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자갈을 깔았다..사라졌던 새들이 돌아왔다

도쿄 | 김기범 기자 2016. 5. 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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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자원봉사자들과 조류 연구자들이 도쿄도 오타구 도쿄도물재생센터 옥상에 설치해놓은 검은색 원통 안에 쇠제비갈매기 새끼들이 누워 있다. 검은색 원통은 까마귀, 길고양이들로부터 쇠제비갈매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것이다.

온통 조개껍질과 모래, 자갈로 가득한 일본 도쿄도 하수처리장 옥상은 언뜻 모래사장처럼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려 만들어놓은 옥상 위 인공 모래사장에서 일찍 찾아온 50여마리의 쇠제비갈매기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하네다공항 인근 도쿄도 오타(大田)구 쇼와지마(昭和島) 모리가사키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에서 만난 ‘리틀턴(Little Tern·쇠제비갈매기) 프로젝트’의 기타무라 와타루 대표는 “이곳 인공서식지를 찾는 쇠제비갈매기 개체 수는 최대 4000여마리까지 늘어났다가 현재는 2500마리 정도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하수처리장 옥상 전체 7㏊ 가운데 새들이 6㏊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조류 연구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하필 하수처리장 옥상에 멸종위기 쇠제비갈매기의 인공서식지를 만든 까닭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쿄만 내의 하중도인 쇼와지마와 인근 도쿄항 야조공원을 관찰 중이던 한 조류 연구자가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쇠제비갈매기를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다. 90% 이상이 매립된 도쿄만의 모래사장은 쇠제비갈매기의 천국과 같은 곳이었지만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 새들은 1980년대에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본 자원봉사자들이 도쿄도 오타구 도쿄도물재생센터 옥상에 조개껍질과 자갈 등을 고르게 펼쳐 자연적인 백사장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쇠제비갈매기를 목격한 이들이 하수처리장까지 따라가 본 모습은 모두 200마리 정도가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 둥지를 튼 장면이었다. 인근 길고양이나 도쿄에 대규모로 서식하는 까마귀들의 눈에 띄면 숨을 곳이 없어 금세 새끼들이 잡아먹힐 만큼 위험천만하고, 햇빛을 피할 곳도 없는 열악한 상태였다. 당시 성체로 성장한 새끼의 수는 5마리에 불과했다. ‘이 새들을 이대로 멸종하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조류 연구자들과 시민들은 쇠제비갈매기들 자신이 찾아낸 안전한 장소인 하수처리장 옥상을 대규모 인공서식지로 만들기로 했다.

이들이 도쿄도와 오타구청에 옥상 사용허가를 요청했을 때 한 체육단체가 옥상을 축구연습장으로 쓰기 위해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다행히 사용권을 양보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약 30t 무게의 조개껍질과 모래, 자갈을 트럭에 실어다 날라 옥상에 평평하게 깔아놓는 고된 작업이 시작됐다. 최대한 자연적인 모래사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한 이 작업에는 2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천적인 고양이와 까마귀들로부터 새끼 쇠제비갈매기를 보호하기 위해 검은색 원통을 곳곳에 설치하는 아이디어도 적용됐다.

1년 후인 2002년 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조류 연구자들과 시민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려 1224마리의 쇠제비갈매기가 찾아와 둥지를 틀고, 606마리가 성체가 되어 부모의 둥지에서 독립했다. 안전한 서식지를 찾지 못해 인근 지역을 전전하던 쇠제비갈매기들이 대거 모여들었고, 그 덕에 천적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결과였다. 함께 현장을 찾은 민간연구소 자연의벗 오창길 소장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생존을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아낸 야생 조류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람의 노력이 빚어낸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도쿄도 오타구 도쿄도물재생센터 옥상에서 쇠제비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리틀턴 프로젝트 제공

