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카지노 '흡연부스'로 출근하는 사람들

정선(강원)=김지훈 기자 2016. 5. 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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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도시재생이 필요한 이곳] <中> 정선 떠나지 못한 이들 숙박업소 등 호객 연명

[머니투데이 정선(강원)=김지훈 기자] [[르포-도시재생이 필요한 이곳] <中> 정선 떠나지 못한 이들 숙박업소 등 호객 연명 ]

강원랜드 카지노장 인구 인근의 흡연부스. /사진=김지훈 기자

"모텔, 모텔 안 가세요? 모텔."

얇은 점퍼를 입고 허리춤에 작은 가방을 멘 A씨(47)가 28일 자정쯤 기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는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장 앞 흡연 부스에서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 30분 무렵까지 일한다.

한 쪽 다리를 조금 저는 A씨는 끝없는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곳에서 손님을 찾는다. 차를 몰아 사북읍의 한 모텔로 고객을 유치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한다. 지난해 뇌경색 진단을 받아 금연에 나섰지만 옷에 담배 연기가 배어있는 이유다.

이전에는 카지노장 입구 차도 인근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모텔을 권유했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카지노장 입구 호객행위 차단으로 흡연 부스를 일터 삼았다.

대학생 아들 한 명을 둔 A씨는 원래 서울에서 보험 등 영업직종에 종사했다고 했다. 7년전 카지노장을 찾은 그는 끝내 정선을 떠나지 못한 ‘외지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2009년 추석 무렵 친척과 함께 카지노장을 처음 찾았지요. 20만원을 걸어 200만원 쯤 따면서 카지노에 흥미를 갖게 됐죠. 그 다음에도 100만원 쯤을 또 땄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내가 잃은 돈은 빚을 포함해 총 7억원이 됐어요."

이제 가족과 간신히 연락만 하고 지낸다는 A씨의 말이다. 그는 뇌경색 진단 이후 담배를 끊었지만 계속 해로운 담배 연기를 맡으며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 ‘무섭다’고 토로했다. 흡연부스에는 자신처럼 카지노로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이 찾아와 '장사'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호객행위 차단에 나선 강원랜드에 대해 원망 섞인 한숨도 쉰다.

흡연부스에는 "인천·경기, 인천·경기"하고 말을 건네는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 남성도 있다. 차로 카지노장 고객들을 해당 지역으로 바래다준다는 설명이다. 백발에 안경을 쓴 한 남성은 며칠째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이다.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일어난다.

마사지, 전당포, 숙박업소가 즐비한 정선의 거리. /사진=김지훈 기자

"저 흰머리 남자는 사흘째 근방에서 먹고 자며 카지노 하는 사람이에요. 정식으로 택시 등록을 하지 않고 손님을 행선지까지 바래다주는 사람도 있지요." 택시로 등록되지 않은 자가용을 몰아 택시 영업을 한다면 이른바 ‘나라시 택시’라는 불법 영업이 된다.

흡연부스 장사꾼들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선은 삼엄하다. 김다혜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호객행위는 경범죄 처벌법에 근거한 처벌의 소지가 있으며 무허가 택시 영업을 한다면 여객 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영업용으로 등록된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으로 영업하는 사례라면 범죄의 위험에 노출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사업은 탈세의 온상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사꾼은 비록 카지노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범죄 등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은 사람 입니다." 이제 '착실한 인생'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A씨의 말이다. 흡연 부스 밖에서도 손님을 잡게 해달라고 A씨는 호소했다.

강원랜드는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해 호객행위 차단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강원랜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박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도 도박이 불러오는 안타까운 문제를 막고,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슬픈 사연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한다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강원랜드에 따르면 하이원리조트 시설 주변 환경에 대한 고객이미지 설문 결과 25.8%가 ‘도박’을 떠올렸다. ‘도박의 위험성’이나 ‘재산탕진’과 같은 인식이 고객들의 이미지에 자리 잡았다. 정선의 거리는 마사지, 전당포, 숙박업소가 빼곡히 늘어서며 어두운 인식을 더한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인접한 사북·고한읍 등 폐광지역의 부정적인 인식을 떨쳐내고 민간·정부가 함께 ‘도시 재생’에 나서야 할 때라는 인식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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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강원)=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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