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슈퍼컴도 맨눈 관측자료 없으면 무용지물

입력 2016. 5. 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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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목측의 과학

기상청 서울관측소 정보연 주무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송월동 관측소에서 대형증발계의 증발량을 측정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지역기상서비스센터(옛 대관령기상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각종 기상관측장비들이 즐비한 관측장소이다. 대관령 중턱에 자리한 이곳에는 강수량계와 기압계, 적설판 등 기본기기에서부터 폐회로텔레비전(CCTV) 적설관측기와 시정계 등 첨단장비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과학 기상관측의 현장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관측장소 맞은편의 센터 건물로 들어가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1m가 넘는 긴 자와 장화 그리고 재래시장에서나 볼 법한 저울이다. 찰스 다윈의 탐사선 비글호 선장을 지낸 로버트 피츠로이 영국 초대 기상청장이 일기도를 작성한 지 160여년, 우리나라가 근대 기상관측을 시작한 지 110여년이 지났지만 기상관측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맨눈으로 관찰하는 목측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류상범 국립기상과학원 환경기상연구과장은 “근대의 과학적 기상예보는 정밀한 기상정보의 확보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기온·바람·기압 등 일부 요소만 계측이 가능했을 뿐 나머지 기상현상들은 상당히 최근까지도 목측으로 관측해왔다”고 말했다.

일기예보 기초자료 맨눈으로 관측
구름모양·높이, 적설, 시정, 증발량 등
일기상통계표 요소 절반 이상 목측



황사, 봄꽃, 단풍 등 계절 관측도 실시
시정계·운고운량계 등 자동화 시도
레이저적설계 정확도 낮아 아직 참고만

세계 각국은 1873년 국제기상기구(현 세계기상기구·WMO)를 설립한 이래 바람, 기온, 이슬점온도, 기압, 강수량, 구름 상하층 정보, 적설 등 수십종의 관측정보를 3시간 간격으로 주고받고 있다. 이들 요소 가운데 상당부분은 기상청 유인관측소에서 근무하는 관측자가 관측장소에 나가 맨눈으로 관찰하거나 직접 측정한 정보들이다. 관측자는 1시간 간격으로 기온에서부터 강수량, 시정, 구름양·높이·모양, 적설 등 80~90여가지의 값을 관측해 ‘일기상통계표’에 기입한다. 이들 가운데 50여가지는 기기 관측이 아닌 맨눈 관측을 한다. 통계표 하단에는 ‘기사란’이 있어 서리·얼음·무지개 같은 기상현상에서부터 황사, 봄꽃, 단풍 등 계절에 따른 기상 관련 정보들도 관측해 서술해야 한다. 기상청에는 현재 22개 유인관측소에서 88명의 관측자들이 4교대로 관측활동을 하고 있다.

관측자들은 1시간마다 관측장소로 나가 우선 시정부터 살핀다. 관측소마다 주변 건물이나 산을 동심원상에 그려넣은 시정목표도가 있어 이를 참고하고 목표물의 선명도, 색조, 안개 농도 등을 참작해 시정거리를 결정한다. 유재억 기상청 관측정책과 주무관은 “현재 시정계를 261대 설치해 운용하고 있지만 시정계는 제한된 범위의 공간 정보를 분석해 전체 시정을 환산하는 것이어서, 시정계 값보다는 하루 24번씩 한 목표물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잘 훈련된 관측자의 시정감이 훨씬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정계는 레이저빔을 45도 각도로 쏘아 전방에서 산란된 에너지를 측정해 공간에 있는 안개나 먼지 등의 양을 추정해 시정을 계산해낸다.

구름의 경우 10개로 분류된 구름모양(운형), 지상에서부터 구름 밑면까지 높이(운고),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의 양(운량) 등을 눈으로 관측하고 있다. 기상청은 현재 운고·운량계를 92대 설치해 유인관측과 병행하고 있지만, 관측값은 사람이 눈으로 확인한 것만 사용한다. 운고·운량계는 시정계와 달리 파장이 다른 레이저빔을 수직 방향으로 쏘아 후방으로 산란한 에너지를 측정해 구름양과 높이를 분석한다. 임은하 기상과학원 관측기반연구과장은 “지난해 대전지역에서 수집한 1년 동안의 목측 자료와 운고계 값을 비교해보니 비슷한 분포도를 보여 목측 자료를 운고계 값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목측 요소 가운데 자동화가 어려운 것이 적설이다. 관측장소에는 가로세로 수십㎝의 적설판이 3개 놓여 있다. 관측자는 눈이 올 때면 매시간 자를 들고 나가 적설판에 쌓인 눈 높이를 세 군데씩 재어 평균값을 낸다. 눈이 많이 내릴 때는 30분 간격으로 재기도 한다. 적설판 1개는 재고 난 뒤 바로 치워 신적설을 측정하고 다른 적설판은 24시간마다 측정 뒤 쓸어내 일일신적설 값을 산출한다.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놓아둬 누적적설을 잰다. 기상청은 15년 전부터 자동적설관측장치를 연구해오고 있지만 아직은 정확한 값을 내는 장비가 없어 특보 예보지역 55군데에 레이저적설계를 설치해 참고값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로 봄철에 많이 발생하는 황사 현상은 시정이 좋지 않고 대기에 누런빛이 돌면 부유분진(PM10) 측정기 수치를 보면서 확인한다. 지역별·시기별로 황사 이외의 오염물질 발생량이 달라 관측지점별로 황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농도를 미리 정해놓았다. 가령 서울 관악산에서 4월에 PM10 농도가 166㎍/㎥에 이르면 관측자는 황사인지 단순한 대기오염인지 집중해서 살피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하얀 천이나 나무판을 깔아놓고 쌓인 먼지 색깔로 황사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

바닷가에 있는 기상관측소에서는 파도 높이(파고)도 육안으로 관측한다. 먼바다에서 백파(하얀 포말)가 보이면 1.5m 정도로 판단하고 포말이 더 많으면 좀더 높은 값을 매긴다. 특별한 매뉴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도제식으로 경험이 많은 관측자가 신입 관측자를 한달 정도 훈련시키며 요령을 전수한다.

관측소에는 매화부터 시작해 코스모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표준목들이 심어져 있다. 관측자는 봄철이나 가을철에 매일 표준목들을 관찰해 발아·꽃핌(개화)·활짝핌(만발)을 기록한다. 또 제비·개구리·나비·잠자리를 처음 본 날과 뻐꾸기·매미 등 소리를 처음 들은 날도 기록해야 한다. 지난해 4월부터는 출현이 적어진 종다리·기러기·뱀 등의 관측은 중단했다. 가을철에는 유명산을 중심으로 단풍의 시작일과 절정일도 관찰한다. 설악산의 경우 단풍 시작일은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의뢰해 산 정상에서 20%까지 물들었는지 날마다 확인해 결정하고, 절정일은 관측자가 설악산 소공원까지 매일 직접 나가서 확인한다. 정상에서 80% 지점까지 물들면 절정으로 본다. 계절관측은 계절의 빠르고 늦음을 통계 분석해 기후변화의 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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