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감옥서 326일..가정의달에도 가족품으로 갈 수 없는 이들

2016. 5.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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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동절 126주년 기획]
2명 앉으면 꽉…비좁은 곳서 고공농성 이어가는 최정명·한규협씨
“가족들 수모 당할 때 울컥… 이렇게까지 사회가 무심할 줄 몰랐다”

기아차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씨(왼쪽)와 한규협씨가 서울 중구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지 300일 맞은 지난 4월 5일 오후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일은 노동절 126주년을 맞는 날이다. 나흘 뒤는 어린이날, 이레 뒤엔 어버이날이다.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 일터를 떠나지 못해 애가 타는 사람도 있다. 서울시내 한복판 13층짜리 건물 옥상에 세워진 10m 높이의 광고판 위에서 326일째 아침을 맞이한 사람도 있다.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46)·한규협(42)씨다.

이들은 지난해 6월11일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판에 올랐다.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법이 이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기아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음에도 기아차가 지난해 5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465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7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해 2월에도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김준규씨 등 4명에 대해 “현대차의 정규직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 쪽은 최씨 등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와 관련해 항소심에서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노동자는 2명이 앉으면 폭이 꽉 차는 20m 길이의 광고판 위에서 기약없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겨레>는 4월30일 이들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평범했던 아이들의 아버지,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땀흘리며 차를 만들던 두 가장의 이야기를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전한다. 노동자의 날이니까.

지난 4월 5일 오후 최정명씨왼쪽)와 한규협씨가 서울 중구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 농성장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정명씨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고공농성 60일 만에 해고되지 않았다면 올해 재직 10년을 맞이했을 것이다. 유난히 아빠를 따르는 아들에게 충격이 될까봐 아빠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저 일 때문에 멀리 나와있고 당분간 집에 갈 수 없다고만 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는 “꽃피는 봄이 오면 돌아간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농성이 오늘로 몇일째인가?

“325일째다.”

-지난해 6월에 올라갔으니 이제 사계절을 다 그 위에서 맞으셨다. 어떠셨나?

“사실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속도는 굉장히 더딘데 다음달이면 1년이 되니 굉장히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꼭 굉장히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고도에 대한 공포는 익숙해졌다. 환경에 적응했는데도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꿈 같은 착각이 든다.”

-언제가 제일 힘들었나?

“사실 추위와 더위도 많이 힘든데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이 수모를 당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여기 올라오고 나서 식사와 식수가 차단됐다. 아예 옥상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다. ‘물은 올려줘야할 거 아니냐. 사람 죽이려고 하냐’고 따지는 집사람을 막 대하더라. 광고회사 사장은 ‘(농성자들) 죽어서 내려오게 하면 될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그게 영상으로 찍혔다. 그것을 안 봤으면 좋았을텐데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 우리는 어차피 각오하고 올라왔는데, 절박해서 찾아온 애들 엄마를 모질게 대하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추위와 더위도 모질었지만 식구들까지 힘들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가족분들 이야기 하셨으니 묻겠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를 받고 싶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못했다. 말로 해주신다면.

“사실 식구들한테 굉장히 미안하다. 올라오기 전날 집사람한테 ‘(농성) 가야겠다’고 하니 별말 없이 빤히 쳐다보더라. 그때 집사람 눈빛이 ‘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당신이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해야 되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 올라가는 게 맞겠다’고 하니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라’고 하더라.

우리도 우리지만 애들 돌보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여기 소식 접하면 마음도 아프고 걱정도 될 거다. 아마 따로 지옥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색 안 하고 꿋꿋하게 견뎌주니까 너무 고맙다. 가끔씩 진짜 힘들 때면 가족, 애들 생각해서 힘낸다.”

-막내가 어리다고 하던데….

“딸은 8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위에는 6학년 남자애다. 보통 사내 애들은 아빠 잘 안 따르는데 우리 아들은 아빠를 엄청 따른다. 그래서 (농성한다는) 얘기를 하면 충격을 받을까봐 일부러 얘기를 안 했다. 나중에 삶의 가치나 신념에 대한 부분은 어른이 되서 판단할 것이고 지금 당장은 정서적으로 안 좋겠다 싶어서 얘기 안했다. 그런데 아빠가 단순히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짐작하는 듯하다. 엄마가 아빠랑 통화하는 태도를 보면서, ‘멀리서 일하는데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서 힘들게 일하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을 안 키워본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는데, 애교도 많고 품속에서 끼고 지내다가 오래 떨어지니까 진짜 보고 싶다. 딸에게는 ‘아빠가 봄이 오면 꽃이 피면 꼭 간다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입학식 가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래도 아빠하고 약속 지킨다고 딸 아이가 글도 잘 읽고 쓰고 있다. 고맙고 대견하다.

큰 아이는 어느 정도 철이 들어서 컸다고 엄마 말도 잘 안듣고 하는데 아빠가 못 놀아줬던 거 내려가면 같이 산에도 가고 낚시도 가자고 하고 싶다. 옆동네 형아네랑 캠핑도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약속했던 거 다 지킬 것이다. 엄마 말씀 잘 듣고 기달려달라고 하고 싶다.”

4월30일 오후 두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옛 인권위 옥상 광고판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최정명씨 제공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게 건강은 어떠시냐는 것이다.