제비를 닮은 갈매기인 제비갈매기류 중에서 몸길이가 20~24㎝가량으로 가장 작은 쇠제비갈매기는 호주, 동남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 후 5~6월쯤 한국, 일본, 중국, 만주 등으로 북상하는 새이다. 현재는 일본 전체에 1만마리 정도가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 소장은 “리틀턴 프로젝트의 성공은 한국 낙동강에서 쇠제비갈매기가 급감하는 사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인근 아파트나 관공서의 옥상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낙동강 하구에서는 매년 1000마리 이상의 쇠제비갈매기가 번식했지만 2013년 이후 하구를 찾는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12년 955마리에서 2013년 556마리, 2014년에는 14마리로 줄어든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상류로부터 내려오는 모래가 줄어들다 보니 모래톱이 사라지는 등 지형 변화가 일어난 것이 개체 수 감소의 주된 이유로 추정된다. 기타무라 대표는 “장소만 잘 선정해 쇠제비갈매기의 인공서식지를 조성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관심을 보였다.

리틀턴 프로젝트가 인공적인 노력을 통한 자연 복원의 대표적 사례라면 지바(千葉)현 나라시노(習志野)시 야쓰갯벌(谷津干潟)은 대규모 매립으로 파괴된 도쿄만에 생명을 부여하는 유일한 숨통 같은 곳이었다. 20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찾아간 야쓰갯벌에서는 봄철을 맞아 북상한 철새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백로 10여마리는 물고기를 잡아먹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양한 도요물떼새들도 먹이활동 중이었다. 외해와 연결된 두 개의 인공수로를 따라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가오리 대여섯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을 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달 23일 일본 지바현 나라시노시 야쓰갯벌에서 노랑부리백로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사실 야쓰갯벌은 한국 서남해안의 광대한 갯벌들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크기의 보잘것없는 갯벌이다. 도쿄 시내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인 나라시노시의 아파트 단지와 고속도로에 둘러싸인 직사각형 형태의 이 갯벌 면적은 도심공원 정도와 비슷한 0.41㎢에 불과하다. 하지만 90% 이상의 갯벌이 대규모 매립으로 사라진 도쿄만에서 야쓰갯벌은 숱한 저서생물과 이들을 먹고사는 조류들에게 마지막 남은 생명줄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인근 지역의 다른 갯벌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여서 이 갯벌로 모여드는 조류는 모두 203종에 달한다. 특히 호주에서 출발해 북반구로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야쓰갯벌은 중요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생태적 중요성 때문에 야쓰갯벌은 일본의 연안습지 가운데 유일하게 1993년 람사르조약에 따른 보호습지로 등재된 곳이자 도쿄만에서 유일하게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습지이기도 하다. 주변 지역이 모두 매립되는 와중에 이렇게 작은 공간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인근 시민, 전문가들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매립을 추진, 실시했고, 시민들은 1970년대부터 ‘지바갯벌을지키는모임’ ‘나라시노시의매립과공해를반대하는모임’ 등을 만들어 저항했다. 갯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야생 조류 조사를 실시하는 ‘지바현야조회’도 결성돼 야쓰갯벌에 대한 조류 조사도 처음으로 시작됐다. 한편으로는 저항, 다른 한편으로는 학술적 연구를 통해 얼마 남지 않은 갯벌의 중요성을 알려나간 것이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해 야쓰갯벌을 보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쇼와지마 하수처리장의 쇠제비갈매기 인공서식지와 야쓰갯벌의 공통점은 양쪽 모두 활발한 생태교육의 현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쇠제비갈매기 서식지에서는 매년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겸해 생태교육을 받고 있다. 야쓰갯벌에서는 아이와 함께 관찰센터를 찾은 부모들과 철새를 보기 위해 망원경,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야쓰갯벌을 10여차례 방문해 조사·연구해온 오 소장은 “야쓰갯벌에 대한 동화들이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일본 생태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며 “야쓰갯벌자연관찰센터 역시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운영을 맡으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쿄 |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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