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말한 "휘황한 설계도" 비밀 풀린다

2016. 5. 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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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36년 만에 열리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

▶ 5월6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린다. 직전 6차 당대회(1980년 10월)가 열린 지 36년 만이다. 긴 공백과 침묵의 시간만큼 할 말이 많을 터. 4차 핵실험(1월6일)과 로켓 발사(2월7일) 이후 북한과 국제사회의 건곤일척의 승부가 펼쳐지는 와중이라 외부의 관심이 지대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북한 헌법 11조)하는 노동당을 모르면, 북한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당의 “최고지도기관”(당 규약 14조 1항)인 당대회를 빼놓고 노동당을 이해할 길도 없다. 당대회는 북한 이해의 알짬이자 지름길이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를 2016년 5월6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회할 것을 결정한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의 한 구절이다. 나라 안팎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노동당 7차 대회’와 관련한 분석과 전망을 쏟아낸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주요국 정부도 북한의 7차 당대회 동향을 수집하느라 각종 정보 창구를 가동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차 당대회가 직전 6차 당대회(1980년 10월) 이후 무려 36년 만에 소집됐을뿐더러,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5년차에 열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노동당대회가 뭐길래 다들 이렇게 부산을 떨까?

궁금증을 풀려면, 북한에서 노동당과 노동당대회의 위상과 구실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북한의 노동당은 남쪽의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과는 위상과 구실이 다르다. 헌법 규정을 비교해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북한의 현행 ‘사회주의헌법’(2012년 개정) 11조다. ‘당이 국가를 이끈다’는 뜻이다. 이를 ‘당·국가 체제’라고 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 원칙에 따른 ‘유일당’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보다 우위에서 이끄는 체제라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를 주축으로 한 공산당이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을 만들고,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역사적 사례를 떠올리면 되겠다.

노동당 70돌 행사 직후 소집 결정

반면 ‘대한민국 헌법’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8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8조 4항)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에선 모든 정당이 헌법에 따라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며 활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산될 수 있다. 한국에선 국가가 당보다 높다.

복수정당제를 채택한 대다수 국가에선 주기적 선거를 통해 집권당이 바뀐다. 그러나 ‘당=국가’(당·국가체제)인 북한·중국·베트남·쿠바 등 실존사회주의 국가에선 원리상 ‘유일당’인 집권당이 바뀔 일이 없을뿐더러, 역사적으로도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노동당대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의 “최고지도기관”(노동당 규약 14조 1항)이다. 그러므로 노동당대회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다. 당대표나 대통령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남쪽 정당의 전당대회와는 위상이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쪽의 대선이 그나마 어깨를 겨룰 수 있겠다. 다만 남쪽의 대선은 오랜 군사독재에도 이미 18차례 치러졌는데, 북쪽의 당대회는 지금껏 6차례뿐이었다.

노동당대회는 무엇을 논의·결정하나? 온갖 분석과 전망이 난무하지만, 북한처럼 정치 과정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체제를 이해하려면 기본에 충실하는 게 안전하다. 노동당 규약 21조에 ‘당대회의 사업’이 적시돼 있다. “①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한다 ②당의 강령과 규약을 채택 또는 수정 보충한다 ③당의 노선과 정책, 전략전술의 기본문제를 토의 결정한다 ④조선노동당 총비서를 추대한다 ⑤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를 선거한다.” 이 ‘5개 사업’을 다시 요약하면 ‘직전 당대회 이후 지금까지 당 사업·성과 결산→당 노선·정책 방향 제시→당 기구 및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너무 낯설다고 옆으로 치워두지 말고, 일단 그렇다는 정도만 염두에 두자.

노동당대회·당대표자회 개최 현황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기초학습은 마쳤다. 분석·전망에 앞서 당대회 소집 시점(2015년 10월30일)과 개회 결정 시점(2016년 4월27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대회 소집 결정은, 노동당 창건(1945년 10월10일) 70돌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직후 이뤄졌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주체혁명 위업,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위업 수행에서 세기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 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를 주체105(2016)년 5월초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는 ‘결정서’의 문안에 나름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당대회를 소집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와 고민으로 점철된 ‘고난의 36년’을 딛고 일어섰다는 뿌듯함 말이다.

그런데 당대회 소집 결정 이후 외부 환경이 심각하게 악화했다. 우선 조(북)-중 관계 개선을 가속화하리라는 기대를 모은 북한의 모란봉 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베이징 공연이 지난해 12월12일 북한 쪽의 전격적인 철수로 무산됐다. 같은 날,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 수도 있던 제1차 차관급 남북당국회담(개성공업지구) 역시 결렬됐다. 당대회를 앞두고 동시에 추진한 조중, 남북 관계 개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조-중, 남-북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남북당국회담도 성과를 냈다면, 이후 북한의 행보와 한반도 정세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유일당’이 이끄는 당·국가 체제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
소집 결정 이후 외부 환경 악화
남-북, 북-중 감정의 골 깊어져

국제사회 강력한 제재 속 강행
중기 경제계획 제시 가능성 낮아
당 규약 ‘핵보유국’ 명시할 수도
박근혜 정부에 대화 제의 없고
주석·국방위원장 오르진 않을듯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 예상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보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그 직후 4차 핵실험 진행을 명령(12월15일)하고 최종명령서에 서명(1월3일)했다. 이어 4차 핵실험(1월6일), 로켓 발사(2월7일) 등 ‘전략적 군사 행동’이 잇따랐다. 한반도의 위기 지수가 치솟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비군사적 제재 조처로는 유엔 7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결의 2270호’ 채택으로 대북 대응에 나섰다. 김정은 제1비서가 당대회 소집 시점에, 당대회 전에 4차 핵실험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진실이 무엇이든, 나빠진 외부 환경이 7차 당대회의 논의 내용과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당대회의 5대 사업’을 짚어보자.

