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에 몰린 서민들.."나도 대리기사 될 줄 몰랐다"

맹선호 기자 2016. 4.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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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만원 찍어서 붙은 별명이 '곧 죽을 놈' 절박할 때 찾는 대리기사..무일푼이어도 돈 벌 수 있는 직업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호진빌딩 4층의 휴(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쉼터 제공) © News1

(서울=뉴스1) 맹선호 기자 = "처음부터 끝까지 맞고만 있어야 했나요?"

18일 오전 1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길거리에서 대리기사 김모씨(48)는 손님 A씨에게 맞았다.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이 늦어졌고, 김씨의 안경은 바닥에 떨어져 부러졌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외제차 주인인 A씨는 술에 취해 대리운전을 불렀다. 김씨는 "술에 취한 A씨와 아내는 도착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시비가 붙었고 경찰의 출동이 지연되자 지나가는 3명의 청년에게 맞는 장면의 촬영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촬영된 동영상에는 김씨가 맞는 장면이 나오지만 한 가지 장면이 더 있었다. 김씨가 A씨를 한 대 때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A씨의 목에는 긁힌 상처가 생겼다. 이로 인해 김씨는 쌍방폭행으로 입건될까 걱정하고 있다.

경찰측은 현재 김씨와 A씨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며 현장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없어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단 김씨와 A씨 모두 서로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은 인정하기 때문에 현재는 쌍방폭행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경찰은 향후 증거를 확보하고 대질심문 결과를 보며 정당방위 사실이 인정된다면 적용할 거란 입장이다.

하지만 김씨는 현재 쌍방폭행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경찰 측의 설명에도 자신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 진상손님 해결책은? "단거리만 뛰거나 늦은 시간 업무 안 해"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늦은 밤 대리기사들이 쉬어가는 곳이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호진빌딩 4층에 위치한 휴(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쉼터)가 그곳이다. 쉼터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고 서울시가 자금을 지원하는 곳으로, 대리기사나 퀵서비스 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쉼터는 지난달부터 시범 운영 중이며 월~금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문을 연다. 대리기사들이 일을 마무리하고 첫차를 기다리기 시작하는 오전 2~3시쯤 서울 각지에서 차를 운전하던 기사들이 이곳 쉼터를 찾는다.

쉼터를 찾는 대리기사들의 억울한 사연은 김씨 외에도 저마다 한 두 가지씩 모두 갖고 있었다.

손님과 갈등을 겪는 건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대리기사 경력 12년의 김모씨(50)는 "법인기사는 오히려 편한 측면도 있다"며 "평소 대리기사를 안 불러 본 뜨내기 취객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법인기사란 대리기사 용역업체로 각종 법인회사와 계약해 회사 임원진이 요청하면 대리기사를 보내는 운영 형태를 말한다. 반면 일반 국민이 술에 취해 연락하는 일반적인 대기기사 서비스는 '광역콜'이라 한다.

취객을 상대하는 대리기사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대리기사 황모씨(56)는 "오전 2~3시 이후엔 대리 업무를 안 한다"며 "시간이 늦어질수록 술에 취해 이상행동을 보이는 승객이 많다"고 토로했다.

쉼터에서 다른 대리기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모씨(58)는 "대리기사 일을 시작한 지 10일째"라며 "주로 '삥발'을 한다"고 말했다.

'삥발'이란 단거리 대리운전을 뜻하는 말로, 단거리인 만큼 버는 돈은 적지만 빠르게 일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다만 손님과의 다툼보다 오히려 회사와의 다툼에 속앓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리기사들은 밝혔다.

대리기사 경력만 10년이 넘은 정모씨(48)는 "대리기사와 손님 간 알력은 과거보다 줄어든 편"이라면서 "오히려 대리기사와 회사 간 다툼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리기사 출신인 회사 사장이 대리기사 사정을 잘 안다"며 "이를 악용해 돈을 떼어먹기도 한다"고 답답해했다.

◇ "하루 30만원까지 벌지만…얻은 별명은 '곧 죽을 놈'"

지친 몸을 이끌고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 대리기사들은 콜을 받고 나가는 순간 고생길이 펼쳐진다고 한다.

운전업 10년 경력의 최모씨(48)는 "대리기사가 하루에 30만원을 찍으면 많이 버는 편"이라며 "이 중 자신이 가져가는 돈은 20만원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30만원씩 찍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며 "광역콜 하는 대리기사 중에 별명이 '곧 죽을 놈'인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하루 수당 30만원을 기록하려면 하루에 7~8번을 콜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한 번에 2만~3만원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더 낮은 콜도 있지만 대리기사들도 모든 콜에 응하진 않는다.

콜을 한 번 받으면 대리기사는 손님의 집까지 갔다가 강남구 신논현역, 마포구 합정역 등 대리수요가 많은 거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운이 좋으면 도착지에서 다른 콜을 받거나 셔틀을 이용해 거점 지역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을 매일 7~8번 반복하면 몸이 남아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하루에 30만원씩 버는 사람은 '곧 죽을 놈'이라는 것이 대리기사들의 말이었다.