“건강은 사실 안 좋다.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혈압이 없었는데 (올라와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같이 있는 한규협씨는 혈압이 굉장히 높아서 중증 고혈압 환자인데 농성 길어지니 처방이 점점 세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의료진이 올라와서 당 수치까지 높아졌다고 했다. 차도가 없으면 당을 조절하는 처방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안 아프고 안 쑤신 데, 안 아픈 데가 없다.”

-작년 여름 농성 29일째를 맞아 한 인터뷰 봤다. ‘하늘 감옥’이라며 ‘징역살이보다 더하다’고 했다. 당시 408일이 넘게 고공농성을 했던 차광호(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폐쇄 항의)씨 얘기를 하면서 “엄청난 의지와 자기와의 싸움이었겠다”고 했다. 실제 그에 가까워지는 지금 심경은 어떤가?

“실제로 고공농성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 말을 알 거 같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고립되서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굉장히 심리적 기복도 심해진다. 우리도 올라와서 약을 먹었다. 마음을 안 다치고 평안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래서 책도 보고 명상도 하고 감정을 조절 통제하려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하지만 우울해지거나 울화병이 생기는 증상들은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나타나더라.

울분 쌓이는 게 있으면 얘기하고 싶어도 우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여기 같이 있는 한규협씨하고 같이 많이 푼다.”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몽구가 책임져라!’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회사 쪽에 직접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 상식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사고, 판단하는 기준에 맞아야 하고 사회적 제도와 법의 잣대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들은 집시법(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나 근기법(근로기준법)만 위반해도 참 모질게 다룬다. 정리해고도 되고 부당함에 조금만 항의해도 엄격하게 법 적용된다. 그런데 현대기아차는 불법파견을 십수년간 저질러왔다. 몇번을 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고 있는데 미동도 않는다. 이것은 치명적인 사회적 범죄다. 그런데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 검찰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소환해 조사 한 번 했나. 법원이 판결 한 번 했나. 노동부가 이런 상황이면 특별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고공농성 하고 있는 지금, 법원은 계속 사측의 요구 받아들여서 계속 판결을 미루고 있다. 1심 판결을 3년 걸려서 내놨다. 2심은 선고기일을 3번째 미루고 있다. 너무 불공평하다.

그래서 우리가 현수막에 내걸었듯이 실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인 정몽구 회장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면서 야만적인 기업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되겠나. 차만 많이 팔면 글로벌 회사가 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윤리가 성숙한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재벌이라고 해서 법 위에 군림할 자격을 주지 않았다. 하루 빨리 불법파견 인정하고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정명씨가 고공농성 중인 광고판 위에서 키우는 식물들이다. 최씨의 아내가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식물을 키워보라”며 보내준 서리태콩과 작두콩 씨를 심은 것이다. 최씨는 “전광판 위에는 그 흔한 쥐도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삭막한 곳”이라면서 “생명이라고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다. 정성스레 물을 주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화분을 동여매서 보살피니 어느새 싹을 틔워 생명을 가진 친구가 되어 주었다. 참 예쁘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또 “험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견뎌주니 서로 처지가 비슷한 생명끼리 위안도 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아내의 지혜에 또 한번 감사하다”고 했다. 최정명씨 제공

한규협씨도 최씨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해고되지 않았으면 올해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로 10년차가 된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한씨의 큰 아들은 입대할 준비를 하고 있고 딸은 얼마전 취직했다. 성인인 큰 아이들은 사정을 알아 덜 걱정되지만 매일 아빠를 찾는 6살짜리 늦둥이 딸은 유독 눈에 밟힌다.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셨나

“쉽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까지 사회가 무심할 줄 몰랐다. 나름대로 우리도 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올라왔는데 무한정 길어지고 이런 범법 행위(불법파견)에 대해서 아무도 제지하지 않으니까 회사는 계속 시간을 끌어서 그게 제일 답답하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회사쪽에 하고 직접 싶은 말이 있다면?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돈의 논리로만 모든 것을 제단하고 평가하지 말아달라. 그동안 매일 회사에서 ‘우리는 한가족이다. 함께 잘 해보자’라고 들어왔다.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회피하려고 하는 점이다. 정말 가족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사람들 일을 시켰으면 정당한 대가 치르는 게 맞고 법이 내놓은 판결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 재벌이라는 위치, 지도층에 맞게 행동 하셨으면 좋겠다.”

-똑같은 질문하겠다. 가족분들께 한마디 해달라.

“큰 애들은 성인이 되서 상황 알고 있고 공유하고 있다. 큰 아들은 군대 준비하고 있고 작은 애는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다. 막내가 6살이다.

가족들한테는 별로 할말 없다. 미안해서. 생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우리 둘다 외벌이다. 가장인데 가족들한테 모든 희생을 요구하면서 우리는 잘 먹고 잘 지낸다. 몸 아픈거 감수하고 올라왔다.

기간이 길어지니 가족들이 겪는 생활고가 마음 아프다. 집사람이 지금까지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힘든 건 어떻게든 모아서 해결하자고 하는 내 말도 들어준다. ‘건강하게만 이겨서 내려오라’고 응원하니까 미안함 배가된다. 차라리 원망하고 싫은 소리 해주면 편하겠는데 그러지 않아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한테 아빠로서 일상적인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함을 지속 시켜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인터뷰는 “아직 걸어다닐 수는 있다”는 한씨의 웃지 못할 농담과 함께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마무리됐다.

두 노동자는 언제쯤 ‘하늘 감옥’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4월30일 오후 최정명(왼쪽)씨와 한규협(오른쪽)씨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325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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