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를 사수하라" 배터리 방전 걱정에 곳곳서 '전쟁'

윤준호 기자 입력 2016. 5. 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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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불안上]휴대폰 꺼질라 너도나도 콘센트로.."점포선 손님 끄는 효과, 필수품 된 보조배터리"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스마트 불안上]휴대폰 꺼질라 너도나도 콘센트로…"점포선 손님 끄는 효과, 필수품 된 보조배터리"]

서울 당산동 한 커피숍. 콘센트가 설치된 가장자리 좌석이나 공용 평상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리가 텅 빈 모습이다./ 사진=윤준호 기자

#1 스터디 모임과 개인 공부로 커피숍을 자주 찾는 취업준비생 안수진씨(24·여). 그에게 좋은 커피숍의 기준은 저렴한 가격도, 조용한 분위기도 아니다. 바로 자리마다 콘센트가 충분한지 여부다. 먼저 콘센트 꽂을 곳이 남았는지 살펴본 후에야 음료를 주문하는 습관도 생겼다. 안씨는 "정보공유, 자료검색 등 취업준비에 필요한 일 대부분을 스마트폰 하나로 다한다"며 "중간에 폰이 방전될까 불안해 콘센트가 없는 자리엔 가급적 앉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2 외근이 잦은 직장인 오근철씨(31)에게 휴대전화 충전기와 여분 배터리는 필수품이다. 휴대전화가 꺼진 사이 혹시나 거래처에서 연락이 올까 염려돼 어딜가든 충전 가능한 콘센트부터 찾는다. 최근엔 이마저도 성에 안 차 이동식 보조배터리까지 추가로 구입했다. 오씨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50% 이하로만 떨어져도 '빨리 충전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긴다"며 "짬날 때마다 충전하는 게 일상이다. 배터리가 완충되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털어놨다.

스마트폰으로 누리는 편리함 속에서 오히려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기기가 방전될까 염려하는 이른바 '충전 노이로제' 때문이다. 콘센트를 놓고 경쟁하는 모습은 더이상 낯설지 않고, 노이로제를 떨치고자 보조배터리를 찾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현대인들의 불안감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충전 노이로제'에 콘센트 자리 '북적'=2일 시장조사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9.9%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 때 불안하다'는 대답은 전체 62.6%에 달했고, 이에 '항상 충전에 대비한다'는 응답자는 절반 가량인 50.6%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충전이 노이로제처럼 다가오면서 콘센트가 마련된 곳은 어디서나 명당이 된 모양새다. 학교나 커피숍은 물론이고 식당, 술집 심지어 기차칸에서도 콘센트 주변 자리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이같은 '충전 노이로제'는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달 초 서울 한 대학 도서관에선 콘센트가 설치된 노트북 열람실을 놓고 학생들 사이 시비가 일었다. 상당수 학생들이 노트북 대신 스마트폰 충전을 위해 해당 열람실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다. 민원 소동으로까지 이어졌던 갈등은 "요즘엔 학업에서도 노트북보다 스마트폰이 더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학생자치위원회 측 판단에 따라 모두에게 열람실을 개방하는 쪽으로 일단락됐다.

◇'콘센트'에 웃고 우는 상인들=상황이 이렇자 점포에선 콘센트 설치 여부가 매출과 직결되는 경우까지 생긴다. 서울 관악구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연모씨(52)는 올해 초 전기배선을 연장해 좌석마다 콘센트를 추가로 마련했다. 기존 80석 중 20석에 불과했던 콘센트 좌석은 공사후 60석으로 늘었다. 연씨는 "확실히 콘센트가 손님 발길을 잡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며 "콘센트 증설로 매출은 예전보다 1.5배 정도 뛰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콘센트가 적게 설치된 점포에선 고민이 깊어간다. 4년전 서울 당산동에 문을 연 B호프집엔 현재도 콘센트 꽂을 자리가 따로 없다. 개업 당시만 해도 계산대에 충전을 부탁하는 일부 손님 이외엔 콘센트 자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장인 이현우씨(43)는 "최근 1~2년새 가게 입구에서부터 콘센트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콘센트를 못 쓴다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지금이라도 돈 들여 콘센트를 뚫어야 하나'는 고민이 생긴다"고 고개를 저었다.

◇노이로제 속 '보조배터리' 존재감↑=최근엔 '충전 노이로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 이동식 보조배터리가 떠오르는 추세다. 방전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여분 배터리가 전부였던 과거 2G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판매량은 1월을 100대로 잡았을 때 10월엔 282대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G마켓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보조배터리도 덩달아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충전에 집착하는 현상이 스마트폰에 종속된 현대인들의 불안감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 중 61.5%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감'을 느끼고, 40.6%는 '스마트폰이 꺼지면 친구를 잃을 것 같다'고 답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방전 걱정에 콘센트를 찾고 보조배터리까지 추가로 구입하는 현상은 결국 스마트폰이 꺼지면 인적 관계망에서 멀어질까 염려하는 현대인들의 불안심리에서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온라인 네트워크에 많은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과도한 종속은 중독과 강박증을 낳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준호 기자 h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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