고 아우성”이라며 “한식에 대한 외면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국인들도 한식당에 가기가 꺼려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패나흐(24)는 “한식당에 가서 음식 먹는 방법을 안내받아 본 적이 없다”며 “처음 칼국수를 먹었을 땐 국물을 버리고 스파게티처럼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 유학생 사카마키 요시카(25·여)는 “한식당은 ‘비싸다’는 이미지 때문에 가기가 망설여진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고객이 줄면서 일부 한식당은 가이드에게 외국 손님 1명당 1500원씩 주면서 호객 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계절밥상’ 같은 대기업 한식 프랜차이즈가 골목 상권에 입점하면서 주변 한식당의 한숨은 더 커졌다.

서울시는 관련 조례를 통해 ‘인사동에서 프랜차이즈 점포는 전반적으로 금지한다’고 규정했지만, 2013년 계절밥상이 ‘한식 프랜차이즈는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으면서 인사동으로 진출했다. 유명 한식당인 ‘인사동 그집’ 정모(45·여) 실장은 “점포의 자리며 비용, 마케팅 등 체급부터 상대가 되지 않아 매출에 타격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낮은 문턱에 경쟁은 치열한데… 서비스는 ‘글쎄’

인사동이 주로 국내 한정식당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고깃집·국밥집 등 일품 음식점을 포함한 한식업계 전반은 퇴직자의 창업 열풍 등 탓에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4년간 한식 업계에 몸담았던 김모(60·여)씨는 2014년 종로를 마지막으로 식당 경영에서 손을 뗐다. 김씨는 손목 등 업무상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인건비 부담에 사람을 쓰지 못하다 결국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물가가 올라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가격을 올릴 수 없었다”며 “영세식당은 대부분 인건비만 남기자는 생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출혈 경쟁의 이유로 한식의 ‘쉬운 접근성’을 꼽았다. 한국학대학원 주영하 교수(민속학)는 “한식은 외국 음식처럼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은 ‘일상식’”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가 쏟아지면서 한식당이 대폭 증가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시내 한식음식점은 5만4518곳이나 됐다. 한식음식점은 2012년 3만9196곳, 2013년 4만1881곳, 2014년 4만7435곳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서울시가 카드가맹점 데이터와 식품·위생업 인허가 현황 등을 토대로 추정한 것으로, 한식당뿐 아니라 일품음식점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한식당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가격에 비해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직장인 이선걸(32)씨는 “한식당에선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며 “같은 값이면 양식이 더 고급스럽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식당 ‘바달비’ 손승달(52) 대표는 “한식당 서빙 인력은 대부분이 단기 근무자이고 외국인 종사자도 크게 늘어 깊이 있는 교육을 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고 했다. 이는 외식 시장에서 한식이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 것과도 연결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상태 관광정책연구실장은 “한식은 조리시간도 길고, 노동 강도가 높은 만큼 인건비가 많이 든다”며 “하지만 대중의 인식과 심리적 저항감 때문에 그만 한 가격을 매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식 관련 콘텐츠를 발굴하는 등 음식에 가치를 더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남혜정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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