최씨는 "택시운전이나 대리기사는 많이 벌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며 육체노동의 강도를 설명했다.

◇ "온 국민이 대리기사 되겠다" 자조 섞인 농담도

대리기사들은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점점 늘어나는 대리기사 숫자를 꼽았다. 쉼터에서 만난 대리기사들은 모두 "대리기사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대리기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은 따로 없다. 택시기사보다 일을 시작하기 쉬운 편이다. 쉼터의 대리기사들은 "전 국민의 대리기사화"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쉼터를 운영하는 방승범 간사는 "오전 1시30분이나 오전 2시30분 사이 교보타워사거리에 나가보라"며 "휴대전화를 들고 콜을 찾는 대리기사가 바글바글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리기사가 많아진 이유에 대해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잘 나와있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며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대리기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대리기사의 수가 증가하는 만큼 수익도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옛날엔 분당 전담 대리기사도 있었다"며 "분당 가는 콜을 받아 운전하고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탈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4년 전쯤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대리기사가 200~3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200명도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2년 차 대리기사 김모씨(50)도 "20~30대 젊은 사람들도 대리기사를 한다"며 "그만큼 살기 어려운 거 아니겠는가"며 한숨을 쉬었다.

◇ 그들은 왜?…"대리기사는 절박할 때 찾는 일"

쉼터에 갖춰진 전신만시지기와 발 마사지기를 이용하는 대리기사(쉼터 제공) © News1

차 안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길 위에서 추위와 싸우며 쉼터까지 찾아온 대리기사들. 이들은 쉼터에 갖춰진 족욕기와 발 마사지기, 전신 마사지기에 빈자리가 생기면 금세 자리를 메운다.

황씨는 전신마사지기에 누운 채 "하루에 8~9㎞가량 걷는 일이 다반사"라며 굳은살이 박힌 발바닥 사진을 보여줬다. 고된 일에 지친 대기사들은 자신들만의 쉼터에서나마 큰 소리로 웃으며 휴식을 취한다.

이들은 왜 힘든 대리기사일을 할까. 최씨는 "돈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최씨는 택시기사 6년에 대리기사 4년 경력을 가진 운전기사다. 그는 "택시기사를 할 때 24시간을 뛰었다"며 "몸에 골병이 나서 3개월간 앓아누웠다"고 회상했다. 택시기사 경력 3개월이 지나자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던 최씨는 몸무게 60㎏의 왜소한 체격으로 변했고, 그는 재활운동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지갑에 단돈 3000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씨는 법인회사로 들어가려 했지만 보험료에 충전금까지 약 12만원 정도가 필요한 법인회사는 발을 들이기 어려웠다. 최씨는 "한 푼도 없어도 광역콜 대리운전 회사에 가면 1만원을 충전해준다"며 "하루 일해서 갚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대리기사"라 설명했다.

무일푼이어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게 대리기사라는 것이다. 한 푼이 급해 대리기사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지만 쉽게 떠나지 못한다. 방승범 간사는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한 번 대리기사를 시작하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일부 대리기사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생각 안 한다"며 "금방 떠난다는 생각에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 요금 14만원만 내자고 시작했던 게 2006년"이라며 "한번 시작하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다양한 과거를 보낸 대리기사들의 쉼터

"10년 전에는 내가 대리할 줄 몰랐어."

한 대리기사가 쉼터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며 던진 농담에 동료들이 함께 웃었다. 다른 기사는 "술 먹으면 대리기사를 부를 줄이나 알았다"며 동조했다.

대리기사들 대부분은 갑자기 절박한 상황에 놓여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법률사무소 사무장과 학원 강사, 사업체 대표, 점쟁이 등 온갖 경력의 사람들이 있다.

26일 오전 3시쯤 쉼터에는 20여명의 대리기사가 모였다.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마사지 기계가 비면 자리를 채웠다. 서로 알던 사람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했다.

방 간사는 "오후 2시쯤 일이 끝나기 시작한다"며 "이쯤부터 기사분들이 와서 어울리기도 하고 식사하러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쉼터는 5월에 정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면 이동노동자에게 필요한 금융과 복지, 법률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동노동자들을 상대로 건강이나 금융, 법률 등 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나 교육 프로그램, 건의사항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폭행시비에 휘말린 김씨는 바삐 일하느라 쉼터에는 들르지 못했고 사건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에서 법률상담을 받은 바 있다. 쉼터는 이처럼 이동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조사하고 선정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한 대리기사는 설문조사에서 건의사항을 적는 공간을 비워둔 채 쉼터 관계자에게 냈다. 부족한 부분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와서 쉬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손사래를 쳤다.

시간이 흐르고 오전 4시가 될 때까지 쉼터는 왁자지껄했다. 쉼터의 대리기사들은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달랠 수 있는 쉼터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곤 오전 5시가 되어서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m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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