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잘못된 현금장사 일찍 손봤다면"..신뢰·손님잃은 가구거리

나석윤 기자,양종곤 기자 2016. 5. 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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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개 점포 가구거리.."돈 벌려고 왔다가 차비·밥값 더 나와" 정부, 가격질서 세우기.."손님 없는데 투명거래 소용있나" 대리점도 수익 타격 우려..규제 보다 지원정책 요구 목소리
폐목재 재활용 공방에서 가구만드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13.05.15/뉴스1

(서울=뉴스1) 나석윤 기자,양종곤 기자 = "현금영수증은 손님들이 해달라고 하면 지금도 해주죠. 지금 현금영수증 (발급) 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손님들이 있을 때 얘기죠."

지난 29일 수백개 점포가 모인 A 가구거리에서 만난 상인 최모씨(64·남)의 음성에는 분노와 체념이 섞였다. 최근 나흘 동안 하루 걸러 하루씩 손님을 받았다는 그는 "가구 쪽에서는 요즘이 대목인데 장사는 공치고 시간만 보내다 집에 가는 날이 허다하다"고 푸념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7월부터…'누구'에게 발급하란 말? 정부가 관행처럼 이어온 가구상인들의 잘못된 '현금장사' 바로잡기에 나섰다. 7월부터 10만원 이상 현금거래 시 현금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된다.

1970년대 가구상인들은 '자개장 1개 팔면 집세를 낸다는 말'을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비싼 가구는 일종의 '독'이었다. 가구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나면서 상인들은 소비자가 가구 가격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손님이 끊긴 가구거리는 가격 신뢰를 잃은 가구산업의 현주소를 보는 듯 했다.

1960년대 생겨난 이 곳의 점포 수는 1970~1980년대 200여곳에 이르렀지만 현재 120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경기 침체 직격탄에 임대료 부담, 온라인 거래 발달, 브랜드 가구업체들의 시장 잠식까지 겹쳐 문 닫는 점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상인들 대부분은 가게 입구 주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간혹 가게 앞을 지나는 손님이 보이면 "뭘 찾으세요?"라고 한 마디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반응이 없으면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산한 분위기 속 한 상인은 "어휴, 이 생활도 지겨워"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22년째 이 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이모씨(49·여)는 "당장 가게를 접지는 않아도 출입구 벽면에 '점포정리'라고 쓰인 팻말을 붙여두고 장사하는 분들도 많다"며 "오후 2~3시쯤 첫 손님을 받으면 다행이다. 돈 벌려고 일찍 (가게에) 나왔다가 손님 못 받으며 차비와 밥값까지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가구거리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케아 광명점이 들어선 인근 영세 가구상인들의 수익이 감소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서울 강남의 고급 가구를 판매하는 B 가구거리도 인지도와 정부 지원 덕분에 과거 호황을 누렸다가 최근 실적이 악화됐다. 2014년말 당시 B 지역에는 간판을 내린 매장이 적잖았다. ◇브랜드 가구대리점도 타격…"규제 말고 지원대책 없나" 정부의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는 소비자로서 크게 반길 일이다. 되레 정책이 뒤늦은 감이 들 정도다. 온라인 상에서는 '현금으로 가구를 샀는데 현금영수증을 안 준다'와 같은 불만의 글들이 적지 않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상인은 그만큼 소득분이 낮아지기 때문에 소득세를 아낄 수 있다. 이는 잘못된 관행이다. 일부 상인은 '현금영수증을 끊지 않으면 제품을 더 할인해 주겠다'는 말로 고객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곳 가구거리도 이같은 현금장사 유혹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현금장사를 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의 관심사는 생업이다. 때문에 뒤늦은 정부의 거래질서 바로잡기에 대해 불만이 많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헛발질도 이런 헛발질이 없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가구거리 내에서 그나마 수익을 내고 있던 브랜드 가구회사 대리점주까지 달라지는 제도 탓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본사에서 요구한 판매목표치를 달성했을 때 받는 인센티브가 제한돼 수익을 낼 대안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금영업까지 안 되면 고객을 유치하기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제품을 팔아 남기는 이익을 줄여서라도 인센티브에 의지하려 했던 상인들로선 청천벽력인 셈이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지금보다 마진율(현재 5~10% 수준)을 더 낮추는 것은 돈 벌 생각이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라며 "뾰족한 수는 없고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시기는 점점 다가오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통상 가구업계에서는 연중 대목으로 봄(3~5월)과 가을(9~10월)을 꼽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변하면서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는 소비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혼과 이사, 신학기 등도 이 시기 가구 수요를 높이는 요인이다.

그러나 가구거리 상인들에게 이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이씨는 "가구는 결혼이나 이사를 할 때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찾는 품목"이라며 "요즘은 너도 나도 어려운 데다 이사를 할 때 집값도 비싸다 보니 (가구를) 바꿀 생각보다는 그냥 쓰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발길이 더 뜸한 것 같다"고 했다.

상인들은 정부가 가구상인을 위한 지원 정책이 마련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7년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모씨(남·62)도 "밑바닥 상황이 좋아져야 업계 전체에 돈도 돌고 활력도 생기는 것 아니냐"며 "가구업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규제를 더 강화하면 어쩌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이 현실에서 기대하는 것과 정부 정책 사이에 괴리감이 큰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gg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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