첫째, ‘사업총화’. ‘총화’는 ‘결산’과 뜻이 비슷하다. 1~6차 당대회의 사업총화 보고 주체는 예외없이 당시 북한의 최고권력자인 김일성이었다. 이런 선례에 비춰보면 7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는 당연히 김정은 제1비서의 몫이다. 김 제1비서는 당대회가 열리지 못한 36년간 정치·경제·대남·대외 분야의 당사업을 결산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정책 방향과 노선을 내놓아야 한다. 직전 6차 당대회 때 김일성 주석은 무려 5시간에 걸쳐 사업총화 보고를 했다. 당대회 개회일 또는 이튿날 이뤄지는 사업총화는 당대회의 고갱이다. 이후 당대회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총화’는, ‘성과’를 전제로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십수년에 걸친 집권 기간에 단 한 차례도 당대회를 소집하지 못한 까닭이다. 김정일 위원장 집권기의 상당 기간은 실존사회주의권 붕괴와 치명적 식량·에너지난에 따른 ‘고난의 행군’ 시기와 겹친다. 이 시기 김 위원장은 당이 아닌 국방위원회를 앞세운 ‘비정상적 국가 운영’(선군정치)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는 (…)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보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휘황한 설계도’가 무엇일지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예견할 수 있다.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과 ‘백방으로 높아진 당의 영도력’을 내세우리라는 점이다. ‘당이 국가를 영도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르면, 논리적으론 ‘당의 영도력 강화=당 기능의 정상화=국가 기능의 정상화’가 된다.

둘째, 당대회 정책 분야 안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경제발전 전략이다. 당 규약 서문에서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는 것을 당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을뿐더러, 특히 김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문제”를 “천만 가지 국사 가운데 제1 국사”로 제시한 터다.

3·4·5차 당대회 땐 ‘중기 경제계획’이 제시됐다.(3차 신경제발전 5개년 계획, 4차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 5차 인민경제발전 6개년 계획) 6차 당대회 땐 중기 경제계획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 10대 전망 목표’라는 다소 추상적인 방침이 제시됐다. 7차 당대회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 강행되는 터라 중기 경제계획이 제시될 가능성은 낮다.

김 제1비서가 집권 이후 내놓은 ‘새로운 경제관리체계’(2012년 6월28일)나 흔히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불리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2014년 5월30일)의 공식화 여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현장 경제단위의 자율성·책임성·인센티브 강화 따위에 주목해 이를 ‘북한식 경제개혁’의 맹아로 여겨왔다. 하지만 큰 기대는 걸지 않는 게 좋겠다.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2월23일로 추정)를 통해 선포한 ‘70일 전투’가 징후적이다. 김 제1비서의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제기한 대중운동 방식의 경제발전전략인 ‘속도전 방침’이 처음 적용된 1974년의 ‘70일 전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일 전투’라는 이름의 각종 속도전은 인적·물적 재원을 쏟아부어 정해진 기간 안에 목표를 초과 달성하지만, 실제론 자원 배분을 극도로 왜곡해 경제의 기반을 침식한다. 1950년대 ‘천리마 속도’를 연상시키는 ‘만리마 속도’를 구호로 내건 ‘70일 전투’는 단기 성과에 집착한 일종의 ‘모르핀’이다. 7차 당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경제발전 전략이 제시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탓에 대외 경제 개방 분야도 특별한 언급이 없을 듯하다.

대남 분야에선 “조국통일 3대 원칙(7·4 공동성명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 원칙)과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신년사)고 할 듯한데,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새 대화 제의를 할 가능성은 낮다. 대외 분야에서는,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원론적인 “평화(로운 외부 환경)”의 중요성 강조를 넘어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당기구 및 권력 재편 여부 주목

셋째, 당 규약 수정·보충이다. 통상 당대회 후반부에 이뤄진다. 두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이라 명시하고 2013년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당의 전략노선으로 공식 채택(3월31일 당중앙위 전원회의)하고 ‘핵보유법’을 제정(4월1일 최고인민회의)한 흐름에 따라 당 규약에 ‘핵보유국’이라 명시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당 규약 서문의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라는 ‘남조선혁명’ 규정의 수정 여부다. 이는 7차 당대회의 또다른 관심 대상인 새로운 통일방안 제시 여부보다 실질적인 의미가 더 크다. 남북 간 동질성 강화보다 차별화를 지향하는 듯한 ‘평양시’(2015년 8월15일부터 남북 간 30분 시차 발생) 발표에 담긴 ‘관계 인식’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지켜볼 일이다.

넷째, 당기구 및 권력 재편이다. 김 제1비서 집권기의 당 작동 방식에 비춰 당 중앙위 정치국의 위상 강화가 예상된다. 아울러 김정은 시대를 떠받칠 세대교체형 인사가 ‘노·장·청 조화’라는 형식의 내용을 채울 듯하다.

7차 당대회에서 벌어질 이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김정은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굳건히 하는 데로 모일 터. “조선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당”(당 규약 서문)이라는 선언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은 ‘혁명의 뇌수’로 불리는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주석”(헌법 서문)인 할아버지(김일성)와 “영원한 국방위원회 위원장”(헌법 서문)이자 “영원한 총비서”(당 규약 서문)인 아버지(김정일)를 따라, 이미 “하늘의 태양”(2월23일 최고사령부 중대성명)인 김정은 제1비서도 7차 당대회를 통해 ‘수령’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할아버지·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할 주석·총비서·국방위원장의 자리에는 오르지 않을 듯하